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려도 “핸들 못 놔”…노인 이동권 넓혀 운전포기 유인을
- 면허소지 노인 4년간 9만명 증가
- 반납률은 0.5%P 오르는 데 그쳐
- 성취감·대중교통 불편함 등 이유
- 운수종사자 중 65세 이상 23.6%
- 생업과 연결될 땐 반납 더 어려워
- 보행자 교통사고도 4년간 17%↑
- 주거지 실버존 님비 탓 지정 적어
- 사회 분위기 바꿔야 해결 실마리
“치매 진단을 받은 70대 부친이 지속적으로 운전하는 것을 고집해 걱정입니다.”
부산에 거주 중인 A 씨가 부산경찰청 교통과 담당자에게 전한 고민이다. A 씨의 가족과 담당 경찰관이 합심해 2주 넘는 기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A 씨 부친의 운전면허 반납을 끌어낼 수 있었다.
부산은 특별·광역시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고령화율을 보이는 동시에 고령의 면허 소지자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5년간 고령 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고자 경찰뿐만 아니라 지자체가 고령자 운전면허 자진 반납을 적극 추진하지만, 위 사례처럼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다.

▮낮은 자진 반납 비율
1일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부산지역 고령의 운전면허 소지자는 ▷2020년 24만9215명(전체의 12.4%) ▷2021년 27만865명(13.4%) ▷2022년 29만3479명(14.5%) ▷2023년 31만4199명(15.5%) ▷지난해 33만8134명(16.6%)으로 매년 그 수와 비율이 증가세를 나타냈다. 부산은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을 65세 이상 자가용 및 운수용 운전자를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지만, 실제 반납률은 제자리 걸음이다. 2020년 2.73%였던 고령자의 운전면허 반납률은 지난해 3.23%로, 4년간 0.5%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그러는 사이 고령 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는 2020년 1834건(전체의 15.2%)에서 지난해 2672건(23.5%)으로 건수와 비율 모두 매년 꾸준히 증가했다. 일찍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부산이 고령 운전자에 대한 대책을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 3월 기준 부산의 고령인구는 79만1106명으로 전체(325만9219명)의 24.3%를 차지하는 상황이다. 이 같은 수치가 앞으로 더 심화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고령 운전자의 자발적인 면허 반납을 이끌 유인책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에 대해 부산경찰청 교통과 관계자는 “부산은 2018년부터 전국 최초로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제도를 시행했고, 자진 반납 지원사업이 시행된 이후에는 연간 1만 명가량이 면허증을 반납하고 있다”며 “다른 시·도보다는 반납률이 높지만, 그 비율을 더 올리기 위해 부산시 시의회 등과 함께 효율적인 유인책 수립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간 사회적 비용 42만 원 절감
65세 이상의 고령 운전자 1명이 면허를 반납할 때 0.01건의 교통사고가 줄어든다는 분석 결과가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고령 운전자 운전면허 자진반납 정책의 교통사고 감소 효과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고령 운전자 1명이 면허를 반납하면 1년간 0.0118건의 교통사고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 운전자 약 85명이 면허를 반납할 경우 교통사고 1건을 막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또 고령 운전자 1명의 면허 반납은 인적·물적 피해 비용 등을 줄이면서 연간 42만 원의 사회적 비용을 아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논문에서는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하면 운전을 포기하기 쉽지 않은 만큼 고령자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제도를 적극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운전대 못 놓는 노인들
“어르신들이 운전 경력에 대한 자부심과 (면허 반납 시) 비슷한 연령대 구성원들에게서 늙은이 취급을 받는 분위기 때문에 운전대를 쉽게 못 놓습니다. 강제할 수도 없고, 설득이 정말 쉽지 않아요.”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를 현장에서 빈번하게 목격하는 경찰관의 말이다. 그는 고령 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면서 사고를 낸 고령 운전자를 만날 때마다 면허 반납을 설득·유도하지만 쉽지 않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오랜 운전 경력에 따른 자부심과 삶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운전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상실감이 면허 반납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자식들에게 걱정을 끼칠 것이 두려워 사고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상 징후를 포착하지 못해 고령 운전자 사고 위험이 더욱 커진다”고 말했다.
택시 화물차 기사 등 고령자 중에는 운전을 생업으로 하는 사례도 많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버스 택시 화물차 등 전체 운수 종사자 중 65세 이상이 23.6%를 차지한다. 개인택시 기사 가운데 10명 중 5명이, 버스는 10명 중 2명이 고령 운전사다. 이들에게는 운전면허 반납이 ‘먹고 사는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에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고민거리가 된다.
▮사회적 인식 전환 선행돼야
인구 고령화에 따라 고령 운전자뿐만 아니라 고령 보행자의 교통사고를 막기 위한 사회적 안전장치가 촘촘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2020년 851건 수준이던 부산지역 고령 보행자 교통사고는 지난해 998건으로 17.2% 증가했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전체 보행자 교통사고가 한해 평균 2732건 발생했는데, 고령 보행자 교통사고가 32.1%(877건)를 차지했다.
도로 위 고령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는 2007년 도로교통법 개정을 통해 노인보호구역(실버존)을 도입했으나,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 비해 지정된 장소가 현저히 적고 사회적 인식도 낮은 게 현실이다. 부산에는 어린이보호구역이 819곳 지정된 데 반해 노인보호구역은 84곳에 불과하다. 이는 어린이보호구역의 10% 수준이다.
어린이보호구역이 초등학교 유치원 어린이집 등 어린이가 주로 활동하는 시설 주변에서의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지정하는 곳이라면, 노인보호구역은 노인복지시설 경로당 요양병원 등 노인이 자주 이용하는 시설의 주변 도로가 지정 대상이 된다. 어린이·노인보호구역 모두 ‘특별보호구역’인 만큼 이곳에서는 차량 주행 속도가 시속 30㎞ 이하로 제한되고, 제한 속도나 주정차 금지 등의 규정을 위반하면 최소 2배 이상의 과태료 및 범칙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노인보호구역에 대한 인지도가 떨어지면서 운전자들의 규정 준수율도 낮다.
초등학교 유치원 어린이집과 달리 노인복지시설 경로당 요양병원 등이 주거지 주변에 들어서는 것을 반기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도 노인보호구역이 적은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어린이·노인보호구역 모두 지정권자는 지자체장으로, 어린이·노인 시설의 장이 구·군에 신청하면 부산경찰청과의 협의를 통해 부산시장이 최종 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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