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일의 대선, 어떤 설계도 그렸나

문상현 기자 2025. 6. 2.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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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은 절차적 의미를 넘어 상징적 과정이 되어야 했다. 민주주의 복구 설계도를 그리고 그 이후를 디자인해야 했다. 60일의 대선을 돌아본다. 어떤 복원 설계도가 어떻게 그려졌는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5월29일 서울 신촌동 주민센터에서 청년들과 함께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5월29일 인천 계양1동 주민센터에서 딸 김동주씨와 함께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가 5월29일 경기 화성시 동탄9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5월29일 전남 여수시 주삼마을회관에서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제21대 대통령선거는 단순한 권력 교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비상계엄과 탄핵이라는 헌정사 초유의 위기 상황이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다. 이번 대선은 단순히 비어 있는 대통령 자리를 채우는 절차적 의미를 넘어, 상징적 과정이 되어야 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자기 정화 능력과 회복탄력성을 가늠할 수 있는 계기였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를 근본부터 붕괴시켰다.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 특히 지난 총선에서 자신에게 압도적 패배를 안긴 다수 야당을 반드시 처단해야 할 민주주의의 위협이자 ‘종북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하며 군사력을 동원했다. 망상과 선동을 통해 중대범죄 행위를 정파적 해석의 영역으로 끌어와 정치적 갈등을 극단으로 치닫게 만들었다. 전 세계가 지켜본 반국가 범죄를 저지르고도 궤변을 늘어놓으며 사법 신뢰를 훼손했다. 공동체의 상식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1·19 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와 광장에서 벌어진 탄핵 찬반 집회, 탄핵 국면에서 본질을 흐린 정파적 공방 모두 윤석열이 불러온 민주주의 파괴와 분열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선출한 대통령이 민주적 책임을 저버렸을 때, 그를 견제할 방법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1987년 여름의 저항과 2017년 초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경험을 통해서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서 입법부는 계엄을 해제하고, 탄핵을 추진하면서 행정부 최고 권력자의 민주주의 파괴 행위를 저지했다. 사법부는 윤석열을 파면하면서 헌정 질서를 바로잡았다. 정치가 실패한 자리에 주권자(국민)들이 직접 나섰다. 폭력과 억지가 아닌 법과 절차로 민의의 전당을 구해냈다. 갈라진 광장 속에서도 연대하며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짚었다. 삼권분립과 법치주의 원칙이 작동하면서 최후의 심판자들이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선거를 통해 새 질서를 수립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누구를 위한 정당인가

공은 다시 정치로 넘어왔다. 60일이라는 압축적인 선거 기간에 주어진 정치의 숙제는 분명했다. 각 정당과 후보들은 윤석열이 파괴한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민주주의 작동 메커니즘이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을 보장하고 약속해야 했다. 내란 종식과 반성, 사과로 민주주의 복구 설계도를 그려내고 그 이후를 디자인하는 게 정치의 역할이었다. 60일의 대선을 돌아볼 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그리고 각 당 소속 대선후보들이 어떤 민주주의 복원 설계도를 어떻게 내놓았는지 질문해야 하는 이유다.

2017년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을 묵인하고 방조했던 대통령은 고개를 숙였다. 당시 여당이던 보수정당은 사죄하며 자신들의 손으로 그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무너진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회복하겠다는 것이 당시 그들의 명분이었다. 한국 보수를 대변하는 정당, 집단이 내걸어온 최고 목표이자 핵심 가치가 ‘자유민주주의 수호’였기 때문이다.

비상계엄 사태에서도 민주주의 복원의 책임을 가장 크게 진 쪽은 윤석열과 함께 한때 국정을 책임지던 정당인 국민의힘이었다. 그러나 사상 초유의 헌정 유린 사건에도 국민의힘에선 ‘내란 동조자’와 ‘방조자’들이 곳곳에서 등장했다. 윤석열과 선을 그은 것도 긋지 않은 것도 아닌 태도를 유지하며 충성 지지층의 이탈을 막았고, 피할 수 없게 된 조기 대선에서 ‘반이재명’ 전선을 세워 중도와 무당층을 흡수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8년 전 ‘보수 궤멸’ 사태를 재현하지 않겠다는 게 그들의 목표였다.

