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매트릭스’가 무너질 날 [똑똑! 한국사회]

한겨레 2025. 6. 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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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권자가 지난달 1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 인근에서 열린 ‘성평등 정치로 가는 페미니스트 공동행동’ 전국 캠페인 선포식에서 성평등 투표 선언문을 작성하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제공

이주희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20대 대선을 앞두었던 삼년 전, 2022 여성의 선택이란 글에서 나는 “새 대통령이 성평등을 얼마나 진심으로 지지하는지 여부에 따라 우리 사회가 만연해 있는 혐오와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가가 결정될 것”이라 예측했었다. 윤석열의 당선이 가져올 파장을 우려하며 쓴 글이었다. 대통령이 된 그의 활약은 당시의 내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었다. 끝나지 않는 지루한 공포영화의 마지막 충격적 장면 같았던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대선 토론은 짧은 기간 깊어진 우리 사회의 ‘극우화’ 병증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전시했을 뿐이다.

이준석의 형용할 수 없이 불쾌했던 발언에 대한 시민의 분노는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 우리 사회 엘리트 지도층의 타락한 의식 수준에 대한 누적된 분노이기도 하다. 유흥업소 접대 의혹과 관련된 지귀연 판사의 완강한 반박을 보면서 미국 포터 스튜어트 대법관의 외설성 기준에 대한 고전적 표현, “보면 알아”(I know it when I see it)가 떠올랐다. 여성주의 법학자 캐서린 매키넌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이는 인식론과 권력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준다. 스튜어트 대법관은 법원이 항상 해오던 일을 그대로 인정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유흥업소에서의 접대 여부는 남성적, 판사적 관점에서 결정할 일이지 다른 일반인에 의해 결정될 일이 아닌 것이다. 지귀연 판사의 행위를 비호하던 이준석 캠프 함익병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의 “제 나이대 또래면 룸살롱을 안 가본 사람이 없다고 본다”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성 접대를 당연시하며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사회에서 어떻게 성평등을 기대하겠는가.

매키넌은 포르노가 사회적 현실을 구성하는 데 성공하면 할수록, 그것이 해악으로 인식되기 어렵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의 일부 인구집단은 너무나 광범위하고 강력한 포르노적 공간으로 세상을 재구성하여, 명백히 여성혐오적이며 성폭력적 상상에 기반한 언어를 공적인 공간에서 구사한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조차 모른다. 이준석의 사과에 일관성이 결여된 것도 이러한 세계관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라 했지만, 표현의 자유는 권력 있는 자들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남용되어 왔다. 법과 언어는 사회의 권력 구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권력자만이 보지 못하는 진실이다.

이준석의 대응 중 눈길을 끈 것은 각계의 비판을 “집단 린치”로 표현한 것이었다. 1991년, 성희롱 의혹으로 미국 상원 청문회에 섰던 공화당 계열의 클래런스 토머스 연방대법관 지명자는 보수적인 흑인에 대한 “하이테크 린치”, 즉 인종차별적 공격이라는 프레임 전환을 통해 피해자였던 아니타 힐 교수의 증언을 무력화했다. 주로 백인이었던 민주당 상원 의원들은 과거 남부에서 행해지던 불법적인 처형과 폭력을 연상하며 그에 대한 공격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준석은 비장애인 이성애자로 서울에서 태어나 좋은 학벌을 가진 ‘우월한’ 한국 남성이다. 지금은 대선 후보이기까지 하다. 모든 걸 능력으로 재단하는 능력주의자에게 소수자 흉내는 어울리지 않는다. 분노한 시민도 폭도가 아니다. 흑인도 아닌 이준석이 왜 린치를 걱정하는가?

21대 대선을 맞이해 20대 대선에서의 윤석열 당선을 돌이켜본다. 그를 당선시켰던 말은 혐오로 가득 찬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였다. 그러나 모든 작용에는 반작용이 따른다. 지난 삼년간 어떤 소소한 위장의 노력조차 보여주지 않았던 분열과 혐오의 정치 덕분에 더 많은 시민이, 더 빠르게 진실을 일별하게 되었다. 그가 열심히 만든 나쁜 포르노 같은 극우적 세계관은 그의 당선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이준석의 실수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윤 어게인? 아니, 윤 이즈 오버. 새 정권은 전 정권의 실패를 거울삼아 성평등의 가치가 인정되는 새 시대를 열어주기 바란다. 주권자인 국민과 함께. 우리는 2025년, 미래로, 다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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