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읽은 기분… 동네 초능력자들의 ‘웃음 차력쇼’

이민경 기자 2025. 6. 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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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스오피스 1위 ‘하이파이브’
평범한 일상 살던 소시민들
장기 이식으로 초능력 얻어
이재인 주인공役 완벽 소화
라미란·안재홍 코믹신 일품
속도감 있는 ‘축지법’ 연출
오락영화로 관객 취향저격
영화 ‘하이파이브’는 충무로의 떠오르는 신예와 베테랑들의 연기가 앙상블을 이룬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완서 역의 이재인, 선녀 역의 라미란, 지성 역의 안재홍, 약선 역의 김희원. NEW 제공

토요일 오후 만화방(영화관)에 가서 까슬한 종이에 인쇄된 만화책(스크린에 펼쳐진 영화)을 본 느낌. 분명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열 권짜리 만화책을 본 것만 같은 이 기분. 강형철 감독이 노렸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영화 ‘하이파이브’는 개봉 닷새째 누적관객 64만여 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감정의 과잉 따위는 없다. 깃털처럼 가벼운 오락영화로서 제대로 명중했다. 대선배 신구를 삼킨 박진영, 인생 최대 노출연기를 감행한 라미란의 반전, 강 감독의 페르소나 안재홍, 발차기에서 민트향이 날 듯 청량한 이재인. 그리고 ‘볼드모트’(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이 금기인 사람을 은유)가 돼버렸지만 흐르는 끼와 멋을 숨기지 못하는 유아인까지 모두가 만화 캐릭터처럼 경쾌하다.

‘하이파이브’의 표지를 넘기자 카메오로 출연한 배우 이동휘, 김원해가 메스를 집어 든다. 수술베드에 누운 의문의 장기기증자 앞에서 의료진은 묵념한다. 다음 장면에서 어깨가 결린 듯 팔을 돌리며 나오는 두 사람. “칼을 몇 개나 해먹은 거야?” 의미심장한 대사를 던진다.

의문의 기증자로부터 나온 심장, 폐, 각막, 신장, 간, 췌장 여섯 개의 장기는 애타게 기다리던 대기자 완서(이재인), 지성(안재홍), 기동(유아인), 선녀(라미란), 약선(김희원), 영춘(신구)에게 각각 이식된다. 췌장을 제외한 다섯 개 장기는 일상 속 소시민에게 이식됐다. 이 초능력자들은 기껏해야 언덕길을 미친 듯이 오르며 스트레스를 풀거나(완서), 가파른 골목길에서 폐지로 가득 찬 리어카를 끄는 노인을 바람으로 밀어주는(지성) ‘선행’을 하고 앉아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 감독은 “제 욕망이 그 정도인 것 같다”며 “동네사람들이 초능력을 가졌는데 지구를 구하겠나. 동네사람들 좀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

주인공이 여럿 나오지만 극의 실질적 주인공은 최연소 이재인이 연기하는 완서다. 강 감독은 “완서 역에는 이재인이 ‘적역’이었다”며 “저는 스타배우, 미남미녀 상관 안 한다. 오직 역할과 어울리는 배우를 모셔서 작업한다”고 밝혔다.

라미란이 연기한 선녀는 다른 초능력자와 달리 맹숭맹숭하다. 초능력이 생기며 자연스레 새겨진 문신도 혼자만 팔목이 아닌, 엉덩이와 등의 중간지점인 천골에 ‘○’ 하나가 재미없게 그려져 있을 뿐이다. 눈치 빠른 시네필들은 그에게 감독이 숨겨둔 ‘끝판왕’ 능력이 부여됐을 것을 기대하고 극을 따라가게 된다.

강 감독은 “신장은 ‘순환’을 대표하는 장기 아닌가. 서로를 연결하고, 기능이 떨어진 장기를 보양해주는 속성을 인간의 관계로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라미란은 “좀 아슬아슬하긴 했다. (엉덩이)골 들어가기 직전까지 속옷을 끌어내려야 해서 인생 최대 노출연기였다”고 웃음으로 승화했다.

유일한 빌런으로 췌장을 이식받은 사이비교주 영춘은 주변 사람들의 젊음과 양기를 빨아들여 회춘한다. 강 감독은 “제가 본 수많은 무협만화 속에서 악당들은 공통적으로 남의 것을 빨아들이더라. 흡수하는 능력을 대변하는 장기를 췌장으로 설정해봤다”고 설명했다.

흔히 만화에선 캐릭터가 빠르게 달리는 것을 소용돌이 모양으로 표현한다. 최강자들의 대결을 펼치는 완서와 영춘의 축지법은 강 감독이 지향하는 만화 같은 오락영화의 아이덴티티와도 같다. 이재인은 “그린스크린 앞에서 트레드밀을 달리고 강풍기를 트는 식으로 속도감을 표현했다. 영화 크레디트가 정말 길다. 그걸 보고 있으면 컴퓨터그래픽 효과가 많은 완서 캐릭터를 위해 정말 많은 사람이 노력한 것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상쾌한 액션영화지만 웃기려고 작정하고 넣은 몇몇 대사와 장면은 유치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강 감독은 “관객 취향이 다양함을 안다. 한 작품으로 모든 관객을 만족시킬 순 없겠지만 제 ‘비디오가게’에 오시면 분명 재밌는 작품 하나는 건지실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후진 영화는 없어야 한다. 잿밥에만 관심 있는 영화는 향후 절대 없을 것이다.” 15세 관람가.

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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