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기념관 간 천경자 그림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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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박정희 대통령이 취임하고 이듬해인 1964년 9월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오늘날 천경자가 베트남에서 그린 작품을 소장 중인 서울시립미술관 측은 "당시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 대부분이 화가 개인의 화풍과 개성을 살리지 못하고 이전에 제작된 전쟁 기록화를 답습한 반면 천경자는 평소 즐겨 그리는 소재를 반영하여 환상적이고 이국적인 풍정(風情)을 화폭에 담았다"며 "개성 있는 전쟁 기록화"라고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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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박정희 대통령이 취임하고 이듬해인 1964년 9월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아시아에서 공산주의가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들었으나 실은 동맹인 미국의 집요한 요청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6·25 전쟁 당시 외국의 도움으로 나라를 지켰으니 이제 그 보답을 해야 한다’는 미국 측 주장에 정색하고 반기를 들긴 어려웠다. 더욱이 미국이 전쟁 수행을 이유로 주한미군 병력 일부를 빼내 베트남으로 이동시키는 경우 심각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1973년 3월 철수하기까지 8년 넘게 이어진 파병 기간 동안 연인원 34만여명의 국군 장병이 베트남에서 싸웠다. 그 가운데 5000명 넘는 인원이 목숨을 잃었으니 참으로 고귀한 희생이 아닐 수 없다.

낯선 타국의 전쟁터에 도착한 천경자는 육군 맹호부대에 배속됐다. 종군 화가들은 마치 종군 기자와 같이 치열한 전투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거기에서 기록화로 남길 만한 소재를 찾아야 했다. 베트남 체류를 마치고 귀국한 화가들은 1972년 12월로 예정된 전시회를 앞두고 저마다 그림 완성에 공을 들였다. 오늘날 천경자가 베트남에서 그린 작품을 소장 중인 서울시립미술관 측은 “당시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 대부분이 화가 개인의 화풍과 개성을 살리지 못하고 이전에 제작된 전쟁 기록화를 답습한 반면 천경자는 평소 즐겨 그리는 소재를 반영하여 환상적이고 이국적인 풍정(風情)을 화폭에 담았다”며 “개성 있는 전쟁 기록화”라고 높이 평가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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