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멍거 다시 읽기②"망치 든 사람에겐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여"[김재현의 투자대가 읽기]

김재현 전문위원 2025. 5. 31.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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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가들의 투자를 통해 올바른 투자방법을 탐색해 봅니다.

고 찰리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사진=인터넷
"망치 든 사람에게는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인다."

필자가 찰리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속담이다. 멍거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 속담을 말하며 '다학제'(multidisciplinary)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멍거도 미시건대학 수학과에서 공부하다가 참전해서 육군항공대에 입대한 후 캘리포니아공대(칼텍)로 보내져 기상학을 배우는 등 이과를 다녔지만, 제대 후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하면서 문과로 넘어갔다.

다학제에 대해 가장 유명한 연설은 1998년 4월 '하버드 로스쿨 1948년 졸업생 50주년 동창회 강연'이다. "전문가들의 다학제 역량 강화 필요성: 교육적 함의"(The Need for More Multidisciplinary Skills from Professionals: Educational implications)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멍거는 법학교수들과 동창들 앞에서 다학제의 중요성을 상세히 설명했다.

다학제에 관한 5가지 질문
멍거의 다학제에 관한 5가지 질문/그래픽=김지영
멍거는 연설 서두에서 소크라테스식 자문자답 게임을 하겠다며 다섯 가지 질문을 던졌다.

1) 광범위한 전문가들에게도 다학제 역량이 더 필요한가?
2) 우리는 다학제 교육을 충분히 하는가?
3) 엘리트 소프트 사이언스(soft science: 정치학·경제학·사회학·심리학 등 사회 과학·행동 과학)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훌륭한 다학제 교육의 본질은 무엇인가?
4) 지난 50년 동안 엘리트 학계의 노력으로 다학제 교육은 얼마나 향상되었는가?
5) 어떤 교육 방식이 다학제 교육의 발전을 촉진할까?

첫 번째, "광범위한 전문가들에게도 다학제 역량이 더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멍거는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작중 인물이 전문가의 결함을 평한 대목을 인용했다.

"결국, 모든 직업은 평신도(일반인)에 대한 음모다"(In the last analysis, every profession is a conspiracy against the laity). 즉, 전문가들이 비전문가들인 일반인을 이용한다는 얘기다. 16세기를 지배하는 전문가였던 성직자들이 그리스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다는 이유로 윌리엄 틴들(1494~1536년)을 화형에 처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틴들이 성경을 번역하려던 16세기 초만 해도 성경은 권력자와 성직자의 전유물이었다. 평민들이 성경을 읽고 성직자와 논쟁을 벌이는 건 교회 입장에서는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쇼는 이런 문제의 주범이 전문가들의 의식적·이기적 악의라고 말했지만, 멍거는 전문가들의 무의식적인 편향에서 비롯된 결과라며 전문가들이 다음 두 가지 요인에 취약하다고 강조했다.

①인센티브 편향: 전문가에게 좋으면 고객과 사회에도 좋다고 판단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인지 편향
②망치 든 사람 편향: "망치 든 사람에게는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인다"

멍거는 '망치 든 사람 편향'을 해결하는 방법은 명확하다며 "여러 학문에 걸쳐 다양한 역량을 갖추면 다양한 도구를 보유하게 되므로, 망치 든 사람 편향으로 인한 인식 오류를 제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우리가 평생 동안 실용적인 심리학을 통해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편향 모두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서 오는 나쁜 영향들과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할 만큼 다학제적이라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길로 들어서는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라고 멍거는 강조했다.

만약 'A'는 관련 분야가 협소한 전문적인 이론이고 'B'는 여러 분야에서 가져온 매우 유용한 개념들이라면 'A'만 보유한 전문가보다 'A'와 'B'를 모두 보유한 전문가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다.

