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대한민국 유일한 안중근 추모사당 ‘해동사’ 아시나요

이건상 기자 2025. 6. 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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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전남 독립운동현장 50]
1955년 전남 장흥에 1칸 한옥… 동상, 기념비 보다 가장 앞서 건립
이승만 대통령 ‘해동명월’ 현판… 안 의사 딸 직접 영정 봉안
지난 2000년 3칸짜리 건물 신축 매년 순국일에 추모 제사 지내
하얼빈 의거는 안 의사 단독 아닌 공립협회 7인 비밀 프로젝트 거사
전남 장흥군 장동면 만수마을에 들어선 만수사와 해동사. 왼편 건물동 쪽이 해동사.

안중근 의사 묘지는 없다. 서울 효창공원 묘소는 허묘다. 그는 1910년 3월26일 중국 뤼순 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안 의사 시신은 유가족에게 인도되지 않고, 일제에 의해 어딘가에 묻혔다. 남·북한이 공동으로 수차례에 걸쳐 뤼순감옥 공동묘지 등 여러곳을 발굴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이제는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 뤼순 감옥 주변에 수십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조사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다. 안 의사의 혼을 접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추모공간, 바로 사당 뿐이다.

#만수마을 산자락에 들어선 1칸 사당

전남 장흥에 안 의사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 존재한다. 대한민국에서 최초이자, 유일한 사당인 해동사(海東祠)이다. 영정과 위패는 안 의사의 딸 현생(1902-1959)씨와 5촌 조카 춘생(1912-2011)씨가 직접 들고 와 봉안했다.안 의사 혈육이 직접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곳은 이곳 뿐이다.

해동사는 장흥군 장동면 만수리 만수마을 산자락 아래에 들어 서 있다. 죽산안씨 문중은 고려말 유학자 안향을 모시는 사당인 만수사를 1951년 완공했다. 만수사가 들어선 뒤 같은 뿌리인 순흥 안씨 안중근 의사의 후손이 국내에 없어 제사조차 지내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장흥향교 전교를 지낸 안홍천(1895∼1994)씨가 안 의사 사당 건립을 추켜들었다.죽산 안씨 문중과 뜻을 같이한 지역 유지들도 성금을 보탰다.
 

1955년 건립된 해동사 (오른쪽 건물)

만수사 경내에 큰 터가 없어 만수사 바로 옆에 1955년 1칸짜리 사당을 세웠다. 안 의사 동상, 기념비.기념관 등 모든 기념시설을 통틀어 가장 먼저 세워진 기념공간이었다.

작은 한옥 1칸에 불과했지만, 안중근 의사 사당인지라, 툇간도 만들고, 겹지붕을 올렸다. 지붕 맨 위에는 왕관같은 장식도 얹었다. 작은 사당 안에는 별도의 제실도 마련했다. 작지만 기품과 격조가 있는 사우(祠宇)다.

건물은 완공됐지만, 현판이 마땅치 않았다. 사당 건립에 주도적이던 안옹천 선생이 직접 서울로 올라갔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인 경무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다시피 하며 이 대통령의 눈길을 붙잡았다.

다행히 소식이 대통령에게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海東明月'(해동명월)이라는 글을 써 주었다. 대한민국을 밝게 비추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 대통령의 편액 앞글자를 따서 '해동사'라 명명했다.

1955년 10월27일 안 의사 위패 봉안식이 열렸다. 봉안식에는 딸 현생 씨와 5촌조카 춘생 씨가 직접 참석했다. 봉안식은 장안의 화젯거리였다. 장흥, 강진, 보성 뿐 아니라 멀리 경남 진주에서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1만 여명이 장흥에 운집했다.

딸 현생 씨는 부친의 영정 사진을 들었고, 5촌 조카인 춘생씨는 안 의사의 위패를 안았다.사당 건립 후 전남 지역민 사이에서는 안중근 정신을 길이 계승하자는 모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1957년 조직된 '안 의사 사우 모의계'(慕義契)였다.
 

1955년 10월27일 안 의사 딸 현생씨가 부친의 영정을 들고 해동사로 향하고 있다.

# 하얼빈 의거는 누가 기획했을까

1909년 10월26일 하얼빈 의거는 실상 '공립협회 블라디보스토크 지회'( 지회)의 비밀 프로젝트였다. 미국 내 항일단체인 공립협회는 1908년 이강, 김성무를 연해주 지역에 파견, 지회 설립에 나섰다. 이강은 그 해 9월29일 블라디보스토크 지회를 설립하고, 11월18일 기관지로 대동공보를 창간해 편집장을 맡는다.

