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공 출신에서 대권까지…지역주의 허물 '최고의 도구'

오종명 기자 2025. 6. 4.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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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첫 TK 출신 대통령, ‘오뚜기 인생’ 이재명은 누구인가
안동서 태어나 가난 탓 어린 시절부터 공장 노동자 생활
사진은 1982년 중앙대 입학식에서 어머니 고(故) 구호명 여사와 기념 촬영을 하는 이재명 당선인. 이재명 당선인 측 제공

2025년 6월 3일, 대한민국 정치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졌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 이재명이 승리하며, 보수 일색이던 TK(대구·경북) 지역 출신으로는 처음 진보진영에서 대통령에 오른 인물이 됐다. 민주당 역사상 최초의 TK 출신 대통령이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보수 텃밭으로 굳어진 지역에서 배출된 야권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그의 당선은 상징성을 넘어 정치지형의 대변화를 예고한다.

이재명의 삶은 흔히 '오뚝이 인생'이라 불린다. 수많은 좌절과 위기를 딛고 다시 일어선 그의 여정은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구조적 문제에 맞선 투쟁의 기록이다.

그가 태어난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에는 "우리 동네에서도 대통령이 나왔다"는 현수막이 내걸렸고, 주민들 사이에선 자부심과 기대가 퍼졌다.

도촌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한 80대 주민은 "어릴 적부터 어렵게 살아온 걸 다들 안다. 이제 고향 사람도 해냈다는 게 참 믿기지 않는다"며 "고향을 자주 찾아 주민들 목소리도 들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청년 주민은 "보수적인 어르신들이 많아 이번에도 다른 당을 찍은 분이 많았을 텐데, 결과가 이렇게 나오니 신기하다"며 "이제는 진영을 떠나 청년 일자리와 지역 발전에 힘써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재명 생가터.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

△산 아래 외진 마을 '지통마'.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안동댐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산길을 따라가야 닿는 마을 '지통마'는 말 그대로 세상과 단절된 외딴 오지마을이다. 안동시와 영양군, 봉화군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교통도, 소식도 닿기 어려운 곳. 1964년 12월, 이곳에서 한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훗날 대통령이 된 이재명이다.

그의 가족은 하루하루를 품팔이와 농사로 버텼다. 연탄 냄새가 밴 집 안엔 겨울이면 성에가 끼었고, 방 안에서 입김이 나왔다. 어린 이재명은 "고무신 한 켤레로 몇 해를 버텼다"고 회상했다. 그 가난은 단순한 환경이 아니라, 그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형성한 기원이었다.

지통마는 '지통(紙桶)'에서 유래한 지명이라는 설이 있다. 대나무로 만든 두레박 또는 골짜기에서 물을 길어 올리던 생활 도구 이름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 마을에는 이재명의 생가터가 남아 있다. 정치인의 상징물로 소비되기 이전, 그곳은 가난과 가족, 투쟁의 원점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제21대 대통령 당선인으로 확정됐다. 사진은 1980년 성남으로 이사 온 지 4년 만에 지하를 벗어나 처음 1층으로 이사한 날 가족들과 밥을 먹는 장면을 셋째 형이 촬영한 장면. 이재명 당선인 측 제공

△성남으로의 이주, 소년공의 삶.

이재명 대통령은 주민등록에 1964년 12월 22일생이지만, 실제는 1963년 10월 태어났다고 한다. 아버지(경주이씨)는 당시 청구대학(현 영남대학교)을 중퇴, 고등교육을 받았으나 가사가 기울어 이 대통령의 집은 당시 여느 가정처럼 '찢어지게' 가난했다.

이 대통령은 1976년 안동 삼계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경기도 성남시로 이주했지만 도시의 삶도 순탄치 않았다. 또래가 중학교에 다닐 나이에 동마고무, 대양실업 등에서 공돌이(소년 공장노동자)로 일하다 산재 사고로 6급 지체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고는 단순한 불운이 아니었다. 이재명은 그날 이후 세상을 향한 분노와 각성을 품었다.

주경야독으로 중·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중앙대 법학과)에 들어가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개천에 용이 됐다. 그는 서울에 남아 꽃길을 걸을 수도 있었으나 제2의 고향 성남으로 돌아와 1989년 변호사를 개업했다.

