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과 단군신화가 나오는 중국 청춘영화 ‘브레이킹 아이스’

김은형 기자 2025. 6. 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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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싱가포르 합작 영화 4일 개봉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 찬란 제공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먼 지명은 어디일까? 백두산도 그중 하나다. 특히나 청춘, 젊음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교과서나 뉴스 속 추상적 지명에 가깝다.

4일 개봉하는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를 보면, 백두산이 이렇게나 ‘청춘’과 어울리는 곳이었나, 깜짝 놀랄 만한 시각적 경험을 하게 된다. 설경의 백두산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가득 채울 때, 이 아름답고 쓸쓸하며 위험한 풍경이 청춘의 내면과 무척이나 닮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새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무릎까지 차오르는 백두산 눈밭을 올라가는 세 청춘의 모습은 올해 가장 아름다운 영화 장면 중 하나로 기억될 만하다.

가까운 듯 먼 백두산의 낯선 아름다움을 스크린에 담은 건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외부인이 찍었기에 가능했을 터이다. ‘일로일로’(2013)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싱가포르 감독 앤서니 첸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고립됐을 때 가능한 한 가장 추운 곳에서 청춘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때 친구가 말한 게 백두산이었다. 지난달 30일 내한한 첸 감독은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2021년 코로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릴 때 중국에 입국해 호텔에 3주간 격리돼 있으면서 시나리오를 완성했다”며 “격리가 끝나고 백두산에 올라가자마자 영화의 엔딩이 여기에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 찬란 제공

어린 시절 피겨 스케이트 유망주였으나 부상으로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 옌지(연길)에서 관광 가이드를 하는 나나(저우동위·주동우), 부모의 바람대로 성공해 상하이 금융계에서 일하고 있지만 삶이 버거운 하오펑(류하오란·류호연), 꿈도 목표도 없이 옌지에서 식당을 하는 이모 집에서 심부름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샤오(취추샤오·굴초소)는 우연히 엮여 함께 어울린다. 옌지 이곳저곳 쏘다니던 그들은 백두산 천지를 보러 여행을 떠난다.

‘브레이킹 아이스’는 백두산과 함께 옌볜(연변) 조선족 자치주 옌지시가 주요 무대다. 한국어 간판이 가득하고 클럽에선 중국 젊은이들이 한국 가요에 맞춰 춤을 추는 옌지도 백두산만큼이나 한국 관객들에게 묘한 익숙함과 이질감을 준다. 첸 감독은 백두산을 중심에 놓고 배경이 되는 촬영 공간을 찾다가 옌지에 눈이 머물렀다고 한다. “각자 길을 잃은 세 청년이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만나는 도시로 옌지가 완벽했다”며 “강 건너 철조망 저편에서 북한군이 왔다 갔다 하는 걸 볼 수 있는 국경 도시라는 점이 모호한 경계에 놓인 주인공들의 상황과 맞아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중국이지만 중국어만큼 한국말이 넘쳐나고, 먹는 것도 입는 것도 한국이라는 외부의 자장 안에 놓여있으며, 가난이 널려있는 주변 풍경 사이에서 화려함이 넘쳐나는 옌지의 독특한 문화, 기이한 매력은 세 중국 청년이 품고 있는 “현실에 대한 환멸감과 표류하는 듯한 감정”을 적절하게 담아낸다.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 찬란 제공

영화에는 세 친구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단군신화도 주요한 모티브로 등장한다. 곰이 인내의 시간을 거쳐 인간이 된다는 내용이 삶의 어떤 변화, 도약을 의미한다는 데서 그렇다. 단군신화를 어렴풋이 알고 있던 첸 감독은 “호랑이가 포기할 만큼 힘든 굶주림을 곰이 참아내 인간이 됐다는 이야기의 울림이 큰데, 이게 백두산을 배경으로 전해 내려온다는 점에서 꼭 영화에 넣고 싶었다”고 말했다. 세 인물이 고단한 산행을 마치고 들어간 바에서 고요하게 흘러나오는 ‘아리랑’도 같은 이유라면서 “가사에 백두산이 나오는데, 촬영을 안내했던 가이드가 중국에서 찍는 영화이니 ‘장백산’(백두산의 중국 명칭)으로 고쳐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첸 감독은 한류에 빠진 싱가포르 중년 여성이 홀로 한국 여행에 도전하는 영화 ‘아줌마’( 2022)를 제작하며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맺기도 했다.

‘브레이킹 아이스’를 연출한 앤서니 첸 감독. 찬란 제공

‘브레이킹 아이스’는 2023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았는데, 당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갈 곳 없는 3명의 젊은이들이 우연한 만남에 의해 각각 변해가는 모습이 인상에 남는, 정말 좋아하는 영화”라고 극찬했다. 저우동위를 비롯해 류하오란 , 취추샤오 등 지금 중국 영화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청춘 스타들의 매력적인 모습도 영화의 아름다움을 끌어올린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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