안중근은 1908년 7~8월 무렵 동의회 의병의 국내 진공 패배로 깊은 시름에 잠겨 있었다. 연해주 의병 열기도 식어갔다. 러시아가 의병활동 금지 정책을 취한데다, 최대 후원자였던 최재형의 지원 난색, 이범윤 파와의 갈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러시아는 1909년 7월 제2차 러일 협상에서 마침내 일본의 한반도 병합을 승인하고 만다.

안중근은 1908년 9월 공립협회 블라디보스토크 지회에 가입했다. 보훈처 '이달의 독립운동가 유동하 선생'(2008.10) 자료에 따르면 공립협회 지회 회원은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 부친 유경집 등이다. 1909년 말에는 러시아 연해주에만 12개 지회 3천여 명이 활동했다.(러시아 조사보고서)

하얼빈 의거의 주역인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 유경집(유동하의 부친)은 모두 공립협회 블라디보스토크 지회 핵심멤버였다.

이토 격살의 기획실행은 대동공보사 지도부가 맡았다. 보훈처의 유동하 자료를 보면 1909년 10월 이강, 정재관(친일 미국인 스티븐슨 처단 관련인사) 등 국민회 원동위원들과 대동공보사 인사들은 이토의 만주 시찰 정보를 파악한 뒤 이토 처단을 결정했다.

이 자리에서 애국심이 출중하고 백발백중의 명사수인 공립협회 멤버 안중근이 추천됐다. 이강 선생은 "내가 안중근을 안 것은 그가 의병을 일으키기 전에 해삼위에서 청년단사찰 간부로 있을 때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강은 바로 연추지역에 있던 안중근에게 편지를 보냈고, 안중근은 바로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 의거논의에 참여했다.
 

중국 하얼빈시 하얼빈 역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했던 현장, 바닥의 앞쪽 삼각 표시가 안 의사가 섰던 자리.

#대동공보사 주도로 7인 동맹원 결사

이강의 안중근 호출은 우덕순의 회고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어느 날 밤이 좀 깊어진 다음에 대동공보 편집국장 유진율씨와 동 주필 이강 씨가 나를 찾아 왔습네다. 그들은 이번 좋은 기회를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의논을 내 놓았습니다. 나는 동지를 기다리네? 누구?, 안(安)?. 그렇지 그 사람하고 의논해 보겠네. 그럼 얼른 안을 부르게. 걱정들 말고 가만히들 있기만 하게. 우리들이 해 볼거니. 이렇게 대강 말하고 흩어졌습니다."라고 밝혔다. (안중근의사 자료집 중 우덕순 선생 회고담)

독립기념관 홍일교 학예사는 '충북 독립운동가 열전-우덕순'을 통해 '1909년 10월20일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대동공보사에서 유진율, 이강, 안중근, 우덕순, 정재만 등 7명이 이토 처단을 위한 회의를 열었다"면서 "안중근이 자진해 실행 책임을 맡았고, 우덕순에게 거사에 함께 할 것을 권유했다"고 확인했다.

하얼빈 거사일이 다가오면서 결사단도 결성됐다. 유경집,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 김성화, 탁공규 등 7명(미 확인 1명)은 '7인 동맹'을 결성하고, 구국혁신을 맹세했다. 연추 의병시절부터 안면을 익힌 유경집은 러시아어가 능통한 아들 유동하를 통역으로 보내기로 했다. 대동공보 신문 판매원인 탁공규는 하얼빈에서 지원임무가 부여됐다.

개인별 임무도 하달됐다. 총과 탄약은 이강, 경비는 유진율이 맡았다. 거사 실행 안중근· 우덕순, 통역 연락은 조도선·유동하-.

하얼빈 의거는 공립협회 블라디보스토그 지회의 총지휘, 대동공보사 지도부의 기획, 7인 동맹원의 결사로 결행된 것이다. 1909년 10월21일 오전 8시50분, 안중근과 우덕순은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출발, 하얼빈으로 향했다.
 

지난 2000년 신축된 해동사.

해동사가 창건된 지 40여년이 지나면서 1칸짜리 해동사가 안 의사의 공적에 비해 너무 왜소하다는 말들이 오갔다. 문중과 유림, 지역민들은 1996년 만수사 아래에 터를 마련하고 순국 90주년인 2000년 3칸 맞배지붕으로 새로 지었다. 지금의 해동사이다.신축 해동사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쓴 편액을 내걸고 매년 3월26일 안 의사 순국일에 장흥군민들이 추모행사를 갖고 있다.

장흥은 안중근의 땅이다. 거기에는 안 의사의 위패가 있다. 그 순결한 청년의 혼이 서려있으니….

글·사진 / 이건상 기자 lgs@namdonews.com

위치 : 전남 장흥군 장동면 만수길 25-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