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대 MBC 금토극 부활 미션을 받은 정경호의 '노무사 노무진' [드라마 쪼개보기]
아이즈 ize 조이음(칼럼니스트)

"이게 뭐야? 주마등인가? 주마등이 너무 긴데?"
떨어지는 H형강에 깔리기 직전, 갑작스레 눈 앞에 어린 시절이 펼쳐지자 노무진(정경호)은 당황한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보살(탕준상)은 목숨을 살려주는 대가로 "산업 현장에서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을 성불시켜 달라"고 한다. 그가 내민 근로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순간, 노무진은 다시 현실로 돌아오지만 목숨을 건진다. 최근 방송된 두 작품이 연달아 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고전을 면치 못했던 MBC 금토드라마 자리에서 막을 올린 '노무사 노무진'이 4.1%의 시청률로 순항을 시작한 건, 바로 이런 기발한 상상력 때문일 것이다.
MBC 새 금토드라마 '노무사 노무진'(극본 김보통·유승희, 연출 임순례)은 유령이 보이는 노무사 노무진의 좌충우돌 노동 문제 해결기를 담은 코믹 판타지 활극이다. 주인공 노무진은 코인 투자로 전 재산을 날리고 아내와 별거 중인 '무(無)'의 남자. 퇴직금까지 끌어다 한 방을 노렸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그렇게 바닥까지 떨어졌다. 머리는 좋아 노무사 자격증까지 땄지만, 개업과 동시에 사무실은 파리만 날린다. 그에게 취직 제안을 받고 합류한 백수 처제 나희주(설인아)와 MZ 영상 크리에이터 고견우(차학연)는 노무진과 함께 팀을 이뤄 산업재해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유령들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나선다. '노무사 노무진'은 이처럼 판타지라는 외피 속에 묵직한 노동 현실을 품는다. 하지만 그 현실을 무겁게만 다루지 않는다. 코믹하고 경쾌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전한다.

노동 현장과 유령.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단어들이지만, 이 드라마는 첫 화부터 이들을 설득력 있게 엮어낸다. 공장에 현장 실습을 나갔던 고등학생 이민욱(박수오)은 정식 채용을 꿈꾸며 열악한 환경에서도 성실히 일하지만, 결국 기계 끼임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그러나 공장 측과 유족 간의 모종의 합의로 사고는 조용히 묻히고, 그가 죽음에 이르게 된 이유와 얽힌 진실은 은폐된다. 이 과정은 SPC 삼립 시화공장,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등 현실의 사건들과 겹치며 생생한 공감대를 자아낸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마음이 가볍지 않은 이유다. 단순히 미래를 위해, 돈을 좇아 노무사의 길을 택했던 노무진이 유령들을 만나면서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은 결국 한 사람이 변화하고 그 사람이 다시 사회를 바꾸는 묘한 설득력을 만들어낸다. 드라마는 단 2회 만에 그 균형을 안정적으로 잡아냈다.
의뢰 하나 받지 못해 월세까지 밀린 노무진은 건물주에게 쫓겨다니게 된다. 그런 그에게 나희주는 안전설비가 부실한 사업장을 찾아가 협박해 자문 계약을 체결하자는 제안을 한다. 노무진은 "같이 사기를 치자는 얘기야? 이게 사기가 아니면 뭐가 사기인데"라고 어이없어 하지만, 나희주는 물러서지 않는다. "산재로 사람이 죽어도 벌금이나 집행유예로 끝나는 게 현실이야. 너무 어이없지 않아?" 결국 노무진은 나희주의 방식에 끌려 들어간다. 이러한 과정은 이 드라마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정면으로 다루며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무진스의 활동엔 정의가 있고, 악덕 사업주의 은폐엔 빈틈이 있다. 그 간극이 인물들을 변화시키고, 어느덧 이들의 사무소는 억울한 영혼들의 마지막 희망이자 진실을 밝히는 주무대로 자리 잡는다.

타이틀 롤을 맡은 정경호는 노무진에 완벽히 녹아든다. 첫 회에서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까지 끌어다 코인에 투자하며 한탕을 노리지만, 결국 참담한 실패를 맛본다. 소주를 들이켜며 눈물과 콧물을 흘리던 그는, 어느 순간 공장에서 악덕 사장에게 맞서는 강단 있는 노무사로 변화한다. 이 자연스러운 서사와 감정의 흐름은 정경호의 연기 내공 덕분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일타 스캔들' 등에서 보여준 까칠한 매력에 더해, 이번엔 서민적 정서와 사회적 의식을 품은 복합적인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나희주 역의 설인아는 차갑고 똑똑하면서도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 조력자로서의 균형을 이루는 인물. 현실적인 감각과 따뜻한 인간미를 동시에 보여준다. 고견우 역의 차학연은 MZ세대 특유의 감성과 정의감을 자연스럽게 녹여냈고, 보살 역의 탕준상은 신비롭고도 코믹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드라마에 독특한 색채를 더한다.
'노무사 노무진'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교섭' 등을 연출한 임순례 감독의 첫 드라마 도전작이자, 넷플릭스 'D.P.' 시리즈의 김보통 작가와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유승희 작가가 공동 집필한 작품이다. 첫 에피소드만으로도 마치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장면 구성과, 사회적 메시지와 대중적 재미를 모두 아우른 스토리텔링은 이후 회차에 대한 기대를 높이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노무사 노무진'은 웃기면서도 따뜻하다.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자꾸 분노가 치밀다가도, 어느 순간 묘하게 시원해진다. 더운 날, 원혼 서린 귀신이 직접 나타나 복수하던 익숙한 공포 서사 대신 정의로 현실을 바꾸는 사람들의 이야기, 정경호가 악덕 공장주에게 선사하는 '현실 밀착형 참교육'은 시청자에게 통쾌함을 안긴다. 동시에 드라마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을 놓치지 않는다. 단순한 응징극에서 그치지 않고,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지를 묻는다.
MBC가 연이은 0%대 시청률 굴욕을 끊고 4.1%라는 출발선을 끊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균형 감각 덕분일 것이다. 무엇보다 '노무사 노무진'은 그 쉽지 않은 조화의 기초를 성공적으로 완성해냈다. 유령과 노동, 코미디와 사회의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 독특한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지켜보는 재미가 크다.
조이음(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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