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장애인 위해 헌신한 천노엘 신부 선종

김용희 기자 2025. 6. 2.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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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한국 온 뒤 60여년간 사목…1981년 장애인 그룹홈 처음 선보여
엠마우스복지관·무지개공동회 설립해 장애인 삶 개선·경제적 자립 도와
국내에 처음으로 장애인 그룹홈(공동생활가정)을 도입한 장애인 인권 활동가 천노엘 신부. 엠마우스집 제공

우리나라에 장애인 그룹홈(공동생활가정)을 처음 선보인 천노엘(본명 오닐 패트릭 노엘) 신부가 1일 아침 8시30분(한국시각) 고향 아일랜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93.

고 천노엘 신부는 1932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1956년 성 골롬바노대신학교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이듬해인 1957년 한국으로 파견됐다. 2년 동안 서울에서 한국어를 공부한 천 신부는 1958년 6월 전남 장성성당을 시작으로 광주, 해남, 여수에서 보좌신부를 거쳐 여수 서교동본당, 광주 원동·북동·농성동본당에서 주임신부로 사목했다.

고인은 한국에 머물며 지적 장애인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힘썼다. 1981년 안식년 휴가를 통해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등의 인권 친화적 장애인 정책을 접한 그는 같은 해 10월27일 광주 남구 주월동 무등시장 인근에 집을 얻어 무등갱생원에 봉사를 다니며 알게 된 지적장애 3급 여성, 봉사자 2명과 함께 장애인 그룹홈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었다. ‘장애인 거주시설은 지역사회에 가까울수록, 작을수록 더 아름답다’는 소신으로, 장애인들은 대형시설에서 집단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편견을 깨는 시도였다. 2023년 기준 장애인 그룹홈은 746곳 2806명 규모로 늘었다.

1985년 엠마우스복지관에 이어 1993년에는 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를 설립해 장애인들의 경제적 자립도 도왔다.

고인은 2017년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1979년 가을 연고 없이 병사한 지적장애인의 죽음을 접한 뒤 장애인 특수 사목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천 신부는 한국 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91년 광주시 명예시민 1호로 지정됐으며 2016년 2월에는 장애인의 자활, 권익보호에 헌신한 삶을 인정받아 법무부로부터 한국 국적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7월11일 퇴임한 뒤 고향 아일랜드에 머물면서도 한국의 소외된 이웃을 잊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추후 유해 일부를 전남 담양에 있는 천주교 공원묘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추모 미사는 광주대교구청 대성당에서 2일 오후 2시∼밤 8시, 3일 오전 10시∼오후 6시 두차례 열리며 3일 저녁 7시까지 분향소도 운영한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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