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전쟁' 이제훈 "감독 없는 개봉? 부정적으로만 느끼지 않아" [인터뷰]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2025. 6. 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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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이제훈 / 사진=쇼박스

한 병의 소주에 담긴 것은 단순한 도수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절박함이고 세대의 간극이며 시대의 투쟁이다. 영화 '소주전쟁'은 그런 술 한 잔을 매개로 1997년 IMF 시절을 통과한 사람들과 그 시대의 욕망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배우 이제훈이 있다. 영화에서 글로벌 투자사 솔퀸의 직원 최인범 역을 맡아 종록 역의 유해진과 대척점에 선 그는, 욕망과 연민을 동시에 쥔 인물로 스크린을 채운다.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간 것 같아요. 영화가 개봉하고 관객분들이 작품 속 가치관에 공감해 주시니까 제가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느꼈던 부분들이 공유되는 것 같아서 재밌어요. 많은 분이 이 작품을 보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훈이 연기한 인범은 '일은 일, 인생은 인생'이라는 신념 아래 냉철한 판단력으로 움직이는 인물이다. 하지만 인범의 뒤에는 쉽게 말할 수 없는 동요와 딜레마가 겹겹이 쌓여 있다. 몸은 자본 한가운데 서있지만 사람의 얼굴을 잊지 못하는 이중성, 감정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듯 보이지만 종록(유해진)의 인간적인 면모 앞에서 조금씩 방어막이 허물어진다.

"유해진 선배님과 함께 연기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인범이 단순한 매수자가 아니라는 점을 더 느꼈어요. 특히 종록의 삶과 태도에서 아버지 세대의 잔상이 자꾸 떠오르더라고요. 저도 그런 장면을 연기할 때면 감정적으로 동요가 됐어요. 겉으론 누군가를 속이고 회사의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이지만, 어느 순간 그 감정이 인범을 잡아끌어요. 그 두 가지 마음을 오가며 또 다른 배신감을 연속적으로 이어가고자 했어요."

이제훈 / 사진=쇼박스

특히 인범이 종록을 통해 느끼는 애증과 죄책감은 작품 전체를 끌고 가는 핵심 서사다. 처음에는 단순히 종록을 회유하고 조종하기 위해 접근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안에 연민이 자라난다. 인범이 종록에게서 아버지를 투영하는 순간부터 감정은 더는 일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하지만 편집 과정에서 그런 감정의 변곡점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상당수 삭제됐고, 이제훈 역시 그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고 털어놨다.

"초반엔 종록에게 접근하면서도 철저히 이익을 따지는 사람이었지만,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의 진심을 느끼고 또 어느 순간 그가 아버지처럼 느껴지면서 인범의 마음도 달라졌어요. 원래는 그런 감정선의 디테일이 시나리오나 촬영본에선 더 드러났는데 최종 편집에선 많이 빠졌어요. 관객으로선 왜 이 인물이 갑자기 마음을 바꿨는지 의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실제 매니지먼트 대표로도 활동 중인 그는 회사와 사람 사이의 균형을 매일같이 고민하는 입장이다. 단지 영화 속 인범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는 종종 '일이 사람을 삼킨다'는 감각을 체감한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캐릭터 해석에서도 중요한 키가 됐다.

"예전엔 작품이 끝나면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쉴 땐 연락도 자제해달라고 했죠. 그런데 지금은 대표니까 일이 곧 저고 제가 일이 된 느낌이에요. 직원들에겐 쉼과 워라밸을 보장하지만 정작 저 스스로에게 그렇게 못 해요. 일이 없는 미래가 더 무섭거든요. 그래서 항상 바쁘게 움직이지만, 그 안에서 불안도 커지고 있어요. 인범이 느꼈을 압박과 목표 의식이 저한텐 너무 익숙한 감정이에요."

