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 역사 장편소설 죽창 [제9장] 영광·함평·나주·무안 동학농민군(158회)

이성자는 이 젊은 총각이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가 궁금하였다. 여자를 얻어 산에 숨거나 섬에 들어가 살겠다는 것, 그것이 행복한 삶이라는 것, 충분히 아름다운 꿈이라고 생각하지만 뭔가 부족한 것 같았다. 난세에 뜻을 품고 떨쳐 일어난 청년 치고 가슴이 빈약해보이는 것이다. 이성자가 김옥규의 팔을 풀고 말했다.
"세상을 바꾸자면서 산속에 들어가 살자고? 한 세상 잡을 듯이 행동하는 사람이 그렇게 가슴이 좁으면 쓰까?"
"전쟁에 염증을 느꼈어. 여자 만나면 세상잡사 다 잊고 조용히 살고 잡어."
"남자가 뜻을 품었으면 호박에 칼침이라도 한 방 박아야제, 그렇게 물렁해있으면 되는가. 느자구 없는 인생이라고 한당깨."
그가 침묵을 지키자 이성자가 거듭 말했다.
"어째 여자보다 생각이 좁응개 믿음이 안가네. 나는 동학군사에 들어갈 생각이여."
"여자가 동학에?"
"여자가 어쨌가니? 왜 선입감을 갖고 보는 것이여? 동학은 남녀 구분이 없담서? 여자는 애초에 남자나 여자나 같은 인간이라고 했잖은개비여? 여자는 본래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길러졌을 뿐이여. 못된 유교 윤리가 그렇게 만들어부렀어. 나는 이것을 거부하는 것이여. 받아들일 수 없당깨."
이성자는 어렸을 적부터 대범하였다. 남자 아이들과 기마전 놀이를 함께 했고, 병정놀이도 주도하였다. 그러는 한편으로 학구적이어서 소학을 떼더니 명심보감, 어느결에 논어·맹자까지 읽었다. 하지만 그런 책을 파고들수록 고리타분하였다. 주변에 그것밖에 없어서 읽었을 뿐, 다른 책이 있었다면 진작에 걷어차버렸을 책들이었다. 달달 외워서 마음의 수양을 쌓긴 하는데, 그런 지혜는 어머니에게 전수받으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름도 이성단이로 바꾸겄어. 새롭게 태어나겄어. 출사하면 이름부터 개명한담서? 앞으로는 이성단이로 불러줘. 그리고 때로는 남장도 할 것이여. 총쏘는 법, 장검 쓰는 법도 배울 것이여."
김옥규는 말문을 잃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좋은 여자를 하나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이성단의 눈을 빛내며 다시 말했다.
"나는 한때 제갈공명의 출사표를 읽고 감동하였어. 나 또한 그런 출사표를 쓰고 출정할 것이여."
제갈공명의 출사표는 "싸우지 않고 여기서 멈춘다면 결국 다 죽는다. 그러니 다른 선택지는 없다"는 것이 요점이다. 이성단은 그중 '臣本布衣 躬耕於南陽 苟全性命於亂世 不求聞達於諸侯(신본포의 궁경어남양 구전성명어난세 불구문달어제후). 先帝不以臣卑鄙 猥自枉屈 三顧臣於草廬之中 諮臣以當世之事 由是感激 遂許先帝以驅馳(선제불이신비비 외자왕굴 삼고신어초려지중 자신이당세지사 유시감격 수허선제이구치). 後値傾覆 受任於敗軍之際 奉命於危難之間 爾來二十有一年矣(후치경복 수임어패군지제 봉명어위난지간 이래이십유일년의)'를 특히 좋아하였다. 어진 임금이라면 언제든지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는 구절이다.
"신은 본래 하찮은 포의(布衣: 베로 짠 옷을 입었다는 뜻으로 벼슬이 없는 선비)로 남양 땅에서 논밭이나 갈면서 난세에 목숨을 붙이고자 하였을 뿐, 제후를 찾아 일신의 영달을 구할 생각은 없었사옵니다. 하오나 선제께옵서는 황공하옵게도 신을 미천하게 여기지 아니하시고 무려 세 번씩이나 몸을 낮추어 몸소 초려를 찾아오시어 신에게 당세의 일을 자문하시니, 신은 이에 감격하여 마침내 선제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그 뜻을 받들었사옵니다. 그 후 한실의 국운이 기울어 싸움에 패하는 어려움 가운데 소임을 맡아 동분서주하며 위난한 상황에서 명을 받들어 일을 행해온 지 어언 스물하고도 한 해가 지났사옵니다."(나무위기 '출사표' 일부 인용)
이성단이 출사표를 암송한 뒤 말했다.
"우리에게 어진 임금은 아니지만 제갈공명의 마음으로 동학군사에 들어갈 것이여. 그것이 나라를구하는 것잉개. 일이 없으면 군사들 밥이라도 해줄 것이여. 집을 나왔으면 나온 값을 해야제."
이성단이 앞장서 옥녀봉을 넘어갔다. 김옥규가 뒤를 따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