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파이브》, 색다른 개성으로 무장한 신상 히어로팀이 왔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2025. 5. 3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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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지만 품질 좋은 K히어로물

(시사저널=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영화 《하이파이브》를 보기 전에 염려한 건 두 가지였다. 마블을 위시한 히어로물에 대한 피로감이 극에 달한 상태인데 너무 늦게 내놓은 게 아닐까. 할리우드 히어로물과 다른 노선을 걷는다고 할지라도 디즈니플러스의 《무빙》이 '한국형 히어로' 타이틀을 거머쥐었는데, 《무빙》과는 어떤 차별점을 보여줄 수 있을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첫 번째 염려는 기우였다. 유사 할리우드 히어로물과는 확실하게 다른 질감의 '김치맛' 잔뜩 나는 'K히어로'물이기에 피로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두 번째는 절반의 성공처럼 느껴졌다. 《하이파이브》만의 개성이 분명 있었지만 개성과 메시지 두 가지를 모두 잡았던 《무빙》에 비하면 가벼운 느낌이 없지 않았다. 휘발성이 크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좋은 점수를 더 주고 싶은 건,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라고 힘줘 말할 수 있는 한국 영화가 오랜만에 나왔기 때문이다. 코로나19와 주연배우 유아인의 마약 논란으로 개봉 일정이 늦어지면서 '창고영화'라는 불운한 타이틀을 얻었으나, 그 타이틀에 묶일 만큼 낮은 품질의 영화는 결코 아니다. 극장 관람을 미리 추천한다.

영화 《하이파이브》 포스터 ⓒ(주)NEW

장기 이식으로 초능력이 생긴 사람들

장기를 이식받아 초능력을 얻는 설정이다. 장기 이식을 소재로 삼은 공포물이나 멜로물은 꽤 있었으나 히어로물은 처음인 것 같다. 이식받은 장기에 따라 초능력이 달라진다는 디테일도 흥미롭다. 영화는 시작에서부터 지체하지 않는다. 초능력자로 추정되는 기증자가 장기를 이식하고 난 뒤, 불가사의하게 소멸하는 장면으로 문을 연다.

도복을 입고 다니는 태권 소녀 완서(이재인)는 외롭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에 심장병으로 병원 신세를 지면서 친구를 사귈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게다가 좋아하는 태권도마저 태권도장 관장인 아빠 종민(오정세)의 반대로 마음껏 하지 못한다. 실시간으로 심장박동수를 체크하며 건강을 우려하는 아빠의 감시가 때로 감옥처럼 느껴진다. 그런 완서의 삶에 볕이 든다. 심장을 이식받은 후 엄청난 힘과 스피드를 갖게 된 것이다. 완서에게 초능력보다 더 중요한 건 이 능력을 통해 친구들을 얻게 됐다는 점이다. 훗날 '하이파이브'라는 팀명으로 한배를 타게 될 초능력 친구들 말이다.

완서처럼 장기 이식을 통해 초능력을 갖게 된 친구들 면면은 다음과 같다. 폐를 이식받은 후 남다른 폐활량을 얻게 된 작가 지망생 지성(안재홍), 각막 이식으로 와이파이 같은 전자기파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 힙스터 백수 기동(유아인), 신장 이식 후 의문의 능력을 갖추게 된 야쿠르트 매니저 선녀(라미란), 그리고 간 이식을 받아 힐러 능력을 얻게 된 건설현장 작업반장 약선(김희원)이다. 외톨이였던 완서처럼 이들도 초능력을 얻기 전엔 저마다 상처와 약점을 안고 살아왔다. 특별하게 선택받은 자들이 아닌, 가장 보통의 사람들이 초능력을 갖게 된다는 지점에서 《하이파이브》의 개성이 피어난다.

많은 히어로 영화가 증명했듯, 초능력 소재 영화에서 히어로만큼이나 중요한 건 빌런이다. 빌런이 강할수록, 주인공들의 존재감도 비례해 커지기 때문이다. 빌런인 교주 영춘(신구/박진영)의 출발점은 하이파이브 멤버들과 같다. 영춘 역시 췌장을 이식받은 후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된다.

