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바람의 언덕
이설야 시인 2025. 6. 1.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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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언덕이라면
좋겠습니다
구부러진 길
끝에서도 내다보이는
발보다
눈이 먼저 닿는
중간중간 능소화 얽힌 담벼락 이어져
지나는 사람마다 여름을 약속하는
젖어도 울지 않는
바람도 길을 내어
사람의 뒷말 같은 것이 남지 않는
막 걸음을 배운 어린아이도
허공만을 쥐고 혼자서 오를 수 있는
누군가는 밤으로 기억하고
누군가는 아침으로 기억해서
새벽부터 소란해지는
박준(1983~)
우리에게 등을 대고 누울 따뜻한 언덕이 있다면 좋겠다. 불안한 안개가 우리 일상을 흐릿하게 만들어도 기댈 수 있는 “그런 언덕이라면” 더욱더 좋겠다. 마음의 미등을 켜고 뒤쪽으로 사라지는 것들을 내려놓고 “발보다 눈이 먼저 닿는” 곳마다 꽃나무를 심으리라. “지나는 사람마다 여름을 약속하는” 오늘은 희망을 품어도 좋은 날이라고 말하리라. 이제는 등을 돌리던 사람에게도 언덕이 되어야지. 눈보라에 “젖어도 울지 않는” 힘을 기르리라. 바람이 낸 길들을 걸으며 “사람의 뒷말”과 군말, 거짓말 같은 것들은 다 사라지도록 하리라. 우리 영혼을 조금씩 갉아먹는 오염된 말들을 잡초처럼 뽑아 생의 먼 바깥으로 던져버리리라.
“누군가는 밤으로 기억”하고, “누군가는 아침으로 기억”하는 그날의 악몽을 불태워야지. 다시 시작하는 새벽빛이 되어야지. 내일이면 바뀔 세상을 꿈꾸며 더 많은 빛을 모아야지. 우리의 등을 토닥거리는 언덕 위 하늘이 오늘은 맑음, 내일도 맑음이었으면 좋겠다. 닫혔던 내일의 문을 하나씩 열어젖히며 희망을 꿈꾸는 오늘.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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