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설득보단 공감이 효과적인 현대미술
현대미술은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다. 선입견이라기보다 작품을 앞에 두고서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솔직하고 용감한 고백이다. 그림을 보면서 나의 감상을 표현하는 것에 용기가 필요하다니,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가끔 지인들과 갤러리나 미술관을 방문할 기회가 생길 때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걱정이 앞선다. 요즘 젊은이들은 전시회장이나 미술관을 자유롭게 출입하고 개인 소셜 미디어에 인증 사진도 남기며 경쟁적으로 즐긴다고 하던데 우리 또래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아마도 우리 세대에게 미술이란 입시에 필요하지 않은 덜 중요한 과목이었고 미술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은 너무도 적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미술 재료가 다양하고 종류도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어른이 되어서였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인 것 같지만 크레파스 12색도 귀하던 시절에 미술 수업을 했고 그마저도 그렇게 길게 하진 못했다.
요즘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미디어 아트라는 현대미술의 새로운 분야를 자주 보게 된다. 디지털 미디어라는 새로운 기술이 하얀 종이와 캔버스를 대신해 미술의 재료가 되었고, 최첨단 과학 기술이 미술에 접목되어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미술까지 등장했다. 누구나 잘 아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이미 현대미술의 한 사조로 이제는 고전이 되어간다. 그렇다고 내가 백남준의 작품을 모두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컴컴한 암실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생경한 디지털 이미지들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언제나처럼 현대미술은 어려운 것이라고 단정하며 나를 위로한다. 때론 예술가들은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라고 상상하거나, 현대미술로 나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얼마 전 부산에 해외 전문미술관 관계자가 다녀간 모양이다. 그는 현대미술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설득의 과정이 중요하고 가장 관심도가 낮은 관람객과 많이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다. 주의를 기울이는 관람객, 그냥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거나 누군가가 데려온 관람객, 즉 현대미술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나와 같은 이에게 미술관이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고. 예술은 사물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데 가장 강력한 메시지로서 많은 관람객에게 전달하는 것이 현대 미술관의 사명이어야 한다고 했다. 문득 현대미술의 중요성은 설득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자연스러운 공감의 과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전해 줄 수는 없을까. 가능한 많은 관람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미술가와 미술관의 사명이라 하더라도 설득의 과정보다는 공감이 더욱 효과적이지 않을까. 미술이라는 다소 사치스러운 교육과정을 체험하지 못한 삐뚤어진 중년의 푸념이다.
아직도 나에게 미술관이나 갤러리 문턱은 높기만 하고 굳게 닫힌 문은 무척 무겁게 느껴진다. 지인이 전시 작가이거나 혹은 미술 관련 일을 하며 정보를 준다든지, 동행해 주지 않으면 혼자서 갤러리나 미술관을 방문하는 일은 거의 없다. 미술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볼 기회라도 많아야 설득이 되든 공감을 하든 할텐데.
누구나 혼자서 유유히 동네 산책하듯이 지나치다 들러보는 그런 장소가 동네의 아담한 갤러리 혹은 작은 미술관이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그렇다면 우리 동네에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들어가볼 수 있는 갤러리나 미술관이 많아야 하는데 실상은 하나도 없다. 이것이 현실이다.

슬세권이라는 말이 있다. 슬리퍼 신고 편한 차림으로 카페나 편의점, 도서관, 쇼핑몰 같은 편의시설을 사용할 수 있는 주거 권역을 의미한다. 자신의 생활반경에 얼마나 많은 여가시설이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기도 하다. 현재 부산시에서는 ‘15분 도시 부산’을 도입해 시민이 가까운 거리에서 교육·문화·체육·자연환경을 누리고 관계를 맺으며 생활할 수 있는 시설을 배치하는 정책을 하고 있다는데, 솔직히 어떤 시설을 어디에 배치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각설하고,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슬세권 내에 작은 미술관, 아담한 갤러리가 편의점만큼 많아져서 슬리퍼 신고 동네 마실 가듯이 들어가 이 작품은 이렇고, 저 작품은 저렇고 수다를 나누는 동네 풍경화를 보고 싶다.
김미희 올아트22C 문화기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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