두 번째, "우리는 다학제 교육을 충분히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멍거는 이 문제는 너무 쉬워서 간단하게 말하겠다며 우리 교육은 다학제와는 거리가 멀며 너무나도 '단학제'(unidisciplinary)적이라고 말했다. 광범위한 문제들이 여러 학문 분야에 연결되는데, 멍거는 이런 광범위한 문제를 '단학제' 관점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브리지게임을 하면서 다른 카드는 무시한 채 오로지 으뜸패만 계산하려는 행동과 같다고 비유했다.

다학제 교육의 본질은?
세 번째, "다학제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 엘리트 교육에서 가장 훌륭한 다학제 교육의 본질은 무엇일까?"

멍거는 효과적 교육에 대한 인센티브가 크고 성과가 엄밀하게 측정되는, 가장 성공적인 교육 모델을 찾아야 하는데 조종사 훈련이 이 조건에 잘 맞으며 크게 성공을 거뒀다고 짚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조종사에게도 '망치 든 사람 편향'은 안전을 위협하는 커다란 문제다. 만약 조종사의 머릿속에 든 위험 모델이 'X'뿐이어서, 모든 위험을 'X'로 간주한다면 생각하기도 끔찍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조종사는 6요소 시스템으로 엄격한 훈련을 받는다.

①조종사의 정식 교육은 매우 광범위해서 조종에 유용한 내용이 거의 모두 포함된다.
②조종에 필요한 거의 모든 지식을 1~2회 시험에 통과하는 수준이 아니라, 2~3가지 위험이 동시에 발생해도 대처할 정도로 실습을 통해서 능숙하게 익힌다.
③유능한 대수학자처럼, 조종사도 때로는 순서대로 생각하고, 때로는 뒤집어 생각하도록 훈련받는다. 상황에 따라 그는 임무 완수에 노력을 집중하기도 하고, 사고 방지에 노력을 집중하기도 한다.
④시스템 장애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분야별 훈련 시간을 배분한다. 성과에 가장 중요한 분야에 가장 많은 훈련 시간을 배분해 숙련도를 최대한 높인다.
⑤조종사가 반드시 '체크리스트'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한다.
⑥최초 훈련 이후에도 전문지식 유지를 위한 정기훈련을 의무적으로 받게 한다. 시간이 흘러도 사고 대처 능력이 약화하지 않도록 정기적으로 시뮬레이터 훈련을 받는다.

멍거는 제대로 된 다학제 교육을 하려면 엘리트 학생들이 필요한 모든 역량을 최대한 높이고 학문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어야 하며 대수학자처럼 때로는 뒤집어 생각할 수 있고 체크 리스트도 일상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등 불가능한 것 같지만, 다음 3가지 요소를 생각하면 불가능한 과제는 아니라고 말했다.

즉, ①필요한 모든 역량을 높인다고 할 때, 모두가 예컨대 천체의 역할을 라플라스(프랑스의 천문학자) 수준으로 익혀야 하는 건 아니다. ②엘리트 교육 분야에는 시간과 재능을 갖춘 사람이 많다. 엘리트 교육 대상자는 상위 1% 학생들이며 교사들은 더 우수하다. ③조종사처럼 뒤집어 생각하고 체크리스트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정도는 쉽게 배울 수 있다.

다학제 교육은 얼마나 개선됐을까?
네 번째 질문이다. "적정한 다학제 교육 목표를 기준으로 평가할 때, 우리(멍거와 동창생)가 졸업한 이후 소프트 사이언스 분야에서 다학제 교육은 얼마나 개선되었을까?"

멍거는 그동안 다학제 교육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으며 부작용도 있지만, 개선된 부분도 많다고 평가했다. 예컨대 다른 분야 교수들과의 공동 연구가 유용하거나 여러 분야에서 복수 학위를 가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소프트 사이언스 분야에서 증가했기 때문이다.

다른 학문 분야에서 '원하는 것만 가져다' 완전히 소화해서 사용하는 '증강'(augmentation) 방법이 성행했는데, 이렇게 하면 각 학문 사이에서 영역 문제로 다툴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하는 것만 가져다' 사용하는 관행만으로 망치 든 사람 편향이 감소했다.

