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길목에서 ‘발신자 윤석열’에 응답한 이들
〈시사IN〉은 경찰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이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윤석열의 통화 기록을 전체 입수했다. 윤석열 개인 명의 휴대전화(2024년 3월1일부터 2024년 12월12일까지)와 대통령경호처 명의 비화폰(2024년 11월8일부터 2024년 12월18일까지) 통화 내역, 두 가지다. 두 전화의 통화 내역을 분석해, 윤석열과 계엄 세력의 행적을 추적했다.

12·3 계엄의 밤 11시22분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이하 직위 생략)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계엄군을 태운 헬기가 국회에 착륙하기 약 30분 전, 발신자는 윤석열이었다. 당시 국회 인근은 아수라장이었다. 국회 정문에서 경찰, 국회 관계자, 기자, 시민들이 뒤엉켰고 그사이 국회의원 일부가 담을 넘어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갔다. 위급한 순간,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은 여당 원내대표와 약 1분 동안 통화했다.
비상계엄 해제요구안 의결을 위해 국회의원 최소 150명이 국회 본회의장에 도착하는 게 급선무였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의원들에게 곧장 ‘국회 소집’을 지시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비상 의원총회 장소를 바꿔가며 오락가락했는데, 이 혼란을 빚은 사람이 추경호다.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추경호는 비상 의원총회 장소를 국회(밤 11시3분) → 당사(밤 11시9분) → 국회 예결위장(밤 11시33분) → 당사 3층(다음 날 오전 0시3분)으로 네 차례 변경했다. 그 결과 비상계엄 해제 결의 당시 본회의에 참석한 국민의힘 의원은 전체 108명 중 18명에 불과했다. 50여 명이 지도부의 마지막 지침에 따라 당사에 모여 있었다. 정작 추경호는 국회 원내대표실에 있으면서도 “내 판단”이라며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추경호의 갈팡질팡 지시 때문에 그날 밤 국회의원 정족수가 채워지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시 표결에 참여한 김상욱 국민의힘 원내부대표(탈당 후 5월19일 더불어민주당 입당)는 “한동훈 당대표는 본회의장으로 모여서 (비상계엄을) 풀어야 한다고 하고 있는데, 원내대표가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못 들어가게끔 계속 헷갈리게 했다”라고 비판했다. 그런 추경호가 윤석열과 통화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계엄 해제 방해를 지시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5월18일 추경호는 “(윤석열이) 비상계엄 발표 내용을 간단히 전하면서 미리 이야기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며 짧게 통화가 끝났다”라며 윤석열과의 통화가 국민의힘 비상의총 장소를 바꾼 것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윤석열은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하 직위 생략)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발신 시각은 2024년 12월3일 밤 11시26분, 추경호와 통화를 마치고 약 3분 뒤다. 약 40초간 통화했다. 나경원은 “미리 상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내용”의 통화였다고 설명했지만, 결과적으로 나경원도 당사에 머무른 채 표결에 불참했다. 나경원은 2024년 12월19일 “일부 의원들은 국회 경내로 들어가려다가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심한 말을 듣고 모두 당사로 복귀했다”라고 해명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윤석열의 전화를 받기 3~4시간 전쯤, 윤석열은 12·3 비상계엄 선포를 앞두고 국무위원을 모으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국무위원들에게 직접 전화해서 대통령실로 불러들였다. 박성재 장관(오후 7시41분), 조태열 외교부 장관(오후 7시54분), 김영호 통일부 장관(오후 8시6분), 최상목 경제부총리(오후 9시42분) 등이 윤석열과 통화하고 곧장 대통령실로 향했다. 윤석열은 이때 국무위원 11명이 모인 모임을 비상계엄 선포 심의를 위한 국무회의라고 부르며, 12·3 비상계엄이 절차적 정당성을 갖췄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석열의 통화 기록을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지난해 3월 말부터 ‘비상계엄 준비’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다. 윤석열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비상계엄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의 통화 기록에서도 그 정황이 포착됐다. 특히 3월 말 대통령 안가 모임에서 비상조치를 처음 언급한 이후, 윤석열은 시간을 가리지 않고 김용현 전 장관을 찾기 시작했다.
