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단체 초상화 렘브란트 ‘야경’...그속에 숨겨진 깜짝 반전 [슬기로운 미술여행]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5. 5. 3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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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미술여행 - 24]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4월의 네덜란드 여행은 정말 좋은 기억을 안겨줬습니다. 별다른 기대없이 찾은 이 운하의 나라는 유럽에서 발견한 가장 놀라운 여행지였습니다. 어딜 가나 깨끗한 거리와 카페, 이국적인 풍광, 마침 튤립이 만발했던 시기까지 맞물려서 만족스러운 경험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세계 최고 수준의 미술관들이 있는 암스테르담과 헤이그는 개인적으로 꼭 다시 찾고 싶은 도시가 됐습니다. 베르메르, 렘브란트, 반 고흐라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거장 세 명을 탄생시킨 나라는 이들을 만날 수 있는 탁월한 공간을 품고 있었습니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는 운하가 흐른다
자전거를 탄 시민들이 미술관을 신나게 가로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레이크스뮤지엄에서는 자전거 사고를 조심해야한다. ©김슬기
암스테르담은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풍성한 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입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자랑했던 국가의 미술관을 만날 기회가 생긴 겁니다. 암스테르담 미술 1번지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을 찾았습니다.

레이크스 뮤지엄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곳은 고전주의 양식의 고풍스러운 자태를 뽐내는 유럽의 대표 미술관과는 다른 독특한 외관부터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미술관의 남쪽으로는 거대한 미술관 클러스터를 만드는 광장이 있고, 북쪽으로는 운하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미술관의 1층 한가운데는 신기하게도 도로가 뚫려있어서 자전거들이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이 200년 전 처음 문을 연 도시는 암스테르담이 아니었습니다. 1808년 네덜란드 왕국은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통치 하에 있었고 그는 국가 소장품을 원래 시청이었던 담 광장의 왕궁 최상층에 전시했습니다. 1809년 문을 연 왕립 박물관(Royal Museum)의 소장품에는 렘브란트의 <야경(The Night Watch)>을 포함한 도시의 가장 중요한 그림들이 포함됐죠.

1813년 빌렘 1세가 왕위에 오른 후, 헤이그의 박물관과 국립 판화 컬렉션은 모두 클로페니어스부르흐발에 위치한 궁전인 트리펜하위스로 이전했습니다. 이 박물관은 ‘레이크스 박물관(Rijks Museum)’ 또는 ‘국립 박물관(National Museum)’으로 명명되었죠. 레이크스 뮤지엄의 시작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컬렉션이 다른 장소로 옮겨졌고 나폴레옹 시대와는 대조적으로 오랜 기간 레이크스 뮤지엄은 주요 작품을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유럽 전역에 웅장한 미술관이 들어서면서 네덜란드는 자랑스러운 국립 박물관 건축물을 세우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봄의 미술관에서 놓치면 안되는 튤립 정원. ©김슬기
건축가 피에르 카이퍼스(Pierre Cuypers)가 건축가로 선정되었고, 그는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요소를 조화시킨 건축물을 설계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중세적이었고, 너무 가톨릭적이었기에 “네덜란드스럽지 않다”는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며 1885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지금은 네덜란드 건축을 대표하는 건물로 암스테르담 중앙역과 함께 사랑받고 있죠.

최근의 리노베이션(2003~2013)을 거치며 박물관은 카이퍼스의 원래 건축 계획을 더 충실하게 복원시켰습니다. 회화, 응용 예술 및 역사 전시실을 더 이상 별도 건물에 전시하지 않고 모두 함께 모아 중세부터 20세기까지 네덜란드 예술과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의 연대기로 풀어내기로 한거죠.

2013년에 다시 문을 열자마자 박물관은 200만 명이 넘는 전례 없는 수의 방문객을 끌어들이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 미술관 컬렉션은 1600년부터 1900년까지의 회화 컬렉션을 방대하게 전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17세기를 중심으로 한 네덜란드 회화의 정수를 만날 수 있죠.

저는 운이 무척 좋아서 때마침 미술관 정원에서 만개한 튤립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봄의 미술관에서 놓치면 안되는 호사입니다. 레이크스 뮤지엄은 식당도 유명합니다. 요리스 바이덴데이크(Joris Bijdendijk) 셰프가 이끄는 레이크스 레스토랑은 뉴욕 현대미술관과 함께 미슐랭 별을 받은 매우 희귀한 미술관 레스토랑 중 하나입니다.

