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빙고! 얼음의 건축학

2025. 6. 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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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이제 여름이다. 빙수의 계절, 팥이든 과일이든 모두 얼음 위에 소복이 올라앉으며, 정수기도 얼음이 나오는지를 따진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커피(얼죽아)"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얼음은 단순한 냉각제를 넘어, 사회 구조와 과학기술, 그리고 건축적 상상력이 응축된 '차가운 자산'이었다.

조선시대에 여름철 얼음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빙고' 덕분이었다. 빙고는 겨울철 한강에서 채취한 얼음을 저장하던 국가 운영의 냉동 창고였다. 서울에는 궁중에서 사용할 얼음을 보관하던 내빙고, 국가 제사용 얼음을 담당한 동빙고, 그리고 관청용 얼음을 저장했던 서빙고 세 곳이 있었는데, 이 중 서빙고가 가장 규모가 컸다.

빙고는 건축적으로도 매우 정교한 구조물이었다. 내부는 지하를 파서 바닥에 경사진 배수로를 만들고, 벽은 석재나 벽돌로 두껍게 쌓아 단열 효과를 높였다. 천장은 석조 아치 형태로 구축하고 아치 사이에는 환기구를 설치해 공기 흐름을 조절했다. 또한, 얼음 사이를 볏짚과 왕겨 등의 공기층을 사용해 내부 온도를 유지했다. 이는 오늘날의 '제로에너지빌딩'이나 '패시브하우스' 개념과 일치한다.

조선의 연산군은 한여름 경복궁 경회루 사방에 거대한 얼음쟁반을 설치해 일종의 냉풍기를 만들어 대비의 생일연을 열었다고 한다. 얼음 위에 포도를 올려 차게 즐기고, 얼음 장식 병풍을 만들고, 품에 안는 얼음 인형까지 제작해 더위를 쫓았다 한다. 이처럼 얼음은 곧 권력이자 신분의 징표였으며, 얼음을 하사받을 수 있는 '빙표'는 왕이 내리는 특별한 선물이었다.

그렇다면 이 시원한 얼음은 누구의 손으로 만들어졌을까? 한겨울 새벽, 한강 가에서 얼음을 잘라 빙고까지 옮기던 백성들의 고된 노역이 있었다. 노숙과 동상은 예사에 심지어 목숨을 잃는 경우도 허다했다. 겨울이면 장정들이 부역을 피해 도망가 한강 가에 과부가 늘어 '빙고청상(氷庫靑孀)'이란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였다. 일부 선비들은 이 얼음을 백성의 눈물이 얼어붙은 것이라 하여 '누빙(淚氷)'이라 부르며 하사받기를 거부하기도 했다. 당시 얼음은 단순한 시원함이 아닌, 불평등과 고통의 상징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렇게 얼음을 잘라 옮겨야 했던 백성들의 노고를 덜어주고자 했던 인물이 바로 다산 정약용이다. 다산은 햇볕이 들지 않는 그늘진 곳에 토굴을 파고, 벽에는 석회, 모래, 흙을 섞어 두껍게 발라 외부 공기를 차단했다. 그리고 가장 추운 날 토굴에 물을 부어 얼렸는데, 여러 차례 물을 부어 겹겹이 얼음층이 쌓이게 하여 토굴 자체를 거대한 얼음덩어리로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토굴 속 얼음은 위를 덮어두면 여름까지도 녹지 않았다고 한다. 만약 우물이 멀리 떨어져 있다면 대나무 등을 이용한 홈통을 연결하여 물을 끌어왔다고 전해지는데, 이것이 바로 자연의 원리를 이용한 제빙기였다. 기존 빙고가 잘라낸 얼음을 이동시켜 저장했다면, 다산은 얼음 자체를 특정 공간에서 '제조'하는 혁신적인 방식을 고안한 것이다. 얼음을 '이동'의 대상이 아닌 '창조'의 대상으로 본 발상의 전환이었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서 엘사는 노래하며 설산을 오르다 마주친 골짜기를 마법으로 얼음 다리를 만들어 건넌다. 만약 현실이었다면 이 얼음 다리는 안전했을까? 얼음은 압축력에는 강하지만 인장력에는 매우 취약해 쉽게 깨지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다리 밑 부분이 먼저 깨져 건너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얼음 내부에 섬유질 같은 보강재를 넣어 마치 물 분자 사이에 다리를 놓는 '브리징 효과(bridging effect)'를 이용하면 인장 강도가 훨씬 높은 구조가 된다.

이러한 원리는 현대 건축의 핵심 재료인 콘크리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콘크리트 역시 압축력에는 강하지만 인장력에는 약하기에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인장에 강한 철근을 함께 사용한다. 그래서 철근콘크리트구조라 부른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대부분의 주거 공간이 콘크리트구조가 아닌 철근콘크리트구조인 것이다. 콘크리트는 시멘트, 모래, 자갈, 물의 혼합물인데, 굳어지는 과정에서 열이 발생한다. 특히 콘크리트의 부피가 클수록 더 높은 열이 발생하는데, 이 열을 억제하고 균열을 줄이기 위해 콘크리트 배합 시 얼음을 사용하기도 한다. 빙고는 단순한 과거의 냉동고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에너지로 자연의 순환 원리를 활용했던 수백 년 전 선조들의 건축적 지혜였으며, 기후 변화에 직면하여 환경과의 공존을 모색해야 할 우리에게 중요한 영감을 주고 있다. 얼음 자체는 차고 시원했지만, 그 이면의 역사는 고통스럽고 뜨거웠기에, 이젠 그 얼음을 차갑게만 바라볼 수는 없다. 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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