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동부지원의 한낮 인문특강 체험기 feat. 작가 이주현
법원 구성원, 자리 가득 메운 채 몰입하며 적극 참여
박주영 동부지원장 '법은 인문 예술과 만나야' 제안
각 분야 강사 모셔 4월 7일부터 5회 행사 이날 성료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2025 부산동부지원 그린 북 클럽 인문특강.”
월요일이던 지난 5월 26일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5층 대회의실 입구에 당도하자 이런 안내판이 기자를 맞이했다. ‘바쁜 일과를 쪼개 인문 특강을 마련하다 보니 점심시간을 활용하는구나’ 하는 짐작이 들자,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의 정성과 열의가 느껴졌다.
이에 앞서 인상 깊었던 순간이 또 있었다. 이날의 인문 특강 강사인 이주현 소설가를 맞이하느라 부산동부지원 관계자가 건물 1층 입구에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이 ‘현관 영접’ 장면은 인문·예술을 대하는 주최 측의 마음가짐을 조용히 보여주는 듯했다.

특강을 시작하기 전 박주영 부산동부지원장의 방에서 이주현 작가와 함께 차를 마시며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박주영 부산동부지원장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전한 책 ‘어떤 양형 이유’를 비롯해 ‘법정의 얼굴들’ ‘괄호 치고’를 지은, 널리 알려진 법조인이자 ‘인문주의자’이다.
그는 부산동부지원의 그린 북 클럽 인문 특강을 기획했다. “법을 다루고 법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인간에 관한 이해가 깊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그가 말한 인문 특강 기획의도다. ‘인간에 대한 이해’라는 표현이 깊게 울렸다.
빠듯한 일상과 적은 예산으로 실행에 옮기기까지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뜻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동부지원 구성원에게 제안했고 다행히 호응이 따라주어 소박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 4월 7일 첫 특강을 열었다. 첫 순서는 박주영 부산동부지원장 본인이 직접 맡았다. 글쓰기에 관해 두루 이야기했다고 한다. 같은 달 21일에는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의 책방 보틀북스 채도운 대표, 28일에는 부산 수영구 민락동의 책방 주책공사 이성갑 대표가 책·독서·출판에 관해 강연했고, 5월 12일은 고종주 변호사가 강사로 나섰다.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등을 지냈고 현재 법무법인 정인에서 활동하는 고종주 변호사는 시집 ‘대구 지하철 중앙로 역에서’ ‘우리 것이 아닌 사랑’을 낸 시인이며 저명한 법조인이다.
전체 5강으로 성료, 진지했던 청중
기자가 취재 갔던 지난 26일은 올해의 그린 북 클럽 인문 특강 마지막 순서였다. 강사인 이주현 소설가는 202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옹골차면서도 흡인력이 뛰어나고 울림이 오래 가는 소설 ‘노란 문’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부산에 사는 이주현 작가는 특강 제목을 이렇게 잡았다. ‘너무도 당연해서 작가들이 안 알려주는 소설 쓰는 법’. 오랜 기간 수련하고 글쓰기 관련 각종 ‘전투’에서 단련된 뒤 361 대 1의 경쟁을 뚫고 단 한 작품만 뽑는 신춘문예 관문을 통과한 작가가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법조계 종사자와 시민에게 들려주는 글쓰기 강연이었다.
40~50석에 이르는 좌석을 채운 청중과 함께 특강을 들었다. 강연은 신선했고, 내용이 놀라운 데가 있었다. ‘예술가는 자기 작품 세계를 가꾸고, 작품으로 세상과 대화하기 위해 대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 걸까?’ 하는 깊은 인상이 새삼스럽게 남았다.
“신춘문예와 같은 공모전은 응모하는 바로 그 작품에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하죠.” 응모작 그 한 편에 당선과 탈락이 곧장 갈리기에 ‘내일은 없다, 이 작품에 다 건다’는 결연한(?) 마음이 된다는 건 그간 문학 취재 현장에서 간간이 들었던 말이다. 이주현 작가는 “(경쟁이 치열하고 권위를 쌓아 온) 일간지 신춘문예를 통과하면 인정을 좀 받는 편이기는 하다”면서도 “그렇다고 당선 뒤 원고 청탁이 밀려들거나 갑자기 바빠지지는 않는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다만, 정식으로 등단하기 위해 응모작 자체에 전력투구하다 보니 그다음에 발표하는 작품의 밀도가 당선작보다 떨어지는 일은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이는 2025년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가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가 더 치열하게 더 밀도 높은 작품을 쓰는 일이라고 다짐하는 말로도 들렸다.
소설뿐만 아니라 시나리오 등의 장르에도 오래전부터 관심이 높아 꾸준히 공부했다는 그는 10여 년 전 ‘커피킹’이라는 장편소설을 펴낸 적이 있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작가의 탄생’이 얼마나 치열한 노력을 요구하는지 짐작하게 해주어 흥미로웠다.
“어떤 커피집을 알게 됐어요. 직접 로스팅한 커피의 향과 맛이 정말 훌륭한, 작은 집이었죠. 그집 사장님이 커피를 로스팅하는 모습에서 마치 행위예술을 하는 듯한 깊은 인상을 받았죠. 그분은 무척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여쭸더니, 제 예상과는 달리 그분에게도 자신만의 크고작은 고충이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소설은 주제란, 질문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이주현 작가에게 일종의 ‘촉’이 온 것일까. 커피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로스팅도 배우고 싶었지만, 그건 수강료가 너무 비싸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플로리스트의 세계도 알아야 할 필요가 생겼다. 꽃을 배우기 시작했다. 초급반-중급반을 거치다 보니 수강료가 만만치 않았다. 더 큰 장벽이 있었다. 꽃을 배웠는데, 이걸 써볼 계기가 생기지 않았다. “꽃집에 취업해 보려 해도 ‘나이 제한’에 걸린다며 받아주지 않더라고요.”
다행히, 부산국제영화제가 다가와서 바빠진 호텔에서 꽃 관련 일을 할 사람을 모집했는데 ‘나이 제한’이 없어 ‘취업’에 성공했다. “화려해 보이지만, 꽃을 다루는 일은 고된 육체노동을 동반했습니다.” 호텔 중식당 전체를 꽃으로 장식해 물 주고 가꾼 뒤 다시 가져오는 일, 지하 4층의 크리스마스트리를 직원 통로를 통해 호텔 가장 좋은 자리로 옮기는 일, 엄청난 양의 장미를 ‘컨디셔닝’하느라 가시를 하나하나 자르는 일….
머리로 쓰는 문장, 관념에 치우친 표현 말고 생기 넘치고 흡인력 글을 한 땀 한 땀 쓰기 위해 펼치는 소설가들의 노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써낸 ‘커피킹’는 어느 정도 관심을 끌었고, ‘이 작품을 드라마 대본으로 쓰고 싶다’고 타진해 온 곳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말하자면, 그 일이 성사되지는 않았다. 그는 굴하지 않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공모에 도전했고, 공부했다.
젊은 날 부산 서면의 영어학원에서 성인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는 그는 특강을 능숙하게 이끌어 갔다. 청중의 호응도 좋았다. 작가 한강, 정유정, 권여선, 클레어 키건, 철학자 자끄 라깡 등을 종횡하던 특강은 “소설의 주제란 ‘질문’이어야 한다는 점을 나는 배웠다”고 말한 대목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법원 한복판에서 펼쳐진 ‘작가의 탄생’과 ‘소설 쓰는 법’ 강연은 청중에게 책과 문학을 한 발짝 더 가까이 당겨와 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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