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꽃차

이연 꽃차소믈리에 2025. 6. 3.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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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눈부신 계절이었다. 연둣빛 새순으로 세상이 반짝이던 나날. 그 계절 중심에 온천지를 향기로 더 빛나게 하는 나무가 있다. 아까시나무다. 오월은 향기가 넘쳐나는 달이다. 그만큼 여러 종류의 꽃이 많이 피고 진다는 이야기다. 그중 단연 돋보이고 사람을 설레게 하는 꽃의 향기를 꼽으라 한다면 나는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아카시아꽃 향기라 대답할 것이다. 사실은 아카시아나무의 실제 이름은 아카시나무다. 대다수 사람이'아까시나무'를 '아까시아나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도 아카시아란 이름이 더 정감이 가고 친숙하다. 어린 시절부터 그리 알고 자랐고, 아카시아나무, 아카시아꽃이라 불렀다. 동요 '과수원길'에서도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라고 부르지 않던가.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하얀 꽃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아까시나무를 만날 수가 있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나무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아카시아 잎을 한 잎, 한 잎, 따며 가위, 바위, 보 놀이를 하기도 하고, 꿀이 들어 있는 꽃을 따먹던 기억을 떠올리면 더 향기롭고 아련하게 다가오는 꽃이 아카시아꽃이다.

아까시나무를 두고 어떤 이는 쓸모없는 나무라 타박하고, 어떤 이는 효용성이 좋아 쓸모 있는 나무라 주장한다. 같은 나무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을 많이 이유는 나무가 지닌 강한 속성 때문이리라. 아까시나무가 생장 속도가 빠르고 황폐해진 산을 푸르게 만드는 데 일조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봄날 대표적인 밀원식물인 것도 사실이다. 아마 꿀벌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도 어쩌면 아카시아꽃이 아닐까 싶다.

나도 꽃차를 배우며 차 맛을 많이 궁금해하던 꽃차 중 하나가 아카시아 꽃차였다. 실제로 배움 과정 중에는 아카시아꽃이 없어 아쉬움으로 남아 언젠가 내 손으로 직접 제다를 해보고 싶은 꽃이었다. 올해는 아카시아꽃이 만발한 즈음 유난히 비가 잦았다. 그런데도 진한 꽃의 향기는 비도 가로막을 수 없었던지 눈부신 오월을 비켜 가지 않고 향기롭게 빛내주었다.

하얀 꽃이 주렁주렁 달린 꽃을 따며 꽃송이를 입에 넣고 씹어 보았다. 쌉싸래한 꽃잎 사이로 달콤한 맛이 혀를 자극한다. 내 혀끝에 느껴지는 꿀맛을 벌들의 수고로 맛볼 수 있는 거겠구나, 생각하니 나무도 꿀벌도 고맙기만 할 뿐 아카시아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말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식초를 탄 물에 꽃을 살균하고 흐르는 물에 씻어 물기를 뺀 후 덖음을 시작했다. 온 집안에 꽃향기가 가득하다. 향기로움에 마음이 설레고 빨리 차를 우려 맛을 보고 싶어 손길이 빨라진다. 하지만 덖음차는 시간과의 씨름이다. 이리 향기로우니 차 맛은 당연히 더 좋을 것이라 기대했다. 꿀벌도 좋아하는 밀원식물이 아니던가. 차를 우려 향기와 맛을 가늠하는 순간 내 기대와는 달라 아쉬움에 찻잔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눈을 감는다. "그래 이건 꿀이 아니라 꽃차였지" 마음속으로 꿀맛을 지우고 향기를 지운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차를 음미한다. 옅은 달콤함과 은은한 향기가 그제야 온몸으로 서서히 퍼져 흐른다. 어쩌면 내가 아카시아 꽃차 맛에 실망한 것은 아카시아꿀 맛에 길든 입맛과 진한 향기에 취해 잔뜩 기대한 탓은 아니었을까. 사람 마음이 참 얄팍하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온다.

이래저래 얄팍한 마음을 흔들었던 꽃이지만 아카시아꽃 차는 천연항생제 작용이 있어 천식이나 기관지염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눈부신 계절, 오월을 더 빛나게 하는 꽃과 향기. 그것만으로도 아카시아꽃은 이미 제 할 일을 다하고 초록으로 짙어지는 유월을 맞이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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