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 대통령의 ‘당선 일성’

권혁범 기자 2025. 6. 4.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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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가슴 벅찰까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순간. 모든 국민이 오직 한 명을 바라보는 짧은 시간. 생각의 단편, 조합되지 않은 단어가 머릿속을 뱅글뱅글 맴돌 것 같네요. 피 튀길 듯 치열했던 선거운동, 물밑에서 움직인 셀 수 없는 동지, 한 표 한 표 모아준 국민을 떠올리며 각오도 다지겠죠. 험난했던 정치 역정이 주마등에 새겨지기도 하겠죠.

어찌 보면 더 오를 곳 없는 ‘최고의 자리’. 걱정도 이만저만 아니겠죠. “약속합니다” “반드시 이뤄내겠습니다” 공언한 게 한둘이 아닐 텐데, 뭣부터 손대야 할지 고민이 많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재명 제21대 대통령의 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선 후 첫 일성에 어떤 마음을 담았을까요.

우선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이 당선을 확정한 순간 가장 먼저 무슨 말을 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타산지석이든 반면교사든, 이재명 대통령이 꼭 참고해야 할 부분이 있을 겁니다.

1992년 12월 19일 자 국제신문 1면


제14대 김영삼 전 대통령부터 확인해보시죠.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12월 18일 선거를 치러 다음 날 새벽 5시께 당선을 확정합니다. 군사정권 잔재를 걷어내고 32년 만에 문민 시대 새 지도자로 뽑힌 겁니다. 그는 당선 기자회견에서 “이 순간 당선의 기쁨에 앞서 무거운 책임감과 엄숙한 소명감을 느낀다”며 “저의 승리는 안정 속에서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국민 모두의 위대한 승리”라고 자평했습니다.

‘안정’ ‘변화와 개혁’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체성에 관한 설명으로도 해석됩니다. 평생 야당 정치인으로 민주화의 길을 걷던 그는 3당 합당으로 거대 여당 대선 후보가 됐고, 결국 대통령 자리에 오릅니다. 그러나 3당 합당을 둘러싼 비난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다분히 이를 의식한 발언을 합니다. 자신이 ‘안정적인’ 거대 야당에서 ‘변화와 개혁’을 추진할 적임자라는 뜻이겠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또 대선 패배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한 정치적 동지이자 경쟁자인 김대중 후보를 향해 “참으로 안타깝다.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나겠다”고도 합니다.

1997년 12월 19일 자 국제신문 1면


제15대 대선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환’합니다. 그는 1997년 12월 19일 새벽 2시를 넘어서면서 ‘사실상 당선 확정’ 판정을 받습니다. 헌정사상 50년 만에 처음으로 여야 정권 교체가 이뤄진 역사적 장면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첫 기자회견에서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북한 김정일 총비서에게 제안합니다. 또 당시 최대 화두였던 국제통화기금(IMF) 환란 사태를 두고 정면 돌파 의지를 밝힙니다. 그는 “IMF와 적극적으로 협력해 나가고 현 정부(김영삼 정부)가 IMF와 협의한 사항은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언급합니다. 다만, 그는 경제청문회를 열어 경제 파탄 책임을 끝까지 규명하겠다는 결심도 공개하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당선 일성을 지킵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하고, 6·15 공동선언도 끌어냈죠. 또 2001년 8월 23일 IMF 차입금을 모두 상환해 외환 위기를 극복합니다.

2002년 12월 20일 자 국제신문 1면


2002년 12월 19일 밤 10시께 당선권에 진입한 제16대 노무현 전 대통령은 ‘3김 시대’ 낡은 정치 청산을 앞세웁니다. 그리고 “대화와 타협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는 “앞으로 당을 달리 한 많은 의원님과 정치하시는 분들께 언제든 대화를 제의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청할 것”이라고 말하죠. 그는 “나는 절반의 대통령에 불과하며 나머지 절반은 이회창 후보이므로 많은 도움을 받고 싶다”고 상대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대화’와 ‘타협’을 앞에 꺼낸 노무현 전 대통령은 토론을 즐긴 대통령입니다. 돈도 계보도 학맥도 인맥도 없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 그는 오히려 그래서 지역주의 타파와 국민 통합, 동서 화합, 개혁의 기치를 올리지 않았을까요.