1987년 노동자대파업 이후 시국사건 무료 변론을 하는 인권변호사이자 성남YMCA에 이어 1990년대 중반 성남시민모임(현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을 창립, 지역사회 시민운동을 했다. 무료 법률상담 활동을 계기로 성남 지역 활동가들과 부대끼면서 성남시의 현장형 변호사로 부상했다.
 

△정치의 출발점, 다시 '지통마'로.

정치 입문은 2006년 경기도 성남시장 선거였다. 첫 도전은 실패였지만, 2010년 재도전해 성남시장에 당선되면서 한국 사회에 지도층이자 제도정치계의 일원으로 부상했다.

2010~2018년 성남시장, 2018~2021년 경기도 지사 시절 포퓰리즘(인기영합) 논쟁이 따라붙지만,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며 성과와 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다. 지방정부 최초로 성남시 모라토리엄(채무 지급유예)을 선언하고 3년 만에 부채 4572억 원을 갚았다. 숙원 사업이던 성남시립의료원도 2013년 첫 삽을 떴다. 무상교복·무상급식·공공산후조리원·청년 기본소득 정책이 퍼주기 논란에 휩싸이고 논쟁거리가 되면서 전국적인 인물 반열에 올랐다. 이는 '기본소득'이 이 대통령 정책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가 중앙 정가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16년 당시 정부가 성남시 등 경기도 6개 지방자치단체의 세입 5000억 원을 다른 지자체에 배분하기로 하자 11일간 단식 투쟁을 한 것이 계기다. 그해 10월 '박근혜-최순실(최서원) 농단 사태'가 터졌고, 제도권 정치인으론 처음으로 박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하며 야권 지도자의 하나로 올라섰다. 이 과정에서 그는 '공정'과 '실용'을 동시에 내세우며 자신만의 정치 색깔을 만들어갔다.

코로나19 확산 국면을 맞아 결단력 있는 지도자 이미지를 굳혔다. 도민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했고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시설을 강제 봉쇄하는 등 강한 행정가로 깊은 인상을 남기며 능력을 선보였다.

그의 정치 철학은 언제나 출발점인 지통마의 기억과 맞닿아 있었다. "나는 가난이 싫었다. 하지만 그 가난이 나를 단련시켰다"는 그의 말처럼, 유년기의 상처와 결핍은 정치적 신념으로 승화됐다. 약자를 위한 보호, 구조적 불공정에 대한 분노, 정책에서 실천되는 공정 사회의 이상은 모두 지통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역주의 벽 허물 "하늘이 내려준 사람"

이 대통령은 2017년 19대 대선 경선 후보로 출마, 문재인(57.0%)·안희정(21.5%)에 이어 3위(21.2%)를 했다. 2022년 이낙연 후보가 경선 과정에서 제기한 이른바 '대장동 이슈'를 본선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활용 소재로 삼으며 0.73%포인트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대선 패배 두 달 만인 2022년 6월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원내에 입성하고 곧바로 민주당 대표 자리에 올랐다. 22대 총선에서 친이재명(친명)계 인사가 대거 원내에 진입하면서 당을 완전히 장악했다. 공천 과정에서 비이재명(비명·非明)계가 대거 배제돼 일명 '비명횡사' 논란이 일었으나 총선 이후 과반수 제1당을 만들고 대표 연임에 성공했다.

이 후보는 위기를 당할 때마다 넘어지는 듯했으나 다시 살아나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시련으로 단련된 그를 두고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하늘이 내려준 사람"이라는 말이 돌 정도다.

이번 대선은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었다. TK 출신이라는 출신적 한계를 넘어, 지역주의의 벽을 허문 선거였다.
 
사진은 1970년대 후반 셋째형, 막내동생과 성남 자택앞에서 사진촬영하는 이재명 당선인. 이재명 당선인 측 제공

△'오뚝이 인생', 대한민국호의 선장이 되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선 직후 "이번 정권교체는 단순한 권력 교체가 아니라, 불공정과 양극화의 구조를 바로잡는 시작점"이라며 "모든 국민이 함께 가는 공정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개혁'과 '실용'을 동시에 외쳐온 그의 리더십은 이제 국정이라는 무거운 시험대에 올랐다. 경제침체, 여야 갈등, 지역감정, 청년 문제, 한반도 안보까지. 이재명이 마주한 과제는 어느 하나 가볍지 않다. 그러나 이미 수많은 '불가능'을 딛고 일어선 이재명의 삶은, 그가 위기를 돌파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TK 출신 최초의 민주당 대통령, 지통마에서 시작된 오뚝이 인생은 이제 대한민국의 미래와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