2024년 3월 말 전후, 윤석열과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이하 직위 생략), 신원식 국방부 장관, 여인형 방첩사령관, 조태용 국정원장이 대통령 안전가옥에서 모였다. 이 자리에서 윤석열은 술을 마시며 “정상적인 정치 상황으로 가기 굉장히 어려워졌다. 비상한 조치가 필요하다” “군이 나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이 시기 김용현과 윤석열은 3월23일에 1회(30초), 3월26일에 2회(14초, 2분37초) 통화했다. 3월 안가 회동이 열린 것으로 알려진 3월 말 이후 김용현과 윤석열 사이의 통화가 부쩍 늘었다. 4월 한 달간 10회(총 26분)의 통화가 이뤄졌다. 발신인은 항상 윤석열이었다.
제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이후, 윤석열은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도 김용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2024년 4월10일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108석을 얻는 데 그치며 사상 최대 격차로 패배했다. 윤석열과 김용현은 총선 이튿날인 2024년 4월11일 밤 10시50분과 4월14일 오전 9시8분, 오후 6시9분, 밤 11시56분에 통화했다. 그중 4월14일 밤 11시56분에 시작한 전화는 자정을 넘겨 다음 날 오전 0시7분까지 11분간 이어졌다. 총선 패배 후 첫 입장을 밝히던 2024년 4월16일에도 윤석열은 김용현과 1분 남짓 통화를 두 차례(오전 7시, 오후 3시) 했다.

2024년 8월12일 윤석열은 김용현을 국방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를 건의할 수 있는 자리다. 지명 전날인 8월11일과 지명 이틀 뒤인 8월14일 김용현은 윤석열과 통화했다.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되는 9월6일 전인 9월4일에도, 두 사람은 1분가량의 짧은 통화를 했으며, 임명 당일 아침에도 두 사람은 2차례 통화했다. 김용현이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한 시점을 기준으로, 윤석열과 김용현 사이 통화 기록이 급격히 줄었다. 2024년 9월6일 이후, 윤석열의 통화 내역에 남아 있는 김용현과의 통화는 2024년 10월4일 밤 9시17분(47초), 9시18분(58초), 12월4일 오전 0시31분(16초) 세 통뿐이다.
9월 이후 ‘김용현 통화’ 줄어든 까닭
두 사람 사이 통화 내역이 줄어든 것은 비화폰 때문이다. 검찰에 따르면, 양측이 갖고 있는 각각의 비화폰이 ‘비화폰 모드’로 통화 연결된 경우 일반 서버에 통화 내역이 남지 않는다. 당시 김용현은 전화기를 3대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개인 폰, 하나는 국방부에서 지급되는 장관용 비화폰, 마지막 하나는 정부(경호처)에서 지급하는 비화폰인 ‘정부폰’이다(2024년 12월8일 김용현 검찰 진술).” 김용현은 대통령과 연락할 때는 정부폰을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비상계엄 작전’은 두 사람 사이 통화 내역이 남지 않기 시작한 시점부터 본격화했다. 김용현과 곽종근·이진우·여인형 사령관의 검찰 진술을 종합하면, 윤석열은 김용현 앞에서 “현재의 사법체계, 방탄 국회, 재판 지연 상황에서는 이재명 대표 같은 사람을 어찌할 수 없다. 비상대권을 통해 조치해야 한다(2024년 10월1일)” “헌법상 비상조치를 해야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다(2024년 11월30일)”라고 말했다. 2024년 11월 말 비상계엄 선포 대국민 담화문과 포고령 초안이 작성됐다. 12월1일 오전 윤석열은 김용현이 제출한 초안을 확인하고 수정했다. 그리고 이튿날 수정본을 확인한 윤석열은 특별한 수정 지시 없이 “됐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12월3일 밤 10시27분,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문준영·이은기 기자 juny@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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