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불평등의 상징, 치켜들었던 코끼리 코 사라졌지만… [이태환의 세상만사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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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환의 세상만사 경제학] 글로벌 소득 분배의 변화
경제학에는 유명한 코끼리가 한 마리 있다. 세르비아계 미국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가 만든 ‘코끼리 곡선’이다. 2010년대 중반에 이 그래프가 유명해졌는데, 누가 보더라도 ‘어, 코끼리다!’ 하는 생각이 떠오를 만큼 특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그래프는 1988년부터 2008년까지 20년의 기간 동안 전 세계 소득분위별 소득증가율을 나타낸 것이다.
코끼리는 참 독특한 동물이다. 선사시대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온대 지방으로 이주해 온 이후로는 사람이 코끼리와 가까이서 살 일이 거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코끼리는 우리 삶에 아주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현존 육상동물 중 가장 큰 덩치라든가 긴 코와 커다란 귀, 상아처럼 아주 특징적인 외모 때문일 것이리라 짐작된다.
프레임 심리학에 대한 조지 레이코프의 베스트셀러 제목이 바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였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는 한국에서도 널리 쓰이는 속담이다. 덩치가 큰 만큼 두뇌 용량도 커서 예전에는 코끼리가 서커스에서 재주 부리는 역할도 많이 했고, 영어권에서는 기억력이 좋은 사람을 가리켜 “코끼리 같은 기억력”이라는 표현도 쓴다.

전 세계 총인구 중 소득 기준으로 하위 5%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1분위, 상위 5%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20분위가 된다. 다음에는 2008년에 대해 똑같은 방식으로 샘플을 모으고 1분위부터 20분위까지 분위별 평균소득을 구한다. 마지막으로 분위별로 20년에 걸친 증가율을 구한다.
2008년의 1분위 평균소득이 1988년의 1분위 평균소득보다 몇% 높아졌는지, 또 2008년의 20분위 평균소득이 1988년의 20분위 평균소득보다 몇% 높아졌는지. 이런 식으로 스무 개의 증가율을 구해서 그래프로 그리면 코끼리 곡선이 완성된다. (사실 마지막 20분위의 경우에는 최상위소득분포가 더 궁금하다는 이유로 좀 더 세분해서 상위 1%를 따로 떼어놓았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자면 20개가 아니라 21개의 증가율을 구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그래프를 일반적으로는 분위성장곡선(growth incidence curve)이라고 부른다. 전 세계 총인구를 20분위로 나누어 1988년부터 2008년까지 소득의 분위성장곡선을 그려놓고 보니 코끼리 모양의 상당히 독특한 그래프가 나온 것이다.
![이틀 뒤 뉴욕 맨해튼의 금융가인 폴리 광장 주변에서 벌어진 유사한 시위. [UPI=연합뉴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8/joongangsunday/20250818154639475shbb.jpg)
코끼리의 머리 꼭대기부터 등까지 이어지는 부분은 글로벌 소득분배의 개선과 중산층의 약진을 보여준다. 전 세계 소득분포의 중간 부분에서 소득증가율이 가장 높았다는 얘기다. 가난을 벗어난 중국에서 거대한 중산층 그룹이 짧은 기간에 만들어졌고, 중국 외에도 여러 개발도상국의 고소득층에서 세계화의 혜택을 많이 누렸다. 그런데 코끼리의 코가 아래로 구부러진 부분, 즉 소득을 아래서부터 따졌을 때 80%에서 95%까지 분위에서는 증가율이 굉장히 낮고, 특히 80% 근처에서는 증가율이 거의 0에 가깝다. 20년 동안 소득이 하나도 늘지 않았다는 얘기다. 여기가 선진국의 중산층이나 그 약간 아래 정도다. 마지막으로 상위 5%, 특히 그중에서도 상위 1%는 다시 증가율이 아주 높아지면서 코끼리가 코를 치켜든다. 이 사람들은 선진국에서도 고소득층이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아시아와 개도국의 중산층이 부유해지는 동안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오히려 빈부격차가 심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복잡한 사정을 단 한 장의 그래프로 강렬하게 보여준 것이 코끼리 곡선인 것이다.
![2011년 10월 3일 미국 ‘시카고 점령’ 시위에서 한 시민이 성조기와 ‘우리는 99%’ 문구가 새겨진 버튼을 착용했다. [AP=연합뉴스]](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8/18/joongangsunday/20250818154640808ieow.jpg)
사라진 코끼리, 좋은 일일까?
밀라노비치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제 이 코끼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의 분위성장곡선을 