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방’ 이력 있으니 숨어서 살라? [콘텐츠의 순간들]

복길 2025. 6. 4.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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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퀴어 연애 리얼리티에서 출연자 출연 장면을 삭제하기로 했다. 그가 과거 성인방송을 한 이력이 논란을 샀다. 이제 사랑할 자격, 존재할 자격은 매체와 대중에게 평가받는다.
국내 최초 레즈비언 연애 리얼리티 <너의 연애> 홍보 포스터. 제작사는 5월4일 휴방을 공지했다.

이제 연애 리얼리티에 출연하는 것은 단순히 사랑을 찾는 행위가 아니다. 세상에 나를 드러내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출연자들은 ‘나’라는 존재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두려움을 가득 품은 채 자신의 사적인 모습을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한다. ‘나는 타인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나는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존재일까?’ 연애 리얼리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야 발생하는 이 질문은 유별나지만, 어떤 이들에겐 평생에 걸쳐 반복된 일상적인 물음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곧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일이 된다는 점에서 연애 리얼리티 출연자와 퀴어의 존재 방식은 유사하다. 연애 리얼리티는 감정의 교환을 매개로 자신의 매력, 진정성, 사회적 수용 가능성을 입증받는 장르다. 퀴어의 사랑 역시 정체성의 노출을 전제로 작동하며 그 감정은 종종 사회적 판단과 승인의 대상이 된다. 또한 이 장르의 선택과 탈락, 노출과 수용의 서사는 퀴어가 현실에서 반복해 마주하는 일상과도 구조적으로 겹친다. 따라서 ‘퀴어 연애 리얼리티’는 새로운 시도나 획기적 도전이 아닌, 그 형식의 긴장을 가장 정밀하게 살아낸 주체가 등장하는 무대이다.

국내 최초의 레즈비언 연애 리얼리티 〈너의 연애〉는 기성 연애 리얼리티의 문법을 충실히 따른다. 출연자들은 나이, 직업, 연애 경험 등 만남에 필수적인 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채, 극도로 제한된 조건 속에서 매일 마음에 드는 상대를 선택한다. 〈너의 연애〉가 기성 작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스튜디오 패널의 부재다. 기존 연애 리얼리티는 출연자를 관찰하는 연예인 패널들이 출연자들의 심리 상태를 해석하고 그들의 선택의 이유를 추론한다. 그러나 〈너의 연애〉는 그러한 필터 없이 시청자가 직접 그들을 관찰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한다. 이는 감정에 집중할 수 있는 형식적 여유를 주기도 하지만, 퀴어의 감정에 제3자가 적극 개입하지 않겠다는 거리두기로도 읽힌다.

그런데 퀴어의 감정을 해설하지 않겠다는 이 선택은, 공교롭게도 정작 퀴어가 어떤 낙인과 오해 속에서 존재하는지에 대한 침묵으로 이어졌다. 지난 5월4일 〈너의 연애〉 제작사는 휴방을 공지하며 출연자 리원의 분량을 최대한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논란이 된 출연자의 전면 삭제를 요청하시는 시청자분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인지하고 공감하고 있다’며, ‘해당 출연자의 분량과 맥락이 보존되어야 하는 장면에 한해 출연자들의 사전 동의와 확인을 거쳐 제한적으로 노출’하겠다고 밝혔다. 논란의 시작은 ‘벗방(‘벗는 방송’의 줄임말로 인터넷 방송의 BJ들이 시청자들의 요구에 따라 탈의하거나 성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성인방송)’ BJ로 활동한 리원의 경력에서 비롯되었다. “음지에서 노출 방송이나 하던 여자가 무슨 낯으로 당당히 얼굴을 드러내는가”라는 비난과, “남성을 상대로 성적 콘텐츠를 제작한 사람이 어떻게 레즈비언일 수 있는가”라는 의심이 여초(여성 이용자 비율이 높은 사이트)·남초를 가리지 않고 모든 커뮤니티에서 들끓었다.

