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유행 대신 자신만의 속도로…서울 청년이 영월서 빚은 '위로의 디저트'
서울시 '넥스트로컬'이 영월로 간 전환점
엄마 위로하던 마음으로 현지 '입맛' 살려
"지역으로 눈을 돌리면 더 많은 기회가"

"매일 새벽 초콜릿을 만든 저의 정성에 위로를 받았다는 엄마의 한 마디가 시작이었어요."
강원 영월군에서 로컬브랜드 '위로약방'을 운영하는 한은경(39) 대표는 당뇨를 앓는 어머니를 위한 디저트 개발을 계기로 창업의 길에 들어섰다. 혈당 조절이 필요한 당뇨환자를 위해 팥을 활용한 저당 초콜릿을 만들었고, 이 제품이 입소문을 타며 백화점 납품으로 이어졌다. 이른바 '성공한 청년 사업가'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 제품 원재료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지역의 현실'을 마주했다. 젊은 인력은커녕 외국인 노동자마저 부족해 좋은 원료를 효과적으로 공급하기 힘든 농촌의 열악한 실상을 알게 된 것이다. '지역에 일자리를 만들고 좋은 제품으로 보답하겠다'는 새로운 꿈이 가슴속에서 꿈틀거렸다.

지난달 13일 서울시청에서 만난 한 대표는 "2021년 서울시의 로컬 창업 지원사업 '넥스트로컬'을 접한 게 큰 전환점"이라고 했다. 서울 청년이 수도권 밖 인구 감소 지역의 유무형 자원을 활용하거나 해당 지역에서 창업하도록 지원하는 이 사업은 단순히 사업지원금을 마련하는 것 이상의 성과를 선사했다. "넥스트로컬이 없었다면 이 정도로 사업을 확장하지 못했을 거예요. '뜨내기 청년과 거래 안 한다'는 지역민의 텃세에 부딪혔지만 넥스트로컬의 지역 파트너를 통해 접점을 넓히며 소중한 관계를 만들 수 있었거든요."
한 대표는 단종의 유배지였던 영월이 위로를 건넬 디저트를 만들기에 딱 맞는 고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위로약방이다. 건강한 간식을 통한 '엄마의 위로'를 지역까지 확장한 셈이다. 그는 "지역 어르신들이 청년들과 같이 제품을 만들어 팔고 수익을 돌려받는 경험을 하면서 자존감을 높이고 위로를 받는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현재 위로약방에서는 70~90대 직원 10명이 하루에 최대 3시간씩 근무한다. 장시간 노동이 어렵고 지자체 공공근로와 병행해야 하는 어르신들의 사정을 고려한 것이다. 시급은 최저시급보다 많은 1만2,000원이라 인기가 높다. "일하고 싶다는 어르신 30여 명이 대기 중"이라는 게 한 대표의 설명이다.

제품 레시피도 지역 어르신들의 '입맛'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개발했다. 구하기 쉽고 거의 모두 선호하는 쑥을 재료로 택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처음에는 쌀가루로 빵을 만들고 속을 마시멜로로 채웠는데 어르신들이 소화가 안 된다면서 한 개를 다 못 드시더라고요. 그래서 통밀로 카스텔라 식감을 내고 안에는 부드러운 크림을 넣었죠. 이제는 앉은 자리에서 2, 3개를 거뜬히 드세요."
이렇게 세상에 나온 '쑥쉘'은 금세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온라인 펀딩 일주일 만에 3,6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 대표는 위로약방의 수익이 '지역의 즐거움'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지역 어르신과 이주노동자, 청소년들의 사랑방과 지역 홍보대사 역할을 자처하고 제품 생산은 지역 내에서 한다는 원칙을 확실히 정했다. "무슨 일이 생겨도 할머니들의 인건비는 빠짐없이 지급했어요. 지역의 신뢰를 얻는 가장 큰 투자라고 생각했거든요."

공장을 지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한 대표의 의지에 지역이 화답한 결과다. 영월농업기술센터가 제조시설 설립을 지원하며 한 대표는 '제주 감귤 초콜릿'처럼 영월에 가면 꼭 사야 하는 브랜드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 대표는 지역이 청년들에게 '새로운 기회'라고 확신한다. 끊임없는 경쟁과 시시각각 바뀌는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철학과 개성이 담긴 브랜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기도 했다. "도시의 속도를 버겁게 따라가는 대신 나만의 속도에 맞춰 '나다움'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지역이라고 생각해요. 수도권보다 지역으로 눈을 돌리면 더 많은 기회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김민순 기자 s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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