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로 온 벼농사…아열대 벗어난 비밀은? [강석기의 과학풍경]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오늘날 (장바티스트) 라마르크의 개념은 비하되고는 한다. 그가 진화 과정을 상세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설령 원인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진화의 현상을 최초로 포괄적으로 설명한 인물에 속한다는 영예를 얻을 자격이 있다.”
2001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폴 너스는 저서 ‘생명이란 무엇인가’의 진화를 다룬 장에서 위와 같이 쓰며 찰스 다윈에게 가려진 데 더해 생물 교과서에서조차 엉터리 과학자 이미지까지 덧씌워 그리고 있는 라마르크를 변호했다.
그가 비웃음을 받게 된 계기는 획득형질의 유전을 주장하며 기린의 긴 목을 예로 들어 “높이 달린 나뭇잎을 뜯어 먹으려고 목을 죽 늘이며, 그런 노력의 결과가 어떤 식으로든 간에 후손에게 전달되어서 다음 세대는 좀 더 긴 목을 가지게 됨으로써 목이 길어진 것”이라고 설명한 게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반면 반세기 뒤 등장한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임의의 돌연변이로 생겨난 목이 긴 개체가 자연에서 선택되는 일이 반복된 결과다.
그런데 라마르크가 예를 잘못 들었을 뿐 획득형질의 유전 자체가 엉터리는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환경에 적응한 변화가 자손에게까지 전달되는 현상이 하나둘 보고되면서 후성유전학이라는 이름까지 얻게 됐기 때문이다. 즉 환경이 유전자의 디엔에이(DNA) 염기서열은 바꾸지 못해도 ‘메틸화 패턴’이라는 표지를 남겨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결과적으로 진화를 유발하는 셈이다.
최근 학술지 ‘셀’ 사이트에는 내한성 벼가 획득형질 유전의 결과라는 중국과학원 연구자들의 논문이 실렸다. 원래 야생 벼는 아열대 식물로 대략 1만년 전 역시 아열대 기후인 중국 양쯔강 유역에서 작물화됐다는 게 정설이다. 그 뒤 재배지가 북상하면서 낮은 온도에서 적응한 온대 벼가 진화했는데, 이 과정은 변이체 선택의 결과로 꽤 오랜 기간이 걸렸을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자들은 벼의 내한성이 획득형질 유전의 결과일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저온에 약한 품종을 재배하며 꽃이 필 무렵 15도 저온에 노출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개체는 낟알을 얼마 맺지 못했지만 몇몇 개체는 상대적으로 많이 맺었다. 연구자들은 후자의 씨앗을 심어 선별 과정을 반복했고 불과 3세대 만에 대부분이 저온에 적응한 벼를 만들었다.
분석 결과 예상대로 벼의 디엔에이 염기서열은 바뀌지 않았고 대신 ACT1이라고 명명한 특정 유전자의 디엔에이 메틸화 정도가 크게 줄어들었다. 그 결과 ACT1 유전자의 발현이 늘어 저온에 적응하게 된 것이고 이 패턴이 후대에서도 유지됐다.
주류 가설에 따르면 재배 벼가 추위에 적응하는 데 수천년이 걸렸을 것이고 약 3500년 전에야 한반도에 전해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청주 소로리에서 무려 1만5000년 전 볍씨가 출토됐고 충주조동리볍씨(약 6200년 전)와 고양가와지볍씨(약 5000년 전)도 보고되면서 학계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런데 획득형질 유전을 통해 불과 서너 세대 만에 내한성을 얻을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즉 1만5000년 이전 내한성을 지닌 야생 벼가 한반도에 진출해 있었고 사람들이 재배하면서 작물로 만들었다는 시나리오가 그렇게 무리한 주장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료가 꽤 있는 충주조동리볍씨와 고양가와지볍씨를 대상으로 ACT1의 메틸화 패턴을 분석해보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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