멍거가 예로 든 건 하버드 로스쿨 교수로 남은 동창 로저 피셔다. 그는 다른 분야에서 '협상'을 가져와 'Yes(예스)를 이끌어내는 협상법'(Getting to Yes)이라는 책을 썼으며 이 책은 300만부 넘게 팔렸다.

이 밖에도 경제학은 생물학에서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 모형을 가져와 애덤 스미스의 선한 '보이지 않는 손'의 반대개념으로 사악한 '보이지 않는 발'을 만들어 냈다. 1968년 미국의 생태학자 개릿 하딘은 주인이 없는 공유 목초지는 목동들이 경쟁적으로 더 많은 양을 끌고 와서 풀을 뜯게 하는 것이 이득이므로 결과적으로 목초지가 황폐화된다고 공유지의 비극을 설명했다.

다만, 멍거는 '원하는 것만 가져다' 사용하는 관행에는 개념의 기본 체계조차 무시하거나 인용 표시도 생략하고 명칭도 바꾸는 등의 심각한 결함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학제 교육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까?
마지막 다섯 번째 질문이다. "어떤 방법으로 다학제 교육의 발전을 촉진해야 할까?"

멍거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이 어렵지 않다면서 5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①선택과목 대신 필수과목을 대폭 늘려야 한다. 광범위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종의 조종사 훈련 시스템이 필요하며 법률 교육을 받아도 심리학·회계학 전문지식까지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②여러 분야에 걸친 문제를 해결하는 연습을 대폭 늘려야 하며 시간이 경과해도 대처 능력이 약화되지 않도록 조종사들이 받는 정기 시뮬레이터 훈련 같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멍거가 예로 든 사례가 재밌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두 노부인에게 제공하는 조언을 작성하는 시험 문제를 냈다. 두 노부인은 유명 브랜드 신발을 생산하는 뉴잉글랜드의 공장을 상속받았는데, 심각한 경영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교수는 1등을 한 학생에게만 좋은 학점을 주고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나쁜 학점을 줬는데, 1등을 한 학생이 제시한 조언은 다음과 같다.

"이 지역의 구두 사업에서 발생한 문제는 매우 까다로워서, 세상 물정을 모르는 노부인들이 외부 전문가를 고용해서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문제의 난이도와 대리인 비용을 고려하면 공장을 즉시 매각해야 하며, 가급적 한계 효용이 가장 큰 경쟁사에 매각해야 합니다."

멍거는 이 학생이 경영대학원에서 배운 내용에 의존하는 대신 대리인 비용과 한계 효용 등 학부에서 배운 심리학과 경제학 기초 개념을 잘 이용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③소프트 사이언스 교육기관들은 월스트리트저널, 포브스, 포춘 등 일류 정기 간행물을 더 많이 사용해야 한다. 이런 정기 간행물들은 비행기 시뮬레이터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며 가끔 원인 분석에 유용한 새로운 모델을 소개하기도 한다.

④교수를 채용할 때, 좌익이든 우익이든 정치 이념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은 피해야 한다. 훌륭한 다학제 교육에는 객관성이 필수적인데, 이념에 속박된 사람들은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멍거는 부연했다.

⑤소프트 사이언스도 하드 사이언스의 기초 조직 정신을 열심히 모방해야 한다. 기초 4개 학문(수학, 물리학, 화학, 공학)을 결합하는 정신을 뜻하는데, 멍거는 하드 사이언스가 소프트 사이언스보다 훨씬 더 단학제의 오류를 잘 방지했고 다학제의 접근 편의성을 높였다고 평가했다.

연설 마지막, 멍거는 문제 해결에 다학제 기법을 사용한다면 자신처럼 학계도 엄청난 보상을 받을 수 있고 더 재밌을 것이라며 다학제를 강추했다. 그리고 멍거는 "이런 행복을 맛본 사람은 다시는 기존 방식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 손을 자르는 셈이니까요."라고 덧붙였다.

김재현 전문위원 zorba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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