"광장이 열렸는데 그 결과가 진보정치의 종말일 순 없었다"

장슬기 기자 2025. 6. 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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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3일 밤 1%대 출구조사 결과발표에도 권영국 민주노동당 선대위 "진보정치의 희망 생겼다"
득표보다는 진보3당과 노동·시민사회계 자발적 연대 확인…"0에서 시작, 공감대 넓혀가야"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 3일 밤 서울 구로구 민주노동당 당사에서 권영국 후보와 선대위 구성원들 모습. 권 후보는 4일 기자회견에서

3일 오후 8시. 21대 대선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의 득표는 1.3%로 예상된다는 발표가 나왔다. 개표결과 실제 득표는 0.98%였다. 당시 민주노동당 당사에는 권 후보 등 30여명의 선대위 관계자들과 10여명의 취재진이 자리를 채웠다. 지난해 총선에서 원외정당이 된 정의당은 그 해 7월말 기존 여의도에서 서울 구로구로 당사를 이전했다.

다음 대선 선관위 초청 TV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3%도 넘기지 못했다. 결과로만 보면 '초상집 분위기'여도 이상하지 않지만 선거 운동을 마친 권영국 후보나 선대위 관계자들의 표정은 밝았고 서로를 향한 격려가 이어졌다. 이들은 왜 웃을 수 있었을까. 미디어오늘은 3일 오후 9시30분경부터 권 후보와 민주노동당 선대위 구성원들의 식사 자리에 동행했다.

사회대전환을 위한 '연대' 확인한 민주노동당 선대위

이날 밤 만난 선대위 관계자들은 선거 결과보다는 옛 정의당을 비롯해 노동당·녹색당, 여러 노동단체와 민주노총 산별 등 10여개 세력이 연대해 이번 선거를 완주한 것에 대해 안도감을 나타냈다. 성격이 다른 세력이 모여 '사회대전환연대회의'란 이름으로 한 팀을 이룬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사회대전환연대회의가 정의당 플랫폼을 통해 대선 출마를 결정하고 후보 경선 여부 등을 정하는 지난한 과정 뒤에도 당명 개정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민주노동당'으로 정했다.

'소수 진보정당의 완주가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표를 깎아먹는다'는 비난이 선거 때마다 나왔지만 특히 2022년 대선 때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득표(2.37%)가 윤석열·이재명 당시 후보 간 격차(0.73%)보다 컸기에 '완주'에 대한 비난이 더욱 컸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도 '내란 종식'이라는 명분으로 진보정당 후보가 끝까지 선거를 뛰는 것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있었고, 완주했다는 이유로 가혹한 비난을 받아본 일부 정의당 지지층에선 부담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황우찬 공동선대위원장에 따르면 완주를 최우선 목표로 두자는 입장과 상황을 두고 보자 입장 사이의 논쟁도 있었다.

나경채 민주노동당 기획실장은 “처음엔 대선을 꼭 완주할 건지 물어보는 분들이 있었고 시작하기 전에도 걱정이 있었지만 선거를 시작한 이후엔 정리하자는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며 “선거 초반에 3억원을 모으는 고비를 제외하면 꾸준히 잘 풀려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선 후보 등록을 위해서는 기탁금 3억원이 필요한데 5월6일 기준 6000만원 밖에 마련하지 못했다. 문정은 수석대변인이 SNS에 “선거때마다 지워지는 존재를 대변하기 위해 나섰는데 돈 때문에 출마를 못할 수도 있다”는 글을 올리면서 시민들의 후원이 모였다.

▲ 3일 오후 8시경 지상파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한 직후 민주노동당 모습. 사진=민주노동당 제공

후보 등록조차 버거웠던 시작이었다. 나순자 선대위 상임공동선대본부장(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은 “1%를 얻어도 성공”이라며 “이번 선거의 목표는 진보정치의 씨앗을 틔우는 것으로 득표와 관계없이 목표를 이뤘다”고 말했다. 황우찬 공동선대위원장도 “결과보다는 우리의 마음을 모아내고 권영국을 통해서 우리의 이야기를 한 것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40개 넘는 단위에서 지지선언이 이어졌고 80개 넘는 정책협약을 맺었다.

이날 지상파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8시부터 밤 10시 기준, 약 2시간 동안 후원금 6억5000만 원이 모였다. 선대위 관계자들 사이에선 '양당체제에서 내란종식과 정권교체의 필요성으로 이재명 후보를 찍었지만 권영국 후보에 대한 미안함',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했지만 권영국 후보도 필요하다는 응원' 등 다양한 해석을 내놨다.

▲ 3일 밤 서울 구로 민주노동당사에서 개표상황을 지켜본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 사진=민주노동당 제공

광장에서 시작한 연대, 진보정치를 살리자는 명분

이상현 녹색당 대표는 “광장이 열렸는데 그 결과가 진보정치의 종말인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는 각 정당과 단체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고 서로 양보하기로 한 동력이었다. 이백윤 노동당 대표는 “당원들에게 참 고맙다”며 “기존 정의당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 있고 (연대하겠다고 주장한) 나를 비판할 수 있지만 당원들이 동참한 것이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광장에서 떠들던 의제를 대선에서도 마음껏 말했다. 왕복근 민주노동당 관악구위원회 위원장(공공운수노조 서울본부 조직국장)은 “민주당에서 노동·산재사망·여성·기후 이야기를 많이 말하지 않았지만 그 중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만들었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민주당에서 이런 정책을 발표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 유세날인 지난 2일 늦은 시각 권 후보는 노동자 사망 소식을 듣고 일정을 변경해 태안화력발전소로 향했고 투표 당일인 3일에도 태안을 한번 더 방문했다. 이후 민주당 선대위 노동본부에서도 관련 성명이 나왔고 김용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태안을 찾았다. 이러한 양당의 움직임이 권 후보의 적극적 행보와 무관치 않다는 게 왕 위원장 생각이다.

