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콘텐츠 제작-소비 틀 마련… 韓영상산업 세계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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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은 K컬처가 태동한 시기로 꼽힌다.
CJ가 영상 산업에 뛰어들고 세계 진출을 선언하면서 사실상 K컬처가 시작됐다.
이 외에도 몇몇 변화가 1995년에 이뤄지면서 '30년 내공을 쌓은 K컬처'가 만들어지게 됐다.
1995년 4월 제일제당(현 CJ그룹)은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드림웍스SKG'에 3억 달러(당시 기준 약 2315억 원)를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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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의 시작 1995년 5가지 장면
SM엔터 설립 K팝 산업화 기반
‘모래시계’ K드라마 가능성 확인

1995년 4월 제일제당(현 CJ그룹)은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드림웍스SKG’에 3억 달러(당시 기준 약 2315억 원)를 투자했다. “식품기업이 ‘딴짓’한다”는 비아냥거림도 있었지만 이재현 회장의 문화사업에 대한 의지는 확고했다. 이 회장은 문화사업을 추진하는 기업인인 만큼 딱딱해 보이지 않도록 청바지에 티셔츠, 운동화 차림으로 가서 피자를 먹으며 스필버그 감독과 협상했다. 한국 기업가들이 고지식하고 경직돼 있다는 편견을 깨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다. 지금도 CJ에서는 당시 투자 협상을 ‘청바지 협상’이라고 부르며 청바지와 피자를 변화와 개혁, 도전의 상징처럼 인식하고 있다. CJ는 드림웍스의 지원 아래 할리우드식 제작 시스템을 도입해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 ‘올드보이’(2003년), ‘설국열차’(2013년) 등을 연이어 내놓았고, 2020년엔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을 차지했다.
1995년 3월에는 케이블TV가 첫 방송을 시작했다. 24개 채널이 동시에 출범하면서 지상파 중심이던 방송 시장에 변화가 시작됐다. 특히 음악, 영화 등의 전문 채널이 생기면서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제작되고 소비될 기반이 마련됐다.
1995년 PC통신 서비스 확산도 문화 콘텐츠 소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문학,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동호회가 생겨나면서 새로운 문화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는 다양한 문화적 시도를 가능하게 했고 대중문화의 저변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K팝의 산업화 기반도 이 시기 마련됐다. 1995년 2월 K팝의 기틀을 닦은 SM엔터테인먼트가 설립됐다. SM엔터테인먼트는 이듬해 1세대 아이돌 H.O.T를 비롯해 S.E.S, 신화, 보아 등을 잇달아 선보였다. 특히 2000년엔 H.O.T 중국 베이징 콘서트에서 ‘한류’라는 용어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한국 드라마의 성장 가능성도 엿볼 수 있었다. 1995년 1월 9일 첫 회가 방송된 SBS 드라마 ‘모래시계’는 20부작 평균 시청률 43.2%, 최고 시청률 64.5%를 기록했다.
김다연 기자 dam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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