이국적인 것을 수집하는 네덜란드인들
종교화와 성상들이 있는 0층 전시장. ©김슬기
레이크스 뮤지엄의 0층부터 중세 시대로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어두운 조명 아래 종교화와 희귀한 컬렉션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범선 모형과 동양의 도자기와 불상, 수 세기 전 도서관까지도 고스란히 전시하고 있는 이 미술관은 대항해시대의 배를 통해 들여온 온갖 희귀한 보물들이 보관된 금고처럼 보였습니다.

레이크스 뮤지엄을 관람하는 게 즐거웠던 이유가 있습니다. 네덜란드가 미술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알게해준다는 점입니다. 네덜란드에서는 미술의 계급도에서 역사화에 비해 열등하다고 여겨진 초상화와 정물화가 특별히 발전했습니다. 사진이 발명되기 전, 사진보다도 더 사실에 가까운 세밀한 표현으로 그린 그림을 부유한 상인들이 사모았습니다. 플랑드르의 풍경, 화려한 화병의 그림을 집에 걸어두며, 미술을 소장하는 기쁨을 누렸던 겁니다. 이런 부유한 국가에서 위대한 화가가 나온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습니다.

George Hendrik Breitner [Girl in a White Kimono], 1894 ©김슬기
네덜란드인의 독특한 수집 습관은 작품의 면면에서 묻어납니다. 조지 헨드릭 브라이트너(George Hendrik Breitner)는 1893년에서 1896년 사이에 브라이트너는 일본 판화에서 영감을 받아 기모노를 입은 소녀의 그림 13점을 그렸습니다. <흰색 기모노를 입은 소녀>(1894)는 16살의 하녀의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소녀의 몽상적인 시선과 안타까운 현실은 당시 관람객들의 마음을 흔들었다고 합니다.

이 미술관의 가장 이국적인 풍모를 보여주는 작품으로는 로렌스 알마-타데마의 <이집트 과부>도 있습니다. 그는 독일 출신으로 벨기에와 영국에서 활동했고,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는 이집트와 로마의 과거에 대한 묘사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작위까지 받은 화가였죠. 이 그림 속 고고학적 디테일로 가득한 묘사는 놀랍습니다.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는 여인의 옆에서 사제들은 슬픔의 애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1900년까지의 미술을 주요 컬렉션으로 삼고 있는 미술관의 마지막 화가는 반 고흐입니다. 이웃에 위치한 반 고흐 미술관이 대표작을 대거 소장하고 있지만, 풍경화 몇 점과 자화상을 레이크스 뮤지엄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1887년 파리시절의 자신을 패셔너블하게 차려입은 파리지앵으로 묘사한 희귀한 작품입니다.

Lourens Alma Tadema [De Egyptische weduwe], 1872 ©Rijksmuseum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는 ‘명예의 전당’이 있다
수도원처럼 만들어진 ‘명예의 전당’은 네덜란드 최고의 그림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는 공간이다. 갤러리의 끝에 복원 전의 [야경]이 걸려 있는 모습. ©Rijksmuseum
레이크스 뮤지엄의 가장 독특한 점은 2층 정중앙에 명예의 전당(Gallery of Honour)이라는 공간이 있다는 점입니다. 미술관이 낯선 관광객들에게는 ‘유명한 그림’만 단숨에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곳만 평소에 붐비는 편이라서, 미술 애호가들은 다른 전시실을 상대적으로 쾌적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렘브란트와 <유다의 신부>, 주디스 레이스터 <세레나데> 등을 포함한 20여점의 미술관 대표작들이 이 곳에 모여있습니다. 명예의 전당에서 가장 혼잡한 장소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 4점이 나란히 걸려 있는 곳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베르메르 컬렉션을 자랑하는 미술관다운 엄청난 인기를 자랑합니다.

베르메르 순례자의 성지답게 2023년에는 ‘세기의 전시’를 열어, 총 37점의 작품 중 무려 28점의 작품을 이곳에 모으기도 했었죠. 이 전시를 보지 못해서, 저는 힘들게 온 유럽을 돌며 하나씩 도장깨기를 하고 있습니다.

Johannes Vermeer [View of Houses in Delft, Known as ‘The Little Street’], 1660 ©김슬기
델프트의 풍경을 그린 <리틀 스트리트>(1658)는 작은 그림 속 풍경과 인물의 구도가 정말 균형 잡혀 보였습니다. 운하변에 위치한 전통 주택의 실내에는 일하는 여인들이 보입니다. 베르메르의 이모가 실제로 살았던 집을 오른쪽에 그린 겁니다. 그림 속 장소인 델프트의 Vlamingstraat 40-42는 지금은 옛 모습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순례자들이 찾아가는 곳이 됐습니다.

