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판사’라는 오명[취재 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5월 1일 ‘이재명 판결’을 선고한 뒤 법원 내부통신망에 판사들의 글이 올라왔다. 대선을 앞둔 시점 대법원의 전례 없이 신속했던 절차 진행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글의 수도 많았지만, 비판의 수위도 높았다. 한 판사는 “조희대 대법원장은 직에서 물러나라”고 했고, 다른 판사는 “이러고도 당신이 대법관이냐”고 했다. 글을 읽으며 ‘판사들이 이렇게 분노할 정도로 대법원 판결이 문제적이었구나’ 싶었다가, 새삼 ‘법원이란 무엇인가’ 곱씹고 있었다.
황당함은 그다음에 왔다. 보수언론이 대법원을 비판하는 판사들을 ‘정치 판사’로 몰기 시작한 것이다. 판사들 글이 법관윤리강령 위반 소지가 있다고도 했다. 국민의힘은 김문수 대선후보 직속으로 사법독립수호·독재저지 투쟁위원회를 만들었다. 위원회는 언론 보도를 인용하며 “특정 정치 성향 법관들이 법관회의를 악용한다”고 주장했다. 보수언론과 국민의힘의 정치 판사 운운이 하루이틀 된 이야기는 아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들에게 ‘편향 판사’ 낙인을 찍어왔는데, 이번엔 ‘30년차 법관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는’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자 정치적이라고 힐난한 것이다.
그런 보수언론과 국민의힘은 정작 법관 독립 침해가 드러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건은 줄곧 부인하고 외면해왔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 대법원 판결을 정부 운영 협력사례로 제시한 일, 일선 재판부에 재판 쟁점에 관한 의견을 전달한 일, 당사자 일방과 소송 내용을 몰래 협의하고 검토해준 일, 대법원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물의 야기 법관 명단에 올린 일. 모두 대법원과 그 산하 법원행정처가 실행한 일이다. 이런 일들은 정말 문제가 아니란 말인가. 정치 판사들과 민주당이 협공해 근거 없이 대법원을 흔들었다니 이해할 수가 없다.
정치 판사라고 비난하기는 쉽다. 왜 사태가 발생했는지, 무엇이 어떻게 잘못됐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지 않고 그저 단정 지으면 되는 프레임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 판사 주장이 과연 사법부의 신뢰 회복엔 도움이 될까. 누가 정치를 하고 있나. 누가 법원을 정치의 장으로 만드나.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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