선대위 관계자들은 대선 이후를 도모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2002년 민주노동당으로 정계에 입문해 진보신당·정의당 등을 거쳐온 나경채 실장은 “열개 이상의 세력, 민주노총의 절반이 연합군을 이룬 이례적인 선거였다”며 “선거 이후에 뭔가 더 해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나순자 본부장도 “진보정치가 끝나지 않았다는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4일 오전까지 밤 사이에 3만5000여건의 후원이 있었다. 총 금액은 13억 원을 넘겼는데 지난 대선 때 같은 시간대 후원금 12억 원보다 많은 액수였다. 민주노동당은 “이 마음들을 결코 잊지 않겠다”며 “흔들리지 않고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 곁에서 함께하는 진보정치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미디어오늘은 3일 오후 10시경 권영국 후보도 만났다. 권 후보는 여정을 함께한 이들 한명 한명에게 인사를 나눴고, 대선 후보 경호팀의 퇴근시간이 밤 12시라는 점을 고려해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했다.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가 사망해 2일 밤에도 태안에 다녀왔고 오늘(3일) 오전에도 다시 다녀왔다. 선거 당일까지 열심히 뛰었는데 체력은 괜찮나.

“선거 땐 아침에 4시에 일어나서 달리기를 했다. 아침에 더 자는 것보다는 조깅을 해서 체력을 유지하고, 짧은 시간 차에서 조는 게 더 나은 것 같다.”

-지상파 출구조사 결과 1.3% 득표가 예상된다고 나왔는데 결과를 보고 어땠나?

“조금 실망했다. 그것보다는 더 나올 거라 생각했다.”

-유세하면서 느꼈던 시민들의 반응과 대비해볼 때 실망했다는 뜻인가?

“그렇다. 거리에서 시민들의 반응은 굉장히 좋았다. 휴게소, 기차역, 공항에 가보면 호응이 있다. 절반 이상이 알아보고 사진 찍자고 줄을 서기도 하고. '제로(0)'에서 시작하지 않았나. 민주노동당이 인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출발해 이젠 인지도가 잡히기 시작했다. 진보정치의 가능성, 최소한의 가능성을 만들었다고 본다.”

-이전에도 출마 경험이 있지만 이런 반응은 처음 경험했을 것 같다.

“맞다. 특히 지난 총선 때는 정의당이라고 하면 굉장히 냉담했다. 이번에는 우호적이었다.”

-같이 선거 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공통적으로 '연대한 여러 세력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고 말하더라. 그 요인을 뭐라고 보나.

“자칫하면 대중들로부터 완전히 잊힐 수 있고 외면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공동대응을 깨선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했다. 실제 공동대응을 하는 과정에서 단결력이 높아졌고 구심이 만들어졌다. '이번 선거는 권영국의 선거가 아니라 여러분의 선거다. 여러분이 권영국이고 권영국이 여러분이다.' 그런 마음으로 참여한 노조, 시민사회단체, 노동당과 녹색당이 자기 일처럼 선거를 뛰었다.”

-재정은 열악하고 주관이 뚜렷한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사실 싸우고 쪼개지기 쉬운 조건이었다. 힘을 합하지 않았다면 열악한 상황에서 완주하기 어려웠을텐데.

“대부분이 '정말 신나서 선거 운동을 했다'고 얘기를 한다. 선대위는 현수막 걸 돈이 없어서 다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걸어줬다. 유세차도 중앙선대위에는 한 대만 마련했고 나머지는 각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준비한 것이다.”

-언론에서 3파전으로 다루면서 권영국 후보를 배제하는 경우가 많았다. 권영국과 민주노동당의 인지도가 낮은 상황에서는 큰 장벽일 수 있지 않나.

“언론에서 TV토론에 4명이 나오는데도 3명만 다루며 (3파전) 구도를 만들어냈고, 우리를 배제하는 분위기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준석 후보에 대한 기사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언론에서 정말 이준석 같은 이를 차기 지도자로 키워내겠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니라면 그런 구도를 만들면 안 된다. '40대 윤석열'을 키워서 뭘 기대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오늘로 선거가 끝났으니 대선 이후를 준비해야 하지 않나.

“이제 막 끝났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건 가혹하다(웃음). 지금 연대의 틀을 유지하면서 내부적으로 긴밀함을 강화하고 공감대를 넓혀가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와 이후 총선에서도 공동대응 기조를 유지하면 좋겠다.”

내년 지방선거 출마도 준비할 것인지 물었다. 권 후보는 웃으며 “지금은 생각하기 싫어요”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잠시 뒤 “대선이 가장 힘들겠죠?”라는 말로 답을 마무리했다. 다음날인 4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권 후보는 “기대에 못 미치는 득표율이었음을 인정한다”며 “시민들 호응이 득표로 이어지지 않은 이 문제는 숙제로 남겨두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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