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불법체류 한국인 고단한 노동…2000년대 이후 다양한 정착
① 올드커머와 뉴커머

지난 5월15일 찾은 일본 요코하마 고토부키초 거리에는 스산함이 깔려 있었다. 이른 오후부터 문을 연 술집 ‘메구’에서는 얼큰하게 취한 이들이 띄엄띄엄 앉아 ‘엔카’를 구슬프게 뽑아내고 있었다. 거리 한편에선 거친 말을 쏟아내며 어슬렁거리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일본인 식당 주인은 “30여년 전만 해도 매일 새벽 5시만 되면 일거리를 찾아 인력시장에 모여든 일용직 노동자들이 거리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며 “한눈에 봐도 절반 이상은 한국 사람들이었다”고 돌이켜봤다.
요코하마 항구에서 1㎞가량 떨어진 고토부키초는 과거 도쿄 산야, 오사카 가마가사키와 함께 일본 3대 빈민가이자, 일용직 최대 인력시장 ‘요세바’가 있던 곳이다. 한때 거주인구 95%가 남성이었고, 대부분 일용직으로 고토부키초의 ‘도야’(쪽방)에 머물며 항구나 토목·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였다. ‘도야’는 숙소라는 뜻의 일본말 ‘야도’를 거꾸로 읽은 것으로, 열악한 환경의 임시 생활 공간을 뜻한다. 이날 찾은 고토부키초 거리에도 과거 도야로 쓰이던 ‘조세이칸’(장생관), ‘다이와소’(대화장) 같은 여관 건물들이 가득했다. 한때 이 거리에만 도야용 건물이 110여곳, 8천개 가까운 방이 있었다고 한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과거 일용직 노동자들이 머물던 쪽방촌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화장실도 없는 3평(10㎡) 남짓 공간이 복도를 따라 양쪽에 다닥다닥 이어졌다. 숙박비가 하루 2천엔(2만원) 정도에 불과한데다, 현금만 있으면 국적이나 불법 체류 여부를 따지지 않고 손님으로 받아주던 곳이다.
고토부키 1~2초메에 자리한 ‘도야 거리’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에 온 이들을 일컫는 ‘한국인 뉴커머’들이 가장 먼저 집단 거주촌을 형성했던 곳으로 꼽힌다. 한-일 국교 수립 뒤에도 한국 정부가 해외여행을 자유화할 때까지 20여년간 일본에 갈 수 있는 한국인은 극소수였다. 일본인과 결혼을 통해 비자를 얻거나, 큰 위험을 무릅쓰고 밀항선을 탔던 이들 정도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처가 이뤄졌고 사실상 이때부터 ‘한국인 뉴커머’의 역사가 시작됐다. 일반인에게 합법적 일본 입국길이 열리자, ‘단기 관광 비자’를 얻은 뒤 불법 체류(오버 스테이)를 각오하고 일본에 돈 벌러 온 노동자들이 선두에 섰다. 특히 고토부키에 불법 체류를 따지지 않는 일용직 인력시장이 있었던데다, 먼저 이 지역에 자리잡았던 제주 출신 ‘올드커머’들이 뉴커머들에게 다리 구실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재일본 여성학자 고선휘는 ‘일본으로 돈벌이 간 제주도사람’(북제주문화원)에서 “고토부키에 한국인의 유입은 제주도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중화식당 거리의 재일 제주도 사람 커뮤니티와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불법 체류 일용 노동자들의 삶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1980년대 말부터 고토부키초 인력시장의 한국인 불법 체류 노동자 등을 지원해온 ‘가나가와유니온’ 방정옥(일본이름 히라마 마사코)씨는 5월15일 한겨레와 만나 “고토부키 도야마다 구석구석 한국인 노동자들이 있었고, 그들의 삶은 아주 참혹했다”고 기억했다. 당시 공사 현장에서 철근이 가슴 쪽에 박히는 사고를 당하거나, 일본 조직폭력배 야쿠자들과 시비가 붙어 험한 일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체류 기간이 끝난 비자로는 제대로 된 병원을 갈 수도, 산업재해 처리를 할 수도 없었다. 같은 단체의 무라야마 사토시 집행위원장은 “당시 한국인 뉴커머가 5만명 정도였는데 고토부키의 한국인 일용직이 2천여명이었다”며 “거의 전부 불법 체류자였고, 일부는 위조 여권을 쓰거나 강제 출국된 뒤 가족 이름으로 다시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초기 뉴커머인 고토부키 일용직 이주노동자들은 2000년대 들어 일본 사회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불법 체류자들을 대거 추방하면서 고토부키의 일용직 한국 노동자들 역시 집중 ‘타깃’이 됐다. 비슷한 시기 일본 정부가 합법적인 입국 창구를 대폭 확대한 까닭도 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의 ‘한-일 공동선언: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전후해 합법 경로로 ‘뉴커머’들이 대거 일본에 건너왔다. 이어 1999년 일본 정부는 한국인들이 1년간 일하면서 체류하도록 허가하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에 이어 2001년 한국인 등을 포함한 우수 외국인 인재 영입 확대, 2006년 한·일 무비자 입국 등을 허용했다. 일본 엔화 가치 상승과 한국 취업난 등도 뉴커머 이주를 확대하는 요인이 됐다.
