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시론┃문화·예술] 적응-흐름에 역행하기

김진형 2025. 6. 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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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영 미술작가

손 안에 쥐어진 작은 유리판이 있습니다. 매일같이 수많은 이미지와 정보를 쏟아내죠. 스마트폰이라는 매체 덕분에 우리 삶의 모습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방 안에 누워있으면서 저 먼 곳의 풍경을 보고 올 수 있고, 굳이 두꺼운 책을 뒤지지 않아도 많은 정보와 생각들을 흡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하는 정보를 향해 손가락 하나만 까딱이면 되는, 보다 간편해진 접근성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이 쏟아내는 수많은 데이터가 빚어낸 그 어느 시대보다 풍부한 지식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범람하는 데이터들의 빠른 유속 때문에 보지 못하고 흘려 보내는 것들에 대해서는 쉬이 떠올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관광학에서는 이동수단의 발달에 따라 여행자들의 시선을 다르게 표현합니다. 도보로 여행하던 시기에는 시점이 한 군데 고정되어 집중하는 ‘점 시점’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철도여행은 고정된 채로 길게 이어지는 ‘파노라마 시점’으로 여행자들의 풍경 지각 자체가 바뀌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묵직하지만 빠른 이동수단의 등장으로 마을과 국가 간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졌고, 이동시간은 크게 줄었습니다. 하지만 그 속도로 인해 우리는 ‘전경(前景)을 상실’하게 되었죠. 천천히 걸으며 볼 수 있었던 눈 앞의 디테일은 사라지고 모든 풍경이 단순화되고 기호화 됐습니다.

▲ 위쪽은 ‘DANGER’, 2024, 종이에 연필, 14.8 × 21㎝, 9장. 아래는 ‘오늘밤 이곳은 불이 꺼지지 않는다(부분), 2021, 롤지에 펜, 30 × 270㎝.

오늘날 역시 오프라인 세상의 다양한 정보가 0과 1의 세계관 속 흘러넘치는 데이터로 변환되는 과정을 거치며 소실되는 것들이 생겼습니다. 친구가 올린 인스타그램 속 해외 풍경은 공항에 내리는 순간 바로 느껴지던 냄새와 습도 그리고 기온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매번 같은 비행기 창문이나 확대되어 파편화된(crop) 이미지 뿐입니다. 네이버에 사과를 검색하면 구슬처럼 새빨갛게 반짝이는 사과만 가득합니다. 꽃이 지고 발갛게 익어가는 과정 그리고 점점 시들어가는 그 사이 수많은 단계의 사과들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애초부터 빨간 상태로 존재했던 것처럼 말이죠. 디지털 시대의 빠른 속도와 간편함은 우리를 더 먼 곳으로 그리고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도록 이끌었지만, 이 세계에 존재하는 디테일들을 놓치게 만들었습니다. 시대는 다양성을 논하고 꿈꾸고 있지만, 세계는 점점 단순하고 파편적인 풍경만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빠르고 간편해진 시대. 이런 흐름 속에 사람들이 “굳이 왜?”라고 물어보는 일들에 흥미를 느끼는 편입니다. 지난 달부터는 빵을 굽기 시작했습니다. 반죽을 발효하는 데에 필요한 효모도 직접 키워서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빵을 사 먹거나 인스턴트 이스트를 사용해 구울 때보다 시간이 몇 배는 더 들어갑니다. 하지만 발효종이 빵을 굽기 좋은 상태가 되기까지, 반죽이 적당히 부풀어 오르기까지 그리고 시큼한 풍미를 내는 맛있는 빵이 만들어지기까지. 모든 과정 사이에 유튜브로는 배우지 못했던 감각적 이벤트들이 끼어 있었습니다. 집에서 식물을 키우며 그들이 조용히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라탄으로 필요한 소품들을 직접 만들 때에도 화면이 보여주는 것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것들이 존재했습니다. 다양한 감각적 자극에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 사라진 연결고리는 선명해지고, 얇고 미끄럽던 세계는 조금 촘촘해졌습니다.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빠르게 확장하는 우리의 세계. 그 속도를 늦출 수는 없겠지만, 잠시 화면을 끄고 고개를 들어 다가오는 초여름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창백한 화면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오프라인의 디테일들을 느끼는 것만이 무자비하게 흐르는 데이터의 유속을 더디게 만들고, 우리의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감각은 새롭게 도래한 온라인 세계관에 휩쓸리지 않고, 되려 잘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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