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신 찍을 때 감독·배우 조율… 국내 1호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살색이 있는 곳에 그들이 있다. 영화·드라마 촬영장의 노출 조율 전담 인력인 ‘인티머시 코디네이터(Intimacy Coordinator)’ 국내 첫 전문가가 나왔다. 성행위 등 민감한 장면을 찍을 때 감독과 배우, 다른 스태프 간의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중재하는 역할을 맡는다.
국내 1호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인 권보람씨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액션을 찍을 때 무술 감독이 필요하듯, 노출이 필요할 땐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있어야 한다”며 “불필요한 갈등의 여지를 사전에 없애고 더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권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영상기획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독립영화 ‘영주’ ‘빅슬립’ 등의 프로듀서로 일했다. 미국 할리우드의 ‘인티머시 프로페셔널 연합(IPA)’에서 운영하는 전문 과정에 입학해 6개월 교육을 마치고 최근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필요성은 2010년대 후반 미투 운동 이후 부상했다. 제작사와 감독은 갑(甲), 배우와 스태프는 을(乙)이라는 권력 관계 때문에 과도한 요구를 거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작용했다. 코디네이터 고용이 법적인 의무는 아니다. 하지만 조합원 17만명으로 막강한 힘을 가진 미국 배우조합-텔레비전라디오방송인조합 연합(SAG-AFTRA)의 권고에 다수의 제작사가 호응하고 있다. HBO는 2019년 이후 자사 모든 콘텐츠에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고용한다. 캐나다·영국·호주·뉴질랜드에서도 활동하며 일본에선 6명이 NHK와 넷플릭스재팬의 지원 인력으로 일한다.
촬영장 노출 중재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과거부터 제기됐다. HBO 드라마 ‘왕좌의 게임’(2011~2019)에서 ‘용엄마’로 유명해진 에밀리아 클라크(대너리스 타르가리옌 역)는 시즌 초기 과도한 노출을 강요받았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클라크가 “이 부분은 가리겠다”고 말해도 “그러면 팬들이 실망할 것”이라며 압박을 가했다는 주장이었다. 지난해 베네치아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인 ‘베이비걸’의 주연 니콜 키드먼은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있어서 더 강렬한 연기가 가능했다”며 필요성을 옹호했다.
국내 최초 사례는 2023년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인 단편 영화 ‘갈비뼈’다. 당시엔 국내 전문 인력이 없어 일본인 코디네이터가 참여했다. ‘갈비뼈’의 배우 권잎새씨는 지난달 전주국제영화제 간담회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가 있으니 보호받는다고 느껴져 연기가 더 수월했다”고 밝혔다.
모든 배우가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아노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마이키 매디슨은 몰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코디네이터를 거부했다. 이에 일부 코디네이터가 “현장에서 지켜봐야 하는 다른 스태프의 정신 건강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국내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정착에는 넘어야 할 벽이 높다. 제작사 입장에선 인건비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필요성에 대한 인식부터 심어야 한다. 권씨는 “여배우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남성 배우라도 가학적인 성행위를 찍게 되면 촬영 전후 심적인 부담이나 후유증을 겪을 수 있다. 권씨는 “성행위 촬영 외에도 출산, 수술, 수유처럼 신체가 드러나는 모든 장면에 코디네이터가 도움이 된다”며 “노인 역 배우가 기저귀를 갈아 차는 장면에서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는 등 섬세한 지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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