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에 어울리는 의외의 배경음악 [어제 들은 음악]

‘잡지 전체가 시사 이야기이니 이 코너만은 음악 얘기로 조금 심각함을 덜고 가벼우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랬지만 첫 번째 글로 윤석열 퇴진 집회에서 노래를 부른 얘기를 썼다. 두 번째 글에는 3·8 여성대회에서 사회를 본 얘기를 썼다. 세 번째 글에는 윤석열 파면이 선고된 날에 대해 썼다. 이제는 한갓진 얘기를 해도 되겠지···. 무슨 곡에 대한 얘기를 할지 은은하게 생각하며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5월10일 새벽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또라이’ 같은 뉴스를 보았다. 국민의힘이 대선후보를 바꾼답시고 새벽 3시에 후보 신청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또? 또 내가 자는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몰라 무서워하는 그런 상황에 빠진다고? 이런 식으로? 사전에 뽑아놓은 후보로?
정말 화가 났다. 모든 것이 결국 제자리로 돌아갈 거고,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고 믿고 싶었기에 (그래야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머리에 힘주고 온화하고 침착하려고 그동안 노력해왔건만, 다 집어치우고 싶어졌다. 저들이 갑자기 새벽 3시에 저러는데 어쩌란 말이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씩씩거리다 갑자기 노랫말 한 대목이 떠올랐다. “Despite all my rage, I'm still just a rat in a cage.” 그때의 기분으로 멋대로 번역하자면 이렇다. ‘이렇게 빡치는데도 나는 그냥 우리 속의 쥐구나.’
스매싱 펌킨스의 노래 ‘불렛 위드 버터플라이 윙스(Bullet with Butterfly Wings)’는 1995년에 나왔다. 이 곡은 쿵쾅거리는 록이고 그땐 그런 음악이 많았다. 쿵쾅쿵쾅. 분노! 2025년, 세상엔 다양한 음악이 있지만 트렌드를 얘기하자면 ‘Chill(칠)’이다. 느긋하게, 흘러가는 음악이 대세다. 그렇게 된 지 오래되었고 그게 나쁘다고 말하고 싶은 건 절대 아니다(나도 그런 음악을 좋아한다). 옛날 음악이 훨씬 참되다는 얘기도 절대 아니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느끼한 걸 먹으면 상큼한 음식이 생각난다. 세상이 이러면 저러한 음악이 당긴다. 지금은 피식 웃음이 나는 ‘밈’ 같은 정서가 주인 시대다. 직면도 행위이고 회피도 행위다. 무엇도 우월하지 않다. 동시에 둘 다 반쪽이다. 분노가 담지 못하는 것이 있고, ‘칠’이 담지 못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나는 가끔 1990년대 이전의 록이 순진한 마음의 증거였다는 생각을 한다. 화를 내면 세상이 바뀐다고 믿는 마음이란 정말 순진하지 않은가. 세상이 이렇게 복잡한데, 착하게 살아도 ‘굿 플레이스’에 갈 수 없는데 이렇게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에서 어쩌면 좋단 말인가. 참고로 〈굿 플레이스〉는 2019년에 방영된 미국 드라마로, 적당히 착하게 살아도 누군가에게 나쁜 일을 저지르게 되어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천국에 가기 몹시 힘들다는 대목이 있다.
일단 눕고, 재미있는 것을 보고, 단단히 구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는다. 칠링(Chilling)한다. 지금 화내봐야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까. 하지만 그날의 새벽 3시엔 스매싱 펌킨스의 그 노래가 정확하게 나의 배경음악이었다. 분노한 쥐가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마. 다음 달엔 반드시 한갓진 음악 얘기를 해주마. 그리고 밴드 붐은 다시 온다.
오지은 (뮤지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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