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지만 무거울 수도 [이주은의 유리창 너머]


이주은 | 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그림이 갤러리에 전시된 채로 감상할 때와 누군가 그 작품을 사들여서 집에 걸어놓은 상태를 보는 것은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한마디로 전시품이냐 소장품이냐의 차이라고 할까. 전시품은 미술가의 입장이 되어, 즉 미술가가 관람자에게 무엇을 보여주고자 시도했는지 상상하며 본다. 작업실에서 무슨 재료를 골랐고, 이런 형태를 발견하기까지 어떤 우연의 과정이 있었을지, 어디에서 영감을 받았을지 등이다. 물론 그런 과정과 결과물이 어떻게 예술의 세계로 진입하게 되는지 설명하기란 늘 어렵다.
반면, 소장품은 자신도 모르게 구매자를 의식하면서 구매 동기를, 그것이 마치 작품의 핵심인 것처럼,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구매자가 가족이거나 절친이라면 도대체 이 작품의 어디가 마음에 들어서, 자동차 한대 금액을 아낌없이 바쳤을지 비판적인 시선으로 따지려 든다. 작품 덕에 초라하던 공간이 고품격 분위기로 탈바꿈했다면, ‘이거로구나’하며 끄덕여본다. 만일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어쩌겠는가, 포기할 수밖에. 그런데 이 경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예술의 세계가 아니라, 소장자의 정신세계인 듯하다.
프랑스의 극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희곡 ‘예술’(1994)에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레자의 문학은 인간관계의 미묘한 긴장과 팽팽한 갈등을 흥미진진하게 다루는데, 영화로 소개되어 알려진 것으로는 ‘대학살의 신’(2006)이 있다. 주인공인 두 부부는 자식의 폭행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만나 어른답게 성숙한 대화를 시작하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화는 유치해져 간다. 결국 네 사람 모두의 본성이 바닥까지 드러나는 블랙 코미디이다. ‘예술’도 이와 비슷한 구조인데, 흰 그림을 구매한 하나의 사건을 둘러싸고 세 친구가 대화하다가 인간관계가 틀어지는 내용이다.
세르주라는 한 친구가 누군가의 연봉에 해당하는 금액을 다 쏟아부어 유명 작가의 흰 그림 한점을 집에 들여놓는다. 세르주는 이건 단순한 흰 캔버스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마크는 이를 보고 약간 분노에 가까운 당혹감을 느낀다. “아무것도 없는 흰 판때기일 뿐인데 그 돈을 주다니 미쳤군.” 흰 그림을 두고 극과 극으로 갈라선 두 사람을 중재하고자 이반이라는 친구가 나서서 횡설수설한다. “오! 강렬한 그림이야. 한편으로는 담백하기도 하고.”
‘예술’의 끝부분은 그림 때문에 우정을 망칠 수 없다고 깨달은 세 친구의 화해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인간끼리의 갈등이 풀어졌다고 해서 흰 그림의 예술적 가치에 합의를 본 것은 아니다. 마크는 그림이 비어 있다는 점이 여전히 마음에 걸리지만, 자기 예술관에 걸맞게 절충해서 수용하기로 한다. 어떤 인물이 스키를 타고 내려오다가 언덕 너머로 내려가 버렸고, 지금은 온통 눈으로 덮인 비탈길만 화면 위에 남아있는 거라고.
레자의 ‘예술’은 ‘그동안 흰 그림은 적막하고 침묵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시끄럽고 수다스러울 수도 있구나’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마크는 공격하고, 세르주는 방어하고, 이반은 중재한다. 흰 캔버스가 그저 마음을 비우는 대상이 아니라, 생생하고 치열한 반응의 장이라는 것이다.
서설 끝에 소개하는 작품은 이형우의 ‘무제’이다. 편백나무를 얇게 대패질해서 나온 대팻밥을 캔버스 위에 살포시 붙인 이 작품을 전시장에서 보면서, 문득 떠오른 이미지는 예술적인 것이 아니었다.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일본 식재료에서 육수를 내거나 고명으로 뿌리는 가다랑어포다. 일본어로 ‘가쓰오부시’인데, 가볍디가벼워 음식에 뿌리면 꿈틀대고, 곧 국물을 흡수해서 무거워진다. 마크가 흰 캔버스에서 스키장을 보았듯, 나는 가다랑어포를 본 것이다.
이형우는 최소한의 형태만을 구현하는 조각품으로 작년에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출품한 경력이 있다. ‘최소한’이라는 점에 몰두하다가 근래 주목한 것은 최소한의 질량을 가진 재료였고, 바로 얇디얇은 대팻밥이었다. 조각가들은 주로 벽이 아닌 바닥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기에 아마 그도 처음에는 바닥의 받침대 위에 대팻밥을 배치해 보지 않았을까. 이를 벽으로 세우면 캔버스가 된다. 그러니 조각과 회화의 경계를 넘었다고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조각가로서 그가 재료를 만지고 다듬고 대패질한 흔적, 팔 근육의 긴장과 에너지, 그리고 켜켜이 쌓인 작업의 시간이 대팻밥에 깃들어 있다. 여기에 관람자 저마다의 상상과 삶의 무게까지 실린다면, 국물을 흡수한 가다랑어포처럼 결코 가벼울 수만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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