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위해 모든 것 바친 할아버지들…존경스러워요”

조일준 기자 2025. 6. 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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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이석영-규준 부자가 이어준 한국-대만 후손들의 만남
지난달 30일 저녁,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김창희씨 집에서 이모와 조카 사이인 김용애(왼쪽부터), 니콜 창, 최광희, 캐서린 후가 1970년대 후반 대만의 이우숙이 서울의 언니 숙온과 조카 김용애에게 보낸 친필 편지를 꺼내보고 있다. 조일준 선임기자

이석영-규준 부자의 대만 후손 방한
국립현충원·이석영 도서관 등 방문
“선조들 독립운동 얘긴 못 들었지만
할머니의 ‘아리랑’ 노래 또렷이 기억”

지난달 30일 저녁 서울 종로구 평창동. 일제 강점기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벌인 이석영(1855~1934)-이규준(1896~1928) 부자의 직계 후손 10여명이 김창희(57)씨의 집에 한데 모였다. 그중에는 대만에서 온 사촌 자매 캐서린 후(54)와 니콜 창도 있었다. 김창희씨는 이규준(1896~1928)의 친손녀 김용애(90)씨의 아들이다. 캐서린과 니콜 창은 김용애의 친조카다. 이규준은 서른둘 젊은 나이에 만리타향에서 요절하기 전 온숙·숙온·우숙 세 딸을 두었다. 김용애는 해방 뒤 귀국한 숙온의 장녀다. 캐서린과 니콜은 중국인 장교와 결혼한 뒤 대만으로 건너간 우숙의 손녀들이다.

김창희씨 부부는 2022년 2월에야 어머니가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인정받은 뒤 대만의 형제들을 보러 다녀온 적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이모와 대만의 조카가 직접 만난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이날 만남은 서로 몰랐던 친척들이 만나 혈육 상봉의 기쁨을 나누는 자리이자, 엄혹했던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독립운동을 하면서 겪었던 간난신고의 삶과 아픈 역사를 되새겨보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석영·이회영을 비롯한 경주 이씨 6형제는 17세기 조선의 문신 백사 이항복의 후손인 명문가였다. 그러나 1910년 8월 일본이 조선을 강제 병합하자, 그해 12월 집안의 재산을 모두 처분한 거금을 챙겨 가족 40여명과 함께 비밀리에 중국으로 망명한 뒤 일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일제강점기 항일 무장투쟁의 요람이던 신흥무관학교(1911~1920)도 이석영 형제들이 세우고 운영했다.

캐서린 후(왼쪽 두번째)와 니콜 창(왼쪽 세번째)이 지난주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친척인 김창희(맨 왼쪽)-한수인(맨 오른쪽) 부부의 안내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봉안된 이석영-이규준 할아버지의 위패를 본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창희 제공

우리나라는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당사자의 배우자, 자녀, 손자녀 등 직계 3대를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인정하고 법이 정한 예우와 보상을 하고 있다. 국가보훈부는 2022년 2월 이규준의 친손녀인 김용애씨와 최광희씨 등을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인정한 바 있다. 이들이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인정받은 것은 앞서 2021년 7~8월 한겨레21이 최초로 이석영의 직계 후손이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독 보도한 데 이어, 김씨 가족들이 대만에서 이규준의 가족관계증명서를 찾아낸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전까지 이석영의 후손은 절손됐다는 게 학계와 정부의 공식 입장이었다. 김씨 가족은 적어도 독립운동사 관점에서 보면 존재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던 셈이다.

캐서린은 대만 타이베이에서 글로벌 금융회사에 근무하던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출장을 오곤 했지만, 한국에 자신의 친척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독립운동가 선조의 고국을 찾은 니콜도 믿기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규준-이우숙의 부녀 관계가 명시된 대만 정부의 공문서가 확인된 뒤로도 김용애씨가 독립유공자 후손을 인정받기까지는 6개월이 걸렸다. 김씨와 이규준의 손녀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대만 쪽 우숙 이모의 딸(김 씨의 사촌 자매)과 유전자 대조 검사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캐서린과 니콜은 2022년 가을 한국 정부의 유전자 검사 요청을 받고 처음엔 “마피아 같은 범죄 조직의 보이스 피싱으로 의심”했다. “할머니(이우숙)로부터 3~4대 위 할아버지들의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였다. 세월이 많이 흐른 까닭에 캐서린과 니콜은 한국 핏줄이라는 정체성은 거의 없이 성장했다. 그러나 “어렸을 때 할머니가 종종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훔쳤고, 평소 고국을 무척 그리워했”던 것은 또렷이 기억했다.

이들은 한겨레 보도를 포함한 김씨 가족의 설명을 듣고는 “역사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이석영-이규준 할아버지가 망명 생활을 했던 중국 상하이에도 갔지만 살던 집과 묻힌 곳을 찾을 수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캐서린은 “(후손 확인 과정에서 알게 된) 이석영 일가의 사연이 놀랍고 매우 감동적이었다”라고 했다. “한국(조선)의 양반 가족 전체가 나라의 독립을 위해 거의 모든 것을 바친 것은 쉽지 않은 일, 엄청난 희생이죠. 후손으로서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워요.”

2일 오후 대만으로 돌아가기 앞서 캐서린 후(왼쪽)와 니콜 창이 경기 남양주 이석영 광장 기념관 \'리멤버(remember) 1910\'에 있는 이석영 할아버지의 흉상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창희 제공

김씨 가족들에게는 독립유공자 후손 인정과 그에 따른 혈육 상봉 말고도 뜻깊은 일이 또 있었다. 지난해 6월, 국립현충원에 모셔진 이석영의 위패 바로 옆에 이규준의 위패가 나란히 걸렸다. 독립유공자 위패 봉안은 직계 후손이 신청해야 하는데, 김씨 가족이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공식 인정을 받고서야 신청 자격이 생긴 까닭이다. 또 이숙온의 호적에 친부 이규준의 성명이 이종각이라는 이명(異名)으로 기재돼 직계 후손 입증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도 지난해 11월 대전가정법원의 호적 정정 결정으로 뒤늦게나마 바로잡혔다. 지난해 8월 광복절을 앞두고는 김창희씨가 이석영-이규준 부자의 삶을 복원한 '이규준 평전'을 펴내기도 했다.

김용애씨는 “모든 일이 한없이 기쁘고 감사하다.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이숙온)와 이모들(온숙·우숙)께서도 뿌듯한 마음으로 보고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캐서린과 니콜은 2일 오후 대만으로 돌아가기 전 한국 방문의 마지막 일정으로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현충원 위패 봉안관과 경기 남양주에 있는 이석영 광장 및 기념관 '리멤버(remember) 1910'을 찾아가 할아버지들의 발자취를 되새겼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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