리원의 문제는 무엇인가? ‘벗방’을 제작한 이력이 있는 사람이 ‘양지(인터넷 방송을 ‘음지’로 표현하는 경향에서 비롯된 표현)’에 나왔다는 사실 자체인가? 아니면, 그 사람이 자신을 레즈비언이라 말하고 사랑을 시작하려 했다는 점인가? 둘 다 잘못이라 답한다면, ‘벗방’을 제작한 이력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서는 안 되는가? 남성을 상대하는 콘텐츠를 제작한 사람은 반드시 이성애자 여성이어야 하는가?

‘벗방’을 진행한 이력이 있다는 사실은 곧 ‘순결하지 않은 여성’ ‘다른 여성들을 모욕하는 여성’이라는 혐의가 되었고, 그 콘텐츠의 주 시청자가 남성이라는 사실은 ‘진짜 레즈비언이 맞느냐’는 검열이 되었다. 그가 다른 출연진을 상대로 이른바 ‘포주’ 노릇을 하려 했다는 불명확한 주장이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고, 그는 끝내 방송에서 지워졌다. 사람들은 ‘양지’에서 땀 흘려 일하는 자신들의 주장이 타당한 것이라 자축했고, 이 방송이 ‘진짜 레즈비언’들을 위해 계속 제작되기를 웃으며 염원했다.

끊임없이 내쫓기는 여자들

2020년, 〈그것이 알고 싶다〉는 벗방 BJ들이 대부분 회사에 소속되어 있으며 수익의 절반을 회사가 가져간다는 사실과, 그들이 고수익을 미끼로 여성들에게 계약을 강제하고 이후 해지할 수 없도록 위약금을 빌미로 협박하고 있다는 내용을 방송한 바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방송 후에도 ‘본인이 선택한 일’ ‘저런 여자랑 누가 결혼할지 무섭다’ 같은 반응을 보이며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한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 반성매매 인권활동가 황유나씨는 책 〈남자들의 방〉에서, 성매매를 기획하는 이들에게 ‘여성혐오’는 필수적인 동력이라 말했다. ‘벗방’의 문제를 여성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그 배후에 있는 ‘기획자’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이중적 억압에 갇힌 여성을 이 구조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게 한다.

<너의 연애>에서 출연자들이 공개되는 장면.

리원의 사례는 낯설지 않다. 겉보기에 그 명분은 ‘음지 문화’를 근절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폭력적 방식은 성매매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여성에게 씌우는 ‘창녀 혐오’와, 정체성의 증명을 요구하고 무결하지 않다면 곧바로 배척하는 ‘퀴어 혐오’가 교차한 결과다. 벗방은 성노동으로 명명되기 이전에 낙인으로 작용한다. 레즈비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출연자가 ‘정상적이고 안정적인 인간’인지를 묻는 시험이 되었다. 리원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에 가담하고 있는지를 자각하지 못한 채, 타인의 삶과 존재를 지우는 일에 정의감을 부여했다.

한 출연자의 분량이 지워진 것은 익숙한 구습이다. 사회는 여성과 퀴어의 존재가치를 조건부로 승인한다. ‘순결한 여성’만을 여성으로 인정하고, ‘오염된 여성’을 규정하고 배제하는 인식이 배후에 자리 잡고 있다. 구조에 갇혀 강제로 착취당한 여성, 생존을 위해 자발적으로 성을 판매한 여성, 나아가 끝없이 삶의 무결함을 요구받는 소수자와 작은 변화에도 쉽게 취약해지는 약자들의 안위는 위협받는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이번 논란은 새롭기도 하다. 리원이 겪은 일은, 사실 우리 모두가 ‘사랑할 자격’, 나아가 ‘존재할 자격’을 매체와 대중에게 평가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리원은 입장문에서 “‘음지는 양지로 나와선 안 된다’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말씀들, 모두 동의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프로그램이 종영된 후 한국에서 다시는 미디어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겠다. 다시는 누군가에게 불편이나 부담이 되지 않도록, 숨어서 살겠다”라고 밝혔다. 그는 어디로 가야 할까? 그를 쫓아낸 우리는 또 어디로 가는가. 함께 슬퍼하려 한다.

복길 (자유기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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