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저주 조차 아름답다…바로크의 음악적 분노

유주현 2025. 5. 31. 01: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폭풍우와 공포가 지배하는 바다의 광활한 제국’ ‘악령들의 두 번째 등장’ ‘욕망, 격정 그리고 잔인한 초조함’ ‘어둠의 신들이여 들으소서’ ‘전쟁의 소음’….

한 공연 프로그램에 포함된 노래 제목들이다. 제목만 봐도 남성적이고 거칠며 음산한 음악의 파도가 밀려드는 것 같다면, 착각일 뿐이다. 고풍스러운 바로크 앙상블의 연주에 잔물결이 일면, 꾀꼬리 같은 소프라노의 지저귐이 마법처럼 그 옛날 베르사이유궁으로 인도하는 듯한 우아하고 서정적인 무대다.

유럽 정상의 고음악 단체 아마릴리스 앙상블과 프랑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파트리샤 프티봉이 6월 6일과 8일 처음으로 내한 공연을 한다. [사진 한화클래식]
프랑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파트리샤 프티봉과 유럽 정상의 고음악 단체 아마릴리스 앙상블의 첫 내한공연으로 주목 받고 있는 한화클래식 2025 ‘마법사의 불꽃’(6월 6·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얘기다. 흔한 성악가 독창회는 아니다. ‘주크박스 오페라’랄까. 특정 테마 아래 17~18세기 프랑스 오페라에서 가려 뽑은 곡들을 엮은 콘서트 형식의 1인 오페라다.

프랑스 바로크 오페라에서 가장 개성적인 작곡 거장 3명의 음악 비극이 축이다. 샤르팡티에의 ‘메디아’와 르클레르의 ‘스킬라와 글라우코스’ 그리고 라모의 여러 오페라를 짜깁기한 ‘파스티초’ 오페라다. 뚜렷한 서사는 없다. 아마릴리스 앙상블의 예술감독 엘로이즈 가이야르는 ‘여자 마법사’를 내세웠다. 태양왕 루이 14세 시대부터 프랑스 바로크 오페라는 초자연적인 마법과 저승세계가 주무대였고, 여자 마법사가 중요한 캐릭터였다.

여러 마녀 중에서도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메디아와 키르케를 주인공 삼았다. 메디아는 배신한 남편 이아손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식들을 죽이는 냉혹한 여자. 키르케도 글라우코스의 사랑을 뺏은 스킬라를 바위로 굳혀버린다. 강하고 잔인할 것 같지만, 실은 연약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들이라 음악도 감정의 폭이 넓다.

이런 역할의 스페셜리스트를 ‘마법 지팡이 배역(roles a baguette)’이라고 하는데, 프티봉이 요즘 가장 잘나가는 마법 지팡이다. 황장원 음악평론가는 “파트리샤 프티봉은 국내에 덜 알려진 감이 있지만 바로크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모차르트와 현대곡을 넘나드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소프라노”라며 “이번 공연은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프티봉의 감각적인 노래와 도발적인 연기를 만나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프랑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파트리샤 프티봉. [사진 한화클래식]
못된 마녀라기에 예쁘고 다정하게 들리는 건 아리아 사이사이에 포진한 춤곡의 영향도 있다. 메디아의 노래 ‘내 사랑의 대가는 무엇인가’와 키르케의 노래 ‘욕망 격정 그리고 잔인한 초조함’ 사이를 마랭 마레의 오페라 ‘세멜레’의 샤콘느가 연결하는 식인데, 아마릴리스만의 현대적 해석이 돋보인다. ‘현대적인 바로크 음악’이라 하면 형용모순 같지만, 바로크 음악은 원래 현대적이다. 최근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다이내믹하게 재해석해 호평 받았듯, 바로크 음악은 악보에 악상이 없기에 해석의 여지가 무한하다. 아마릴리스 앙상블 역시 정신적으로는 거의 재즈에 가까운 즉흥 음악을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단체다.

2013년 제1회 한화클래식부터 한해도 빠짐없이 해설을 도맡아온 정경영 한양대 작곡과 교수는 “이번 연주는 여러 작곡가의 작품을 편집해서 나름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짜깁기 오페라인데, 연주자의 의지대로 음악을 편집하는 게 원래 바로크 스피릿”이라고 했다. 분노의 노래가 아름답고 따뜻하게 들리는 것도 ‘바로크 스피릿’일까. 정 교수는 “분노나 슬픔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시대나 장소에 따라 다르고, 이번 공연은 바로크 시대 프랑스 사람들의 분노와 슬픔의 표현방식이 관전 포인트 중 하나”라면서 “당대에도 분노를 이성을 잃은 것처럼 표현해야 하는지 혹은 이성적으로 격식대로 해야 하는지 논쟁이 있었다. 화만 내는 게 아니라 슬프고 처연하게 자책하는 게 바로크의 음악적 분노 방식이라 예쁘게 들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화클래식은 한화그룹의 대표적인 메세나 활동으로, 클래식 중에서도 하이엔드인 고음악의 국내 보급에 앞장서 왔다. 국제 바흐 아카데미 창립자 헬무트 릴링, 이탈리아 고음악 앙상블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를 이끄는 조반니 안토니니 등 세계적 명장들을 초청해 음악 마니아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는데, ‘마법사의 불꽃’은 고음악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공연이라 더 흥미롭다. 황장원 평론가는 “한화클래식은 상대적으로 출발이 늦고 인프라도 부족한 국내 고음악 연주계의 적극적인 성장과 발전을 추동하는 자극제로 작용했고, 애호가들에게는 고음악의 진미를 선사하고있다”고 평가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