‘자유민주주의’ 회복의 상징으로서 내세웠어야 할 후보로 윤석열 탄핵 반대에 앞장선 김문수를 선출했다. 그마저도 정당 역사상 최초의 대선후보 교체를 시도하며 끌어내리려 했다. 당원들의 투표로 선출된 후보를 원칙도, 전례도 없는 방식으로 외부 인사와 바꾸려 했던 초유의 정당 민주주의 파괴 사태였다. 바꿔치기하려 시도한 외부 인사 역시 내란 가담 혐의로 수사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였다. 이 과정에서 정당 민주주의를 외치며 반대하는 내부 목소리는 외면했다. 보수를 대변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대신 당권과 기득권을 지키는 데 주력한 결과였다. 내란과 민주주의 파괴라는 이번 조기 대선의 근본 원인과 보수의 핵심 가치에 비춰보면 모두 이질적인 장면들이다.

5월9일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며 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국민의힘은 2024년 4월 총선 대패 이후 오답 노트를 썼다. ‘마지막 기회’라는 제목의 백서를 발간하고 당정 관계, 공천, 공약 부재, 당의 철학과 비전 부재 등을 패배 원인으로 꼽았다. 국민의힘이 2021년과 2022년 각각 180석의 거대 여당(더불어민주당)과 경쟁해 서울시장과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작성했던 오답 노트였다. 이른바 태극기 부대로 불리던 극우 지지층과 거리를 두며, 반성하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적어도 외피적으로나마 보이고,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최고 권력과 냉정하게 선을 긋고 앞을 봤기 때문에 기회가 온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계엄과 탄핵 국면을 거친 뒤 치러지는 대선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오답 노트 자체를 쓰지 않았다. 진단과 반성을 통해 내란 세력과 절연, 확장성 있는 대선후보 선출, 민생 공약과 보수의 미래 제시 등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으나 그 기회를 잡지 않았거나 혹은 발로 걷어찼다.

유권자의 손끝에 달린 민주주의

“피청구인(윤석열)은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된다고 인식해 어떻게든 타개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됐을 것으로 보인다. (···) 국회는 당파의 이익이 아닌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도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한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했어야 한다. (···) 일방의 책임에 속한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조율되고 해소돼야 할 정치의 문제다(2025년 4월4일 헌법재판소 윤석열 탄핵 결정문).”

헌법재판소는 윤석열의 비상계엄 사태의 근본적 원인 중 하나로 당시 야당(더불어민주당)의 문제를 짚었다. 정치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비상계엄이었다는 윤석열의 궤변을 질타하는 과정에서 나온 지적이었으나, 헌재는 비상계엄 사태의 배경에서 민주당을 빼놓을 수 없다고도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행정부의 법안 거부권 행사 횟수와 국회에서 발의된 고위 공직자 대상 탄핵소추안 건수가 역대 정부와 비교해 급증한 현상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주권자가 쥐여준 권한이 정쟁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증거이며, 그 결과가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적 형태로 나타났다는 취지였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힘을 비롯한 범보수 진영이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를 향해 펼친 공세의 핵심 내용도 민주주의에 관한 문제다. 이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은 이재명 후보가 민주당에서 찾아보기 힘든 대규모 정적 제거와 숙청으로 당대표가 되었다는 점, 이를 기반으로 역대 최고 수준의 당내 지지를 받아 대선후보에 선출되었다는 점, 대통령으로 당선될 경우엔 당을 넘어 입법·행정·사법부까지 모두 장악해 삼권분립이 아닌 ‘삼권 집중’이 된다는 점 등을 지적하며 비판한다.

5월2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인천 서구 롯데마트 청라점 앞에서 선거유세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이재명 후보는 대선 유세 기간 내내 3대 키워드를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탕평 인사·실용주의 정책·정치보복 근절’이다. 모두 권력 분산과 관련 있는 약속이다. 진영과 계파를 가리지 않고 구성한 선대위와 공약 등을 통해 ‘실천’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약속들의 실질적인 이행 여부와 결과는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야 확인이 가능하다.

민주당은 대법원의 이재명 후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선고 이후 대법원장 탄핵 및 청문회, 그리고 ‘대법관 100명 증원’ ‘비법조인 대법관 임용’ 법안 등을 추진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대법원의 이례적 판단에 대응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사법부 압박’ 논란으로 확산되면서 대통령 당선 후 ‘삼권 장악’ 신호로 작동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논란이 커지자 이재명 후보는 “나와 생각이 다르다”라며 선을 그었다. 민주당은 이 후보 발언이 나오자 곧바로 법안을 철회했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헌정 유린과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크나큰 대가를 치르고 얻어낸 귀중한 기회이자 경고다. 승자와 패자를 가리거나 권력 교체의 도구로만 남길 수 없는 역사적 분기점이다. ‘비상계엄 이후’라는 전례없는 상황에서, 한국 정치와 유권자들은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갈등을 동력 삼는 과거로 돌아갈 것인지, 분열의 고리를 끊고 새로운 민주주의와 협치의 가능성을 열어갈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6월3일 유권자의 손끝에 달렸다.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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