<편지 읽는 여인>(1663)은 드레스덴에서 본 그림과 쌍둥이처럼 닮은 그림이었습니다. <러브 레터>(1669~1670)는 주인공이 있는 실내를 멀리서 포착해 원경에 담은 구도가 독특하죠. 편지를 건네준 하녀를 기대에 찬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여인의 모습이 멜로 드라마를 만들어냅니다. 벽에 걸린 바다 풍경처럼 17세기에 바다는 종종 사랑에 비유되었고, 연인은 배에 비유되었다고 합니다.

Johannes Vermeer [Woman Reading a Letter], 1663 ©김슬기
Johannes Vermeer [The Love Letter], 1669-70 ©김슬기
베르메르의 걸작 <밀크 메이드>(1660)는 정말 작은 크기의 작품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멈춰 있고 우유만 흘러내리는 순간이 묘사됩니다. 일에 완전히 몰두한 하녀는 조각상처럼 서 있습니다. 그녀의 몸에 빛에 쏟아지고, 그림은 마치 햇살 속에 있는 것처럼 반짝입니다.

이토록 작은 그림에 놀라울 만큼 많은 세부 묘사가 숨어 있습니다. 바닥에는 추운 겨울을 견디게하는 난로가 놓여있고, 오른쪽 하단에는 타일 속에 큐피드가 그려져 있습니다. 빵바구니 가득 빵이 있고, 심지어 벽에는 움푹 팬 흔적과 못자국도 그려졌습니다.

베르메르는 이처럼 12명의 아이를 거느린 대가족의 가장이었으면서도 부엌의 작은 구석, 소녀의 방 한 켠으로 자신의 시선을 가져가는 미스터리한 화가였습니다. 마치 영화감독처럼 단순한 일상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그 순간을 포착하죠. 찰나의 순간을 영원한 이야기로 기억하게 만드는 마법입니다.

Johannes Vermeer [The Milkmaid], 1660 ©김슬기
네덜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렘브란트 <야경>의 비밀
유리 창살 속에 갇혀서 복원 중인 렘브란트의 [야경]. 거의 복원을 마친 그림의 왼쪽과 오른쪽 끝 부분은 바니시가 제거되지 않아 흐릿하게 보인다. ©김슬기
Rembrandt van Rijn [야경], 1642 ©Rijksmuseum
네덜란드의 가장 유명한 그림은 렘브란트의 <야경>입니다. 왜일까요. 서양 미술사에서 처음으로 전통적 대규모 초상화에 서사적 장면을 부여한 혁신적인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에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있다면 네덜란드에는 <야경>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2025년 이곳을 찾은 분들은 가장 유명한 그림인 <야경>을 눈앞에서 볼 수는 없습니다. 유리 감옥에 갇혀서, 지난한 복원 과정을 거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찾은 4월에는 그림의 양쪽 끝부분의 흐릿한 부분을 제외하면 바니시가 대부분 제거되어 17세기의 원래 모습을 대부분 되찾은 상태였습니다.

유리벽 너머에는 미술관의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사진을 찍고 있었죠. 저는 미술관이 문을 닫기 직전 다시 야경의 방을 들렀습니다. 워라밸이 확실한 선진국답게 문을 여는 시간부터 시작된 복원 작업이 끝이 나고 복원사는 칼퇴근을 했더군요. 고요하게 이 그림을 단독으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경>을 제대로 만나려면 퇴근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림 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프란스 바닝크 코크 대위는 부관에게 중대 행군을 시작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문 옆의 방패에는 민병대원의 이름이 꼼꼼하게 적혀 있죠. 왼쪽의 병사들 사이에는 죽은 닭을 허리에 두르고 있는 소녀가 있고, 오른쪽에는 짖는 개가 있습니다.

초상화 속의 서사를 만나봅시다. 렘브란트는 34명의 인물 중 18명만 실제 인물을 묘사했으며, 노란 옷의 소녀는 민병대의 상징적 문장을 의인화한 존재입니다. 전투 준비 장면의 극적 긴장감을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 카라바조의 명암 대비법(키아로스쿠로)을 활용해 빛의 흐름을 연출했습니다.

원제인 <제2구역 프란스 바닝크 코크 대위 지휘 하의 민병대>를 대신해 널리 알려진 <야경>으로 불리게 된 사연이 흥미롭습니다. 18세기 후반까지 여러 번의 바니시 도포로 인해 화면이 어두워지면서 관람객들이 야간 장면으로 오인한 것이 계기가 되었죠. 1940년대 복원 과정에서 원래의 낮 장면이 확인되었음에도, 이 오명(汚名)은 작품의 정체성으로 굳어졌습니다.

처음에는 클로페니어스둘렌(kloveniersdoelen) 민병대 본부의 대형 연회장에 전시되었습니다. 공개 당시 모델들은 단체 사진처럼 자신의 모습이 담기길 원했기에 그림을 보고 불만을 품었습니다. 초상화의 모델이 된 이들은 당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혁신을 처음 받아들이는 건 언제나 쉽지 않은 법입니다.