출발은 같지만, 목적한 바가 다르다는 점이 영춘과 하이파이브 멤버들을 가른다. 영춘이 자신의 능력을 불로장생을 여는 목적으로 쓸 때, 우리의 다섯 히어로는 폐지 줍는 노인의 리어카를 바람을 이용해 뒤에서 밀어주거나, 시각장애인이 안전하게 차도를 건널 수 있도록 신호등 시간을 조작하는 데 자신의 능력을 쓴다. 아기자기하고 귀엽다. 재기도 있고, 의미도 있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영화는 히어로와 빌런을 가르는 데 중요한 건 결국 '자유의지'임을 드러낸다.

영화 《하이파이브》 스틸컷 ⓒ(주)NEW

캐릭터 무비로서 합격점

《하이파이브》는 캐릭터 무비다. 캐릭터 자체의 매력 못지않게 각각의 캐릭터를 운용하는 배우 개개인의 기량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캐스팅이 매우 좋다. 먼저 이번 영화의 중심 캐릭터인 완서를 연기한 이재인의 기량이 훌륭하다. 아역배우부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이재인에게 이번 영화는 사실상 처음 맡은 '대작' 주연작이다. 

선배들 사이에서 주눅 들지 않고 맡은 역할을 똑부러지게 해내는 모습에서 앞으로 그녀가 만날 캐릭터들이 궁금해진다. 내놓는 작품마다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임하는 바람에 은퇴설이 따라붙었던 안재홍은 이번에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코믹한 연기를 보여준다. 신의 재능이다. 코믹함과 정극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라미란과 영춘이 회춘한 역할을 연기하며 신구의 뉘앙스를 살린 박진영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유아인이다. 《하이파이브》는 2023년 마약 투약 혐의로 적발된 유아인이 논란 이전에 찍어둔 마지막 작품이다. 《하이파이브》에 '유아인 리스크'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어온 이유다. 그러나 예측 가능한 리스크는 리스크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이미 영화 《승부》를 거치면서 그의 존재가 흥행에 큰 리스크가 아님이 증명된 만큼, 이번에도 유아인이란 이름이 영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미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심스럽게 언급하자면,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이번 영화는 유아인 리스크보다 유아인의 스타성이 더 돋보이는 영화다. 유아인만이 낼 수 있는 분위기, 흔히 말하는 '간지'라는 게 있는데 그것이 기동의 매력을 시종 반짝이게 한다. 유아인의 분량은 편집 없이 그대로 쓰였다는 강형철 감독의 말이 100% 사실이라면, 유아인의 배우로서의 좋은 자질도 의외로 만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하이파이브》의 중심축은 완서를 연기한 이재인이다. 그리고 1인이 튀어서는 안 되는, '배우 앙상블'이 매우 중요한 영화다. 유아인은 자신이 어떤 앙상블 역할로 극에 기여해야 하는지를 매우 잘 알고 연기를 펼친 듯 보인다. 당시 톱스타 위치를 점하고 있었단 것을 감안하면, 'n분의 1' 역할을 충실하게 소화해 냈다는 점에서 눈길이 간다. 

영화의 액션 아이디어도 좋다. 특히 도심을 질주하는 야쿠르트 카트 체이싱 장면에서의 리듬, 액션 합, 편집, 쾌감이 장난 아니다. 태권 소녀 완서가 아빠를 뒤에서 조종하면서 벌이는 액션 역시 객석에 큰 웃음을 안긴다. 《써니》에서 확인했던 강형철 감독의 OST 선곡 능력은 이번에도 적재적소에서 흥을 더한다.

개성을 달고 유쾌하게 달리던 《하이파이브》의 기력은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급격하게 떨어진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이비 종교가 전면에 나서면서부터인데, 종교가 세를 키워나가는 과정에서의 아이디어와 디테일이 부족하다. 너무 빤하게 그려졌달까. 현실에서의 종교가 워낙 기상천외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탓에, 영화의 서사가 현실에 비해 빈약해 보이기도 한다. 하긴 영화가 기획될 때만 해도 대선후보 손바닥에서 왕(王)자 그림을 만나는 세상이 올 줄 누가 알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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