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학술지 1인치의 장벽
2019년 우리나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영어가 아닌 외국어 영화로 최초의 작품상이다. 봉 감독의 수상 인터뷰의 일성은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으면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산업이 미국을 중심으로 서양에서 태동해 사용하는 언어와 문자가 영어 중심이지만 봉 감독은 한글과 한국어로 영화를 만들고 세계 최고의 상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아이돌그룹 BTS의 ‘피, 땀, 눈물’은 우리 한글 가사와 우리 말 노래로 세계 최고의 가수·그룹이 되었고, 현재 빌보드에서는 K-팝 순위를 별도로 발표하기도 한다. 놀랍게도 우리나라 말과 노래로 세계인의 감정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
얼마전 K-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인들에게 한국 아빠 ‘관식이’ 붐을 일으켰고, ‘오징어게임’은 우리 한글을 세계인들에게 너무나도 친숙하고 익숙하게 만들었다. 세계 각 나라에 있는 세종학당에는 한국어와 한글을 배우려는 사람들로 경쟁이 치열하고, 세계 명문대학 한국어 수업의 수강생들은 넘쳐나고 있다. AI 시대에 가장 과학적인 언어시스템은 ‘한글’이라는것이 대대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필자는 한국분말재료 학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당연 학회에서 발행하는 ‘한국분말학회지’가 있다. 필자가 연구하는 분야의 최고 역사와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권위있는 학술지이다. 국내에 수많은 학회는 각자의 학회지를 가지고 있다. 당연 한글 쓰기 원칙이고 한글로 논문을 작성해야 한다. 필자가 대학원 학생일 때는 우리 학회지는 한글 쓰기가 원칙이었고, 영어 용어는 최대한 우리 용어를 만들거나 국어대사전에서 가장 적합한 단어를 선택해 사용했다. 필자의 전공 분야에서는 분말표준용어집 금속표준용어집 등 영어 용어에 대한 한글 번역 전문 용어집을 만들어 사용했다. 당시에 많은 전문가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전문 용어집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학계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한글 논문이 찬밥 신세다. 한글 국내 학회지는 SCI 등 국제 평가를 아주 낮게 받거나,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교수 연구 업적에서조차 평가 점수를 받지 못하거나 그냥 점수 없는 실적으로만 기록되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국가에서 지원받는 국책 과제에서조차 국내학술지의 평가는 상당히 무시당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내 한글 학술지는 영어 학술지로 전환됐거나 전환 중이다. 현대과학 이론이 서양에서 발전됐고, 근대에 영국 등 유럽 국가 주도로 산업혁명이 시작돼 영어가 주도권을 가지고, 학문 분야의 노벨상 등 연구 평가가 영어 중심으로 되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 K-열풍이 불고 있는 이 시점, 그리고 인터넷과 AI가 급속도로 발전되는 이 시점에서 세계인들이 가장 배우고 싶어 하는 언어는 우리 한글이고 AI 시대에 가장 적합하고 가장 과학적 효율적인 언어는 우리 한글이라는 게 증명되고 있는데 오히려 가장 과학적인 내용을 연구하는 과학기술계에서는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한글로 쓰는 것은 인정받지 못하고 영어로 써야만 우수 성과 논문이 되는 것이 참으로 역설적이다.

필자는 오늘도 학생들에게 영어 논문, SCI 논문을 쓰라고 재촉하고 있지만, 앞서 가장 과학적인 언어로 쓰이는 우리 언어 한글 논문이 찬밥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늘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세계가 연결돼 있는 초연결사회에서 공통 용어인 영어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K-팝, K-무비, K-푸드, K-드라마처럼 우리 한글 학회지가 인정받고 통용되는 꿈을 꾸는 것이 헛된 망상만은 아니다. AI 시대에 우리 전문 이공계 학술지에서도 ‘1인치의 자막 장벽’을 넘어 한글로 쓰여지는 K-학술지가 국가 역량과 함께 같이 발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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