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재구성한 다큐, 세상을 보는 새 창으로: 차재민 작가 인터뷰

문소영 2025. 5. 31.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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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연 방식 다큐 찍는 차재민 작가
10여 년 전부터 TV에서 ‘리얼리티 쇼’가 유행이지만 그 ‘리얼함’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품는다. ‘짜고 치는 연출’이나 ‘악마의 편집’ 논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예능뿐 아니라 다큐멘터리 영화나 사진도 논란이 일 때가 있다. 현실을 찍더라도 어떤 관점에서 무엇을 취사 선택해 찍느냐에 따라 진실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으로 생성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요즘에는 그 혼란이 가중된다.

작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초청받아
차재민 작가의 ‘광합성하는 죽음’(2024)의 한 장면. [사진 차재민]
이런 와중에 예술 작업으로서 독특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작가가 있다. 차재민 작가는 탐사 보도 기자처럼 사람들을 심도 깊게 인터뷰하고 현장을 조사하지만 그들을 그대로 영상에 싣지 않는다. 인터뷰와 연구·조사를 바탕으로 스크립트를 짜고, 대개의 경우 배우들로 하여금 재연하게 한다. 진단명 없는 질병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다룬 ‘네임리스 신드롬’(2022), 보안요원과 요양보호사의 불안을 다룬 ‘보초 서는 사람들’(2018) 등의 작품은 우리와 밀착됐지만 놓치기 쉬운 사회 현실을 신중하고 담담하게 건드린다. 객관적 리얼리즘이 위협 받는 시대에 우리가 현실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는 작품들이다.

차 작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가 지난해 신설한 ‘시각·다원예술분야 다년 지원사업’ 첫 선정자다. 이 사업은 3년 동안 전시는 물론 작가에 대한 비평·연구 출판, 해외 프로모션 등 다양한 지원을 맞춤형으로 제공한다. 차 작가는 이 사업의 지원을 받아 지난해 신작 ‘광합성하는 죽음’을 제작했다. 일본 불교미술인 구상도(시신이 썩어가는 과정을 9단계로 묘사해 무상을 깨우치는 그림)를 과일과 채소로 재현하며 인간이 죽음을 있는 그대로, 또는 기호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고찰한 작품이다. 지난해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를린 국제영화제 ‘포럼 익스팬디드’ 부문에 초청 받았고, 서울 세종대로에 위치한 일민미술관의 ‘이마 픽스 2024’ 전시에서 선보였다.

2024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차재민 작가. [사진 차재민]
올해 모교인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미술원 교수로 임명된 차 작가를 최근 한예종 석관동 캠퍼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재연의 방식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데, 인터뷰한 실제 인물이 나올 때도 있나.
A : “초기작 ‘안개와 연기’(2013·금융 위기로 공사가 중단된 인천 송도 국제 신도시 건설 현장을 담은 작품)같은 경우는 송도 구도시에 사는 마지막 어부라고 하는 분이 트랙터를 타고 신도시를 가로지르는 모습을 찍은 작품인데 영상에서 그분이 어떤 그림으로 어떻게 배치될지 미리 협의한 후 촬영했다. 이후에는 점점 실제 인터뷰이가 등장하기보다 인터뷰를 통해 내가 알게 된 내용이 내러티브로 제시되고 재연되는 형식이 많아졌다. 다만 ‘네임리스 신드롬’ 같은 경우에는 인터뷰에 참여하셨던 분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모두 어떻게 촬영할지 반드시 사전 합의를 거친다. 그들이 일방적으로 대상화되지 않도록 미리 알게 하고 합의하는 소통 과정이 내 작업에선 굉장히 중요하다.”
올해 모교 한예종 미술원 교수 임명도
‘네임리스 신드롬’(2022)의 한 장면. [사진 차재민]

Q : 리얼리티 쇼에서 출연자를 노출시키는 방식의 폭력성이 논란이 되곤 하는데, 그 대척점에 서고자 했던 건가.
A : “처음에는 그저 개인적인 정서의 문제였다. 나는 우연히 사진이 찍히는 것도 굉장히 싫어한다. ‘이런 내가 다른 사람의 삶을 찍어도 되나’ 하는 정서가 있어서 늘 사전 소통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 그러다 내가 뭔가 조사·연구를 하고, 현장에서 그 분들의 삶을 보고, 이야기를 듣고, 거기서 사회의 어떤 단면을 알아가고 하는 과정이 진짜 중요하다고 느끼게 됐다. 처음에는 정서로만 존재하던, 과정의 조심스러움이 이제는 점점 내 작업의 미학적·윤리적 측면, 독특한 형식이 된 것 같다.”

Q : 좀 더 정치적으로 거칠고 민감한 부분을 건드려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A : “2018년까지는 자본주의 일반을 다뤘던 것 같다. 노동 문제나 의문사도 다룬 적이 있다. 그런데 미술이 사회적 문제를 다룰 수는 있지만 사회적 변화를 이끌기에는 어려운 장르라는 점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고통을 안겨주는 어떤 강한 사회 현안에 접근할 때, 미술은 좀 느리고 답답한 분야인데 그렇다고 미술이 프로파간다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 좋은 작업일 수 없기 때문이다. 와중에 엄마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간병을 좀 오래 했고, 결국 엄마의 죽음(2018년 별세)을 겪으면서 이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나 인과 문제에 상응하지 않는 것을 경험하게 됐다. 그러면서 미시적이고 내밀한 변화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됐다. ‘광합성하는 죽음’이 탄생한 배경이다.”

Q : ‘광합성하는 죽음’은 문예위 지원 작품이다. 공공기관의 지원이 작가들한테는 어떤 도움이 되나.
A : “경제학자가 보면 미술 자체가 거의 이해 안 되는 구조를 가졌다. 작가에게 있어 ‘성공’은 ‘작업을 계속한다’이지 얼마나 유명해지느냐,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느냐가 아니다. 하지만 ‘계속한다’는 것은 너무나 간절하면서도 고통스러운 문제다. 그만큼 공공 지원 사업이 중요하다. 나는 모든 작업들을 (공공기금)지원을 받아서 해왔다. 그래서 책임감을 많이 느끼기도 한다. 이번 다년 지원사업에 응모할 때는 향후 3년 계획을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게 힘들었지만, 그렇게 장기 계획을 세우고 보니 나 자신에게도 큰 도움이 되더라.”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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