뉴커머들의 꿈은 2000년대 이후 도쿄 신주쿠 신오쿠보로 이어졌다. 초기 뉴커머들은 주로 자영업, 유학, 취업, 결혼 등으로 일본에 머물렀지만 여전히 일부 불법 체류자들도 있었다. 이방인들에 대한 반응은 도쿄의 회색 빌딩만큼이나 차가웠다. 1990년대 초반 일본에 와 신주쿠에서 자리잡은 뉴커머 ㄱ씨는 한겨레에 “지금은 신오쿠보가 한국 문화를 상징하는 거리가 됐지만, 초창기에는 정말 한국인 관련된 기반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돌이켜봤다. 그는 “믿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불과 40년 전인데도 일본인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 해도 ‘조센징(한국인을 낮춰 부르는 말)한테 규동(일본식 소고기덮밥) 안 판다’는 말을 들었다”며 “버블경제 시대의 일본인들을 상대로 한인들은 신주쿠 인근에서 술집이나 식당 등을 중심으로 상권을 형성해갔다”고 말했다. 일본 버블경제가 붕괴되면서 초기 뉴커머들의 삶도 롤러코스터를 타야 했다. 하지만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IMF)를 겪으면서 일자리를 찾으려는 한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2000년대 초반 한·일 문화 개방에 따른 드라마 ‘겨울연가’의 인기와 한·일 월드컵 영향으로 1차 한류 붐이 신오쿠보 거리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이어 ‘케이(K)-팝’과 ‘케이 드라마’ 등이 인기를 끌면서 2010년부터 현재까지 2~4차 한류 붐이 이어지고 있다. 이 지역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전 일본에 정착한 올드커머와 뉴커머를 잇는 ‘다리 구실’도 한다. 뉴커머들이 일본에 처음 발을 들여놓거나, 초기 자리를 잡는 과정에 올드커머에게 의지하거나 협력하면서 빠른 정착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현재는 한류 붐을 거치며 한국인 사회가 완연히 자리를 잡은 뒤, 일본에 온 40대 이하 젊은층들은 ‘뉴-뉴커머’로 부르기도 한다. 김일 신주쿠한국상인연합회 이사장은 “초창기 뉴커머들이 일본어를 제대로 배울 곳도 없이 일본으로 건너와 신문 배달, 호텔 청소, 설거지, 일용직 노동으로 자리를 잡아 한인 정착촌을 이룬 것”이라며 “1세대 뉴커머들이 일본 기성사회에 뿌리를 내렸고, 한류 붐과 함께 2세대들이 그 이상으로 활발히 움직이는 만큼 한국인들의 위상이 지금보다 더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로 평범한 한국인들이 일본에 합법적으로 입국할 길이 열린 지 60년이 됐다. 뉴커머들이 일본에 본격 정착한 지 35년이 넘었지만 숙제들은 여전하다. 특히 뉴커머들은 과거사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지만, 한·일 정부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질 때마다 신오쿠보 거리를 비롯해 한인 사회는 부침을 겪고 있다. 지난 2012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직후 일본 우익세력이 신오쿠보에 대거 몰려들어 반한 시위를 벌인 게 대표적이다. 일본 내 일부 극우주의자들이 ‘위안부 소녀상’ 등을 문제 삼아 벌이는 헤이트 스피치(혐오 시위)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요코하마·도쿄/글·사진 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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