2019년 시작된 ‘네덜란드 야경 프로젝트(Operation Night Watch)’는 정말 대단한 프로젝트였습니다. 5년 동안 보존가, 큐레이터, 과학자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팀이 컴퓨터 과학부터 인공지능까지 사용해 이 걸작을 연구했습니다. 심지어 NASA가 화성 광물 분석에 사용한 반사 이미징 분광법(RIS)까지 사용했습니다. 재료의 비밀과, 밑그림이 아래에 숨어있음을 밝혀내 화가가 즉흥적으로 이 그림의 구도를 잡았다는 사실도 밝혀냈죠.

연구를 마친 뒤, 8명의 레이크스 미술관 보존가들로 구성된 팀이 그림의 바니시를 제거하는 복원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모나리자가 휴가를 갈 수 없는 것처럼, 야경도 휴가는 언감생심입니다. 방문객들은 야경을 위한 방에서 이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Bartholomeus van der Helst [Militia Company of District VIII in Amsterdam under the Command of Captain Roelof Bicker], 1643 ©Rijksmuseum
<야경>의 오른쪽에 걸린 바르톨로메우스 판 데르 헬스트(Bartholomeus van der Helst)의 <대위의 지휘하에 있는 암스테르담 VIII 지구의 민병대 중대>(1640-1643)와 비교해서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야경>의 뒷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형제처럼 닮은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민병대가 전투 연습을 하는 산만한 모습이 묘사되어 있죠.

이 그림은 원래 렘브란트의 <야경>과 나란히 걸려있던 작품입니다. 가운데에 빨간 망토를 두르고 있는 소년을 제외하고는 모두의 이름은 알려진 유명인사였죠. 곁에 있는 남자의 하인인 이 흑인 소년의 존재는 노예무역이 합법이던 시대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튤립 버블의 시대를 풍미한 ‘정물화의 여왕’
Rachel Ruysch [Stilleven met bloemen in een glazen vaas], 1690-1720. ©Rijksmuseum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라헬 라위스(Rachel Ruysch, 1664~1750)는 17세기 정물화의 여왕이었습니다. 당대 부유한 네덜란드인들은 튤립의 구근을 사는데 그치지 않고, 화려한 꽃으로 가득한 정물화를 수집했습니다. 덕분에 네덜란드의 정물화는 튤립 못지않은, 네덜란드의 특산품이 됐습니다. 네덜란드의 어떤 미술관을 가도 정물화 컬렉션의 위용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저명한 식물학자프레데릭 라위스(Frederik Ruysch)의 딸로 꽃과 곤충을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라위스는 당대 최고의 정물화가가 됩니다. 라위스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 호화로운 꽃 정물화는 1000길더가 넘는 가격을 기꺼이 지불하는 부유한 후원자들을 열광시켰습니다. 렘브란트가 일생동안 500길더 이상을 받은 적이 없는 걸 감안하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독일 공국인 팔츠 선제후 요한 빌렘(Johan Willem)은 그녀를 궁정 화가를 임명하기도 했습니다. 초상화가인 남편과 결혼 후에도 10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라위스는 말년까지 작업을 이어가며 자신의 이름을 그림에 서명했습니다. 80대까지도 작업을 이어가며 그녀가 남긴 정물화는 200여점이 넘습니다.

최근 들어 라위스를 재평가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 4월 미국 오하이오의 톨레도 미술관은 라위스의 개인전 <Rachel Ruysch: Nature Into Art>을 성대하게 개막했죠. 이 전시는 뮌헨의 알테 피나코테크와 보스턴 미술관 전시로 이어집니다.

암스테르담에 이어 방문한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에도 라위스의 정물화로 가득한 방이 있었습니다. 2021년 3월, 라위시의 <유리 꽃병에 꽃이 있는 정물화>(1690~1720)는 주디스 레이스터(Judith Leyster), 게시나 테르 보르치(Gesina ter Borch)와 함께 레이크스뮤지엄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당대의 거장이었던 세 명의 여성화가는 미술관이 세워진 지 200여년 만에야 명예의 전당의 문을 연 최초의 여성 작가로 기록될 수 있었습니다.


런던에 살면서 유럽 미술관 도장 깨기를 하고 있습니다. 매일경제신문 김슬기 기자가 유럽의 미술관과 갤러리, 아트페어, 비엔날레를 찾아가 미술 이야기를 매주 배달합니다. 뉴스레터 [슬기로운 미술여행]의 지난 이야기는 다음 주소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https://museumexpress.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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