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척박한 땅에서 마음까지 일구는 쟁기

오래전에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감독 이충렬, 2009)를 봤다. 경북 봉화에 사는 노부부와 그들이 키우는 늙은 소의 일상을 다룬 내용이었다. 그다지 화려하지도 않고 꾸밀 것도 없는 영화였는데 잔잔한 감동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다. 그중에서도 주인공 최노인이 밭에서 늙은 소를 부려 쟁기질하는 장면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모습과 겹치면서 한동안 먼 과거로 데려간 것 같았다. 지금은 경운기와 트랙터로 대체됐지만 예전에는 쟁기가 밭을 가는 주요한 수단이었다.

쟁기는 땅을 갈아엎는 농기구로, 빈 땅을 농경지로 바꾸거나 오랫동안 묵혀 단단해진 땅을 갈아엎어 비옥하게 만드는 데 쓰인다. 김홍도의 풍속화에도 쟁기질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쟁기의 역사는 아주 오래됐다. 쟁기가 등장하는 가장 오랜 기록은 ‘삼국유사’의 유리왕(24∼57) 때다. 1세기경에는 한반도에서 쟁기를 제작했고, 5∼6세기에는 우경(牛耕)을 시작했으니 쟁기는 그만큼 우리 농사에서 중요한 농기구였다. 소가 끄는 쟁기를 사용하기 전에는 사람이 끄는 ‘인쟁기’를 썼을 것이다. 지금도 좁은 비탈에 있는 밭이나 작은 텃밭에는 인쟁기를 쓴다. 쟁기 대신 괭이나 삽으로도 땅을 갈아엎을 순 있지만 효능 면에서는 소가 끄는 쟁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조선 중기의 선비 정온(鄭蘊, 1569∼1641)의 책 ‘동계집(桐溪集)’에는 그가 거친 밭을 갈면서 느낀 소회를 적은 글이 있다. 정온은 농사에 뜻이 있어서 두어이랑의 밭을 얻었다. 그런데 동네 농부가 말하기를 그 밭은 습하지도 않고 메마르지도 않아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는데 사람들이 생업을 잃고 버려둬 농사를 짓지 않은 지 5∼6년 된다고 했다(임진왜란 때문일 것이다). 그는 농사일을 잘 아는 농부를 구하고 두마리 소를 먹여 밭으로 갔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잡초 뿌리를 끊어내고 단단한 흙덩이를 부수고 나니 조금씩 일에 진척이 보였다. 이렇게 계속하면 언젠가는 수레에 가득한 곡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자 피곤한 줄도 모르고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큰 깨달음을 얻는다. 사람의 마음속에도 각각 좋은 밭이 있게 마련이니, 원래 마음속의 땅은 험한 데가 없고 그 토질은 비옥하여 식물이 잘 자라서 처음에는 묵어버릴 까닭이 없지만 사심과 욕심으로 좋은 곡식을 해치게 돼 밭이 황폐해진다. 그러나 그 근본은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성현들의 가르침을 농기구 삼아 계속 밭을 일구다보면 좋은 곡식이 자랄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밭을 쟁기질하는 것이나 마음의 밭을 쟁기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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