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열 추모하고 '이승만 구호' 아이러니 [현장메모]
백준무 2025. 6. 1. 19:12
한국 현대사에도 혁명의 순간이 있었다. 1960년 4월19일, 이승만정부의 대대적인 부정선거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8일 뒤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하야를 선언하고, 미국 하와이로 망명했다. 이 전 대통령은 5년 뒤 사망할 때까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김주열 열사의 죽음은 4·19혁명의 도화선 중 하나로 꼽힌다. 한 달 전,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부정선거 항의 시위 행렬에 합류했다가 실종된 김 열사는 4월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경찰의 시위대 진압용 최루탄이 눈에 박힌 처참한 시신의 모습이 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김 열사는 최근 뜻밖의 조명을 받았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제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지난달 28일 유세 첫 일정으로 경남 창원 국립 3·15 민주 묘지를 방문하면서다.
김 후보는 김 열사의 묘를 참배하는 한편 방명록에 ‘김주열 민주열사 민주주의를 지켜주소서’라는 문구를 남겼다. 창원 시내에서 유세 연설 중에는 김 열사를 언급하며 “이 나라 민주주의는 공짜로 된 것이 아니다. 이 분들의 죽음, 눈물, 피땀(으로 성취한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느 유세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는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해보자, 뭉치자, 이기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해보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어록에서, ‘뭉치자, 이기자’는 이 전 대통령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어록에서 각각 차용한 것이다.
보수정당의 대선 후보가 보수층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이·박 전 대통령을 소환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다만 이날만큼은 김 후보의 모습이 한 편의 부조리극처럼 느껴졌다. 불과 1시간 전 김 열사의 묘를 다녀오고 방금 전까지 김 열사를 언급했던 대선 후보가, 김 열사의 죽음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이 전 대통령의 구호를 힘차게 외치는 모습은 아이러니 그 자체였다.
백준무 기자 jm10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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