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이 아닌 기억으로…회귀하는 자, 가엘 파유 [.txt]

봄이 되면 환한 교정을 생각한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웃고 있는 곳. 이제는 갈 수 없는 곳이다. 그때 그 애들이 없는 학교는 돌아가고 싶은 그곳이 아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가엘 파유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그 시절로부터 유배됐다. 우리는 모두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안고 산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잃어버린 장소, 꿈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사람. 불쑥 찾아오는 회귀의 욕망이 있다. 향수일까? 아니다, 돌아보게 하는 것은 오히려 마주 보기 괴로운 것들이다. 사라졌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는 것. 적어도 문학에서의 회귀는 그렇다.
가엘 파유는 회귀하는 자다. 르완다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부룬디에서 성장했고, 내전이 일어난 후에 프랑스로 망명한 이 젊은 작가는, 첫 소설 ‘나의 작은 나라’를 통해 유년으로 돌아간다. 전쟁과 학살로 무너진 작은 나라를 복원하기 위해서다.
1994년 르완다 대학살 당시, 파유는 12살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가족 대부분을 잃었다. 폭력의 피해자인 어머니가 선택한 생존 방식은 ‘침묵’이었다. 언어의 부재 속에서 자란 아이는 어땠을까? 확실한 것은 파유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법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시작은 문학이 아니라 저항의 언어, 슬램과 랩이었다. 특히 슬램은 시적 언어를 청중 앞에서 낭송하는 시의 한 형태로, 프랑스에서는 이민자, 사회적 소수자, 청년들의 자기표현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이 예술의 핵심은 자기 이야기를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다. 나의 목소리로 전하는 나의 이야기. 그런 이야기는 타자의 침묵을 깨트리거나 고통을 대신 진술하지 않는다. ‘나’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침묵이 내 안에 남긴 흔적이고, 그래서 파유는 고통의 재현이 아닌 공백과 생략의 윤곽을 그린다.
한편, 그는 시와 랩이라는 짧은 형식 안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소설로 써냈다. 노래로 시작한 기억의 서사를 문학의 형식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에게 음악이 봉인된 기억과 감정을 꺼내는 일이라면 글쓰기는 그것을 이해하고, 구조화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전자를 구원, 후자를 치유라 표현한 작가의 말을 곱씹으며 그의 여정을 따라가 보면, 비극과 상처를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된다. 특히 그의 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타자의 고통을 대상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학살의 순간이 아닌, 참혹한 폭력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 어린아이의 눈에 감지된 세계의 미세한 변화만으로 역사의 비극성과 침묵의 무게를 강조한다. 작가는 르완다 대학살의 직접적 피해자 또는 생존자가 아닌 자신이 그 고통을 대신 진술할 자격이 있는지를 물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고통을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소비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 그곳에 있었던 중요한 진실을 말하기 위해 그가 택한 것은 자신이었던 열두살 남자아이가 경험한 것을 쓰는 것이었고, 그 기억의 테두리를 넘지 않는 것은 그의 소설이 가진 큰 미덕이라 할 수 있겠다.

소설, ‘나의 작은 나라’에서 가장 상징적인 존재는 망고나무다. 주인공 가브리엘이 그 나무 아래에서 친구들과 함께 만든 세계는 천진하다. 정치와 민족, 증오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 후반부에서 친구들 중 누군가는 무장 조직에 가담하고, 또 누군가는 사라질 때, 우리는 나무 아래의 그 평온한 세계가 어떻게 무너지게 되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두번째 소설, ‘자카란다’의 중심에는 자카란다나무가 있다. 르완다를 ‘부라미아’라는 은유적 공간으로 표현한 이 작품에서 ‘화사한 행복’이라는 꽃말을 가진 나무는 폭력과 침묵의 장소로 남는다. 망고나무가 폭력 이전의 세계를 상징한다면, 자카란다는 트라우마의 자리, 대학살 이후의 상흔을 말하는 것이다. 대학살이라는 비극을 두고 이전과 이후를 말함으로써 비극의 가장자리에 선 작가의 선택이 인상적이다. 폭력의 안과 밖을 동시에 지켜본 자만이 택할 수 있는 윤리적 거리감이 아니었을까.
지금 프랑스 문단은 파유처럼 경계인들의 목소리가 뚜렷해지고 있다. 파투 디오메, 파티마 다스, 사브리 루아타. 이들은 이민 2세대, 혼혈인으로 식민주의에서 비롯된 이중 문화를 자기 내면에 새긴 채 경계에 선 감각을 말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하나의 언어와 문화만으로 표현되지 않고, 그래서 그 다양성과 복잡성이 한국 독자들에게 다소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계 문학의 본질이 말해지지 않은 진실과 침묵의 무게에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것과 그리 다를 것 없는 우리의 삶과 얼마든지 조우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도 그런 상처가 있지 않은가.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 공동의 트라우마, 끝낼 수 없는 애도. 혹여 아픈 과거의 이야기에 고개를 돌리고 싶은 이들, 이제 그 과거를 닫고 현재를 살펴야 하는 이들이 있다면, 파유의 말을 전하고 싶다.
“기억은 현재 속에서 끊임없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기억이 살아 있지 않으면, 우리는 단지 ‘기념’만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뿐이고, 그렇게 되면 역사는 박제되고, 반복될 위험에 놓이게 된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로부터 유배된 이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기억하기, 그것뿐이다. 비극과 참사의 추모 리본 앞에 슬픔을 단 한 방울도 줄이지 않는 것, 결국 그것이 우리의 어제를 구하고 오늘을 치유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신유진 작가·번역가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속보] 5호선 열차 화재…60~70대 방화 용의자 여의나루역서 체포
- [속보] 트럼프 “외국산 철강 관세 25→50%로 인상”
- 대법, ‘이재명 재판기록 6만쪽 봤나’ 정보공개청구에 ‘비공개’ 통지
- 사전투표율 역대 2위…영·호남 격차, 지난 대선보다 벌어져
- 나경원 “이준석 제명 절대 막아야”…“참담한 판단력” 비판하더니
- 김문수 “출산지원 ‘1억’ 주려 했는데…엄마가 주식넣어 다 들어먹으면”
- 김문수 사전투표 폭망·이준석 자폭, 이재명 ‘박근혜 최다득표율’ 깨나 [논썰]
- 투표함 훼손·투표 방해…부정선거 추종자들의 ‘부정’ 잇따라
- “유시민 ‘설난영 발언’ 듣고 눈물이 날 만큼 슬펐다”
- “진상 규명이 추모다”…선생님 보내는 마지막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