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책임·생명 외친 세월호 10년...재난 대응 새길 냈다
“세월호 이후는 달라야 한다” 약속
10주기 맞아 시민연대 추모 열기
‘제주-안산’ 행진하며 지역별 행사
10주기 기억식 ‘잊지 않을게’ 합창</span>


사회적 참사 유족들 연대기구 발족
삼풍·씨랜드·가습기·스텔라데이지 등
4·16재단 부설 9개 참사 피해 연대체
세월호 참사 10주기의 열쇳말은 “진실·책임·생명·안전”이었다. 10년 동안 유가족들을 비롯한 피해자들, 그리고 시민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가 난 뒤에 피해자들과 시민들은 서로 간에 했던 약속이 있었다. “세월호 이후는 그 이전과 달라야 한다”는 그것이었다.
이전에는 없었던 재난 참사 앞에서 주저앉아 우는 피해자들이 아니라 적극적인 행위자로 나선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늘 함께하는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있었다. 1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자신의 지역과 마을에서 그리고 멀리 국외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이라는 구호를 잡고 활동해 왔다. 지금까지 우리 역사에서는 볼 수 없던 일이었다. 광주 5·18 이래 이토록 집요하게 한 사건을 잡고 활동을 한 일이 있었을까?
‘10년 동안 했으면 됐어’라거나 ‘아직도 세월호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진상 규명도, 책임자도 처벌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정치권은 보다 빨리 세월호 참사를 놓고 싶어 했다. 조사기구를 세차례나 만들었는데, 결과가 뭐냐고 타박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런 속에서 세월호 참사 10년이니 다시 힘을 모으자고 나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기억의 연대가 꾸린 ‘세월호 10주기’
그런 고민을 품고 전국시민행진을 시작한 게 지난해 2월25일이었다. 이 행진의 제목은 “안녕하십니까?”로 정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결코 안녕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늘 불안과 위험 속에서 사는 우리들이 서로 의지하고, 연대하자는 의미였다.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4·16연대)의 이태호 상임집행위원장의 제안으로 만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적절한 슬로건이라고 생각한다.
제주도 성산 일출봉에서 전국시민행진의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과 행사를 열었다. 10년 전 수학여행을 떠났던 단원고 학생들의 수학여행 코스였던 이곳에서 그들을 생각하면서 출발을 알린 것이다. 이날 바람이 세차게 불었지만 ‘세월호를 기억하는 제주 청소년 모임’(세제모)의 학생들이 발랄한 율동을 펼쳤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제주도청 앞에서 모여서 제주항까지 행진해서 배를 타고 진도 팽목항으로 넘어왔다. 그 뒤로는 도시와 도시 간은 버스로 이동하고, 시내에서는 행진과 간담회, 문화제를 진행했다. 20박21일의 코스는 ‘제주→전남(팽목·진도, 목포, 광주)→경남(진주·창원, 부산, 밀양·울산)→경북(대구, 구미·안동)→전북(전주, 정읍, 군산)→충청(대전, 청주, 천안)→강원(원주·춘천, 속초·강릉)→수도권(수원, 인천, 안산, 서울)’이었다. 마지막은 경기도 안산에서 행진해서 3월16일에 서울시의회 앞에서 문화제를 갖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21일간의 행진에 4·16연대의 김선우 사무처장과 활동가들이 함께했다.
가는 곳마다 시민들은 곳곳에서 성심성의껏 행진단을 맞아주었다. 그리고 노란 옷을 입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만이 아니라 보라색 옷을 입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도 참여했다. 10년 사이에 활동을 접었거나 모임만 유지하고 있던 지역에서도 이 행진을 계기로 다시 모이고, 다양한 추모 행사를 기획했다. 시민들은 여전히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있었다. 우리가 고마웠는데, 그들은 도리어 우리에게 고맙다고 했다. 10년의 세월을 견뎌주고, 포기하지 않아서 고맙다고, 그리고 미안하다고도 했다.

10주기위원회 사업 중에 가장 활발하게 펼쳐진 기획사업은 ‘4160인 합창단’이었다. 2023년 11월부터 합창단을 모집하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합창에 참여했다. ‘가만히 있으라’, ‘네버엔딩스토리’, ‘화인’,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잊지 않을게’,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등 상설 모임이었던 ‘4·16합창단’이 주로 불렀던 6곡의 노래를 메들리로 엮어서 12분 동안 부르는 미션 프로젝트였다. 학교, 교회, 성당, 노동조합, 사회단체들에서 모여 합창했다. 국외동포들도 합창한 영상을 보내주었다. 이미 10주기 이전에 4160명이 넘어서서 숫자는 의미가 없어졌다.
4·16합창단의 박미리 지휘자가 전국을 돌면서 합창 지도를 했다. 4·16안산시민연대는 물밀듯이 들어오는 참가 신청을 받고, 안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드디어 2024년 4월16일, 안산 10주기 기억식 현장에만 700명 넘는 이들이 참여했다. 큰 무대가 모자랐다. 무대 전면에는 지금까지 전국에서, 국외에서 보내온 영상들을 노래에 맞춰서 틀어주었다. 무대와 영상에서 하나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큰 감동이었다.