2007년 12월 20일 자 국제신문 1면


제17대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를 무기 삼아 당선됐습니다.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합니다. 당선 첫 일성도 역시 경제. 비교적 여유 있게 당선을 확정한 그는 “절대적 지지를 보내주신 국민의 뜻을 잘 알고 있다. 매우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며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경제를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자신합니다. 선거운동 내내 똑같은 파란색 머플러를 둘렀던 그는 당선 순간만큼은 진회색 머플러로 멋을 내기도 했습니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 서울시장 시절 보여준 ‘청계천 신화’가 생활고에 지친 국민을 설득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경제 위기에 성공적으로 대처했다”고 스스로 치켜세우기도 했죠. 하지만 국민이 그에게 바랐던 서민경제 부활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2012년 12월 20일 자 국제신문 1면


제18대 대선에선 대한민국 최초 여성 대통령, 부녀(父女) 대통령이 탄생합니다. 2012년 12월 19일 밤 10시40분께 당선을 확정 짓고 자택에서 나온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살리려는 열망이 가져온 국민 마음의 승리”라고 의미를 부여하죠. 그러면서 “약속 대통령, 민생 대통령, 대통합 대통령으로 국민 행복 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 농단 사태로 파면되면서 ‘대통합’이나 ‘국민 행복’과는 동떨어진 결말을 맞습니다.

2017년 5월 10일 자 국제신문 1면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진 2017년 5월 9일 제19대 대선에선 다자 구도 속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됩니다. 보궐선거를 치른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재명 당선인처럼 선거 바로 다음 날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은 민주정부임을 강조하며,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차별화합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당선 일성으로 “제3기 민주정부를 힘차게 열어가겠다. 국민이 염원하는 개혁과 통합, 그 두 가지 과제를 모두 이루겠다”고 다짐합니다. 또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도 모두 섬기는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 원칙을 지키고 상식이 통하는 나라다운 나라를 꼭 만들겠다”고 말합니다.

3기 민주정부가 ‘개혁과 통합’에 성공했는지를 두고는 ‘의문부호’가 많이 붙습니다.

2022년 3월 11일 자 국제신문 1면


검사에서 대통령으로 가는 직행열차를 탄 정치 신인. 제20대 윤석열 전 대통령은 초박빙 승부가 이어지면서 선거 다음 날 새벽까지 당선을 확정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많은 신문이 그의 당선 소식을 이틀 뒤에 보도합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평생 검사’다운 자세를 보입니다. 그는 당선이 확정된 직후 “국민께서는 26년간 공정과 정의를 위해 어떠한 권력에도 굴하지 않았던 저의 소신에 희망을 걸고 저를 이 자리에 세우셨다”며 “이 나라의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라는 개혁의 목소리다.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간절한 호소”라고 주장합니다. 이어 “공직자가 권력에 굴복하면 정의가 죽고 힘없는 국민은 더욱 위태로워진다”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부정부패는 내 편 네 편 가릴 것 없이 국민 편에서 엄단하겠다”고 법치를 천명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그랬던 윤석열 전 대통령은 스스로 법치를 무너뜨렸습니다. 국민을 편 가르지 않겠다고 했지만, 일부 강성 지지자에게만 의지하다가 파면당했죠.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을 확정한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 무대에서 시민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김정록 기자


과연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 일성’은 퇴임 날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요. 그가 ‘당선 확실’ 판단 이후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무대에서 전한 첫 메시지를 옮겨 적습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시민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제게 기대하고 맡기신 사명을 한순간도 잊지 않고,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반드시 확실히 이행하겠습니다. 첫 번째 지난해 12월 3일 내란의 밤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여러분이 풍찬노숙하며 바랐던 것, 내란을 확실히 극복하고 다시는 국민이 맡긴 총칼로 국민을 겁박하는 군사 쿠데타는 없게 하는 일. 두 번째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회복하는 것. 온 힘을 다해서 여러분의 고통스러운 삶을 가장 빠른 시간 내, 가장 확실하게 회복하겠습니다. 세 번째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국가의 책임을 완벽하게 이행하는, 안전한 나라를 꼭 만들겠습니다. 네 번째로 평화롭고 공존하는 안정된 한반도를 만들겠습니다. 확고한 국방력으로 대북 억제력을 확실하게 행사하되 싸워서 이기기보다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이고,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안보라는 확신을 가지고 남북 간 소통하고 공존하는 길을 찾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남녀로, 지역으로, 노소로, 장애인 비장애인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기업가와 노동자로, 이렇게 틈만 생기면 편을 갈라서 혐오하고 대결하지 않게 하겠습니다. 함께 어우러져 행복하게 살아가는 진정한 공동체를 꼭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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