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금융위기 헤치고 경제 거장 대거 양성한 경제학자 ‘스탠리 피셔’

백윤미 기자 2025. 6. 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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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 독립성 지켜낸 실용주의자
IMF부터 연준까지 국제 무대 활약
수많은 제자 키운 ‘학자형 정책가’

세계 경제와 통화 정책의 중심에서 수십 년 간 활약한 경제학자 스탠리 피셔가 지난 달 31일(현지 시각) 별세했다. 향년 81세.

그는 글로벌 금융 위기 때마다 중추적 역할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제1부총재,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이사회(FRB) 부의장 등 국제 경제 기구의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다. 또한 메사추세츠공대(MIT) 교수로 재직하며 벤 버냉키, 마리오 드라기, 래리 서머스, 카즈오 우에다 등 후대의 세계적 정책가들을 길러낸 ‘경제학자들의 경제학자’로 평가받는다.

지난 달 31일(현지 시각) 향년 81세로 별세한 경제학자 스탠리 피셔. /로이터=연합뉴스

피셔는 1943년 영국령 북로디지아(현 잠비아)의 마자부카라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남아프리카에서 보냈다. 런던정경대(LSE)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뒤,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며 폴 새뮤얼슨과 로버트 솔로 같은 거물들의 지도를 받았다. 1970년대 그는 임금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반영해 새로운 통화정책 이론을 만들었고, 이는 ‘신케인즈주의’라는 경제학의 한 흐름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의 1977년 논문은 중앙은행이 단기적으로 고용과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통찰을 제공했고, 이는 오늘날 주요국 통화정책의 이론적 기반으로 이어졌다.

1990년대 후반 피셔는 IMF 제1부총재로서 멕시코·러시아·아시아 등 신흥국 금융 위기 대응을 지휘했다. 그는 고금리·재정 긴축·시장 개방을 핵심으로 한 ‘워싱턴 컨센서스’ 전략을 실무적으로 이끌었고, 대규모 구제금융 설계에 깊이 관여했다. 그러나 이 접근은 신흥국 경제에 과도한 고통을 안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고금리 정책은 경기 침체를 악화시키고, 구조조정과 긴축은 사회 안전망을 훼손하며 빈곤층에 타격을 주었다는 것이다.

또 IMF가 단일한 처방을 강요하면서 각국의 자율성과 맥락을 무시했다는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피셔는 이러한 비판을 수용하며 보편적 해법보다는 국가별 상황에 따른 유연한 정책 조율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조정했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 피셔는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로 재임하며 이스라엘의 경제 체질 개선에 기여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이스라엘은 세계 주요국 중에서도 선제적 금리 인하를 단행한 몇 안 되는 국가였으며, 그는 외환시장 개입과 제도적 개혁으로 불확실성에 대처했다. 총재 권한을 분산하고 외부 위원을 포함한 통화정책위원회를 도입하는 등 제도적 독립성을 강화했으며, 이는 중앙은행 신뢰도 향상으로 이어졌다.

2014년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미국 연준 부의장으로 지명된 그는 재닛 옐런 의장과 함께 금융 규제와 금리 정책의 균형을 조율했다. 특히 금융 시스템의 과도한 완화 가능성에 대한 경고를 이어가며 “규제는 단기 성과보다 장기 안정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반복했다. 연준 내부에서는 다소 매파적 성향으로 분류됐지만, 그의 정책적 균형감은 국제금융계 전반에서 신뢰를 받았다. 그는 2017년 아내의 건강 악화를 이유로 임기를 마치기 전 조기 사임했다.

피셔의 유산은 단순히 이론과 실무에 걸친 경력을 넘어 후대의 정책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데 있다. MIT 시절 그는 학생들과 매주 만나 대화하며 ‘말할 게 없을 때도 오라’고 권했고, 찰스강을 따라 달리며 논문을 토론하던 그의 수업 방식은 전설로 남아 있다. 대표 저서인 ‘거시경제학’은 수십 년간 경제학 입문자들의 필독서였으며, 그의 강의와 조언은 수많은 글로벌 정책 결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를 “전장의 의무병”이라 부른 뉴욕타임스(NYT)의 평가처럼 피셔는 언제나 세계 경제가 혼란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호출되는 실무자이자 학자로 꼽힌다. IMF에서의 긴급 구제금융, 이스라엘의 제도개혁, 연준의 정상화 정책 등 그는 단발성 기여가 아닌 ‘지속적 시스템 안정’을 추구한 실천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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