사실 10주기 사업의 첫 출발은 ‘생명안전버스’였다. 4·16재단은 전국에서 재난 참사 피해자들의 연대를 만드는 데 부심했다. 2023년 2월18일 대구지하철화재참사 20주기에 매년 참석하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만이 아니라 삼풍백화점, 씨랜드, 공주사대 병영체험, 가습기살균제, 인천 인현동 화재,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의 유가족들이 모였다. 그로부터 각 참사의 주기마다 생명안전버스를 운행했다. 이 사업을 10주기위원회가 이어받았다. 그 결과로 2023년 12월에 ‘재난참사피해자연대’가 결성되었다. 나중에 ‘6·9 광주 학동 참사’ 유가족들이 합류해서 현재는 9개 단위가 모여서 공동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24년 1월에는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가 4·16재단 부설기구로 발족했다.

그 외에도 10주기 행사는 풍성했다. 전시회, 책 발간, 음악회, 토론회 같은 행사들이 10주기를 전후해 다양하게 펼쳐졌다. 10주기위원회의 공식 행사보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행사들이 주로 진행되었다. 해마다 4·16재단이 진행했던 캠페인은 ‘기억은 힘이 세지’였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 덕분에 다른 재난 참사처럼 흩어지지 않았고, 지워지지 않았다. 도리어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종종 세월호를 기억하는 청년들을 만난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세월호 참사가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를 말하곤 한다. 마치 내가 5·18을 기억하고, 그로부터 민주주의를 배웠듯이 청년들은 세월호 참사로부터 국가와 사회를 알게 되었고, 행동에 나서게 되었다.
10주기 사회적 재난 국제심포지엄
피해보상 넘어 공동체 치유도 고민
유족들·시민 손잡고 생명·안전 약속
세월호, 재난 보는 시선 바꿨다
10주기 사업의 마지막은 ‘국제 심포지엄’이었다. 6월20~21일 이틀에 걸쳐서 안산 문화예술의전당 국제회의실에서 진행된 심포지엄에는 일본, 프랑스, 영국의 재난 참사 전문가와 피해자들도 참석했다. 그 자리에는 세계적인 평화운동가 더글러스 러미스 선생님도 노구를 이끌고 참석했다.
나는 이 자리에서 10주기를 맞아서 하고 싶었던 고민을 담아서 기조강연에 나섰다. 나는 세월호 참사가 ‘사고 프레임’에서 ‘사건 프레임’으로 재난 참사를 보는 관점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보상과 치료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피해자와 공동체의 치유, 이를 통한 재발방지 대책의 마련이 중요해졌다. 이런 관점과 문제의식에 시민들이 눈을 떴고, 직접 활동에 나섰다. 시민들은 끝까지 행동하겠다는 약속을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다.
그러므로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 선언’에서 찾았던 피해자의 권리가 법적인 권리로 수용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지금은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시작으로 재난의 예방, 대비, 대응, 복구의 전체 체계를 바로잡아가는 운동으로 나아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공간으로 인천의 세월호 일반인 추모관이 운영 중이고, 안산에는 ‘4·16생명안전공원’이 공사 중에 있다. 목포에 올라와 있는 세월호는 영구 보전되면서 추모와 교육의 공간으로 거듭 태어나려고 한다. 서울에는 서울시의회 앞에 작은 기억공간이 있고, 진도 팽목항에도 여전히 기억공간이 유지되고 있다. 또 이런 공간에 다녀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는 세월호 참사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일이다.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국립 안산 마음건강센터’도 올해 초 개관하여 운영 중이다.
이 모든 것이 처음 있는 일이다. 시작은 어려웠으나, 이제는 그 길이 분명해졌다. 그 길을 따라서 피해자들과 시민들이 손잡고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갈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갈 그 길이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박래군 | 36년째 인권운동가로 살고 있다. 유가협,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재단 사람을 거쳐서 현재는 4·16재단 운영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 ‘상처는 언젠가 말을 한다’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 공저서 ‘이따위 불평등’ ‘새로고침’ ‘살아남은 아이’ 등이 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이재명 “김문수 당선 땐 윤석열 귀환”…김문수 “이준석 찍으면 이재명 된다”
- 김용균 숨진 태안화력서 또…50대 노동자 끼임 사망
- 아내·두 아들 차에 태워 바다로 돌진…혼자 빠져나온 40대 가장 체포
- 보수연합단체 ‘위국본’도 댓글 달기 교육…강사는 리박스쿨 대표
- 권영국 강남역 유세장 어느 유권자의 눈물…“그러지 말고 살아봅시다”
- [단독] 리박스쿨 ‘네이버 댓글조작’…3년 전부터 어르신 단체교육
- 2차 이스탄불 회담…우크라이나 “송환받을 아동 명단 러시아에 전달”
- 정부 “중국 서해 부표, 군사정찰 목적 운용 가능성도 염두”
- 폴란드 대선, ‘친트럼프’ 민족주의 후보 접전 끝 당선
- 땅 밑에 천연수소 ‘석유 17만년분’ 있다…매장지는 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