이제훈 / 사진=쇼박스

영화의 배경인 1997년 IMF 시기는 그에게도 먼 이야기가 아니다. 그 시절의 불안을 집에서 피부로 느꼈고, 어린 시절의 기억은 종록을 이해하는 감정의 뿌리가 됐다. 단지 극적인 장치가 아닌 개인의 체험으로 각인된 시대였다.

"당시 자영업을 하던 아버지께서 장사가 안돼서 새벽마다 일용직 일거리를 찾으러 나가셨어요. 어린 마음에 '우리 집이 힘들구나' 정도만 알았지 그 마음을 진정으로 헤아리진 못했죠. 그래서 '소주전쟁' 시나리오를 봤을 때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어요. 그때 종록처럼 헌신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유해진 선배님과 함께 영화로 보여줄 수 있어서 되게 감사해요."

이번 작품에서 이제훈은 대사량이 많고, 특히 영어 대사와 금융 용어가 중심을 이루는 터라 촬영 전부터 준비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그는 투자사 직원처럼 보이기 위해 영어 발음과 억양 하나하나까지도 녹음과 반복 연습을 거쳤다.

"영어 대사를 녹음기 틀고 수십 번 반복했어요. 영어를 유창하게 하진 않지만 관객에게 느낌을 전달할 수 있을 정도는 돼야 했거든요. 기죽지 않고 설득력 있는 에너지를 담기 위해 영어 수업도 받고 발성도 조정했어요. 인범이 가진 확신, 그걸 말의 리듬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소주전쟁' 이제훈 / 사진=쇼박스

흥미롭게도 영화에서 소주는 감정의 장치로 등장하지만 실제 그는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소주에 취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할 땐 대학생 시절의 기억을 끌어와야 했다. 하지만 홍보와 예능 출연을 하면서 그는 오히려 술의 문화와 매력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한다.

"20대 초반 대학생 때 숙취에 시달리며 술을 마셨던 기억을 상기했어요. 그때는 술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매일 숙취 때문에 믿지도 않는 각종 신들에게 빌면서 시간을 보냈죠. 지금은 거의 마시지 않지만 오히려 예능에서 영화를 홍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시게 되더라고요. 영화에서 판매하는 '탑소주'를 예능에서도 홍보했거든요. 짠하는 순간 생기는 온기, 동질감 같은 게 있어요. 소주는 그런 술 같아요. 쓴맛과 단맛, 고통과 위로를 동시에 안겨주는 술. 그래서 한국인의 정서를 담기엔 가장 적절한 매개 같아요."

유해진과의 호흡도 언급했다. 그는 유해진에 대해 "90년대와 2020년대를 관통하는 배우"라 치켜세우며 함께 연기할 수 있었던 시간을 영광의 순간으로 여겼다. 

"유해진 선배님이 빠지면 한국 영화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존재라고 생각해요. 이번 작품을 함께하면서 정말 많이 웃고 배우고 느꼈어요. 선배님처럼 주변을 웃게 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선배님처럼 하루 종일 함께 있어도 지루하지 않은 사람, 그런 배우가 되고 싶더라고요."

'소주전쟁'은 개봉 전 크레디트 전쟁으로 고초를 겪기도 했다. 메가폰을 잡았던 최윤진 영화사꽃 대표가 연출 계약 당시 시나리오를 단독 작가로 표기했지만, 이후 해당 각본이 신인 작가 박현우의 기존 작품과 유사하다는 의혹이 일었고, 끝내 박 작가의 작품이 맞다는 법원 판결을 받으면서 '감독'에서 '현장 연출'로 타이틀이 바뀌었다. 이에 따라 '소주전쟁'의 감독란은 비었다.

이에 대해 이제훈은 "모든 영화가 그렇듯 이 작품도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다. 촬영 중간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모두가 끝까지 완성하자는 마음 하나로 버텼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에 쏟은 시간과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저는 지금의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느끼지 않는다. 작품을 만드는 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끝내 원하는 방향성으로 나아갔다. 앞으로도 긍정적 방향으로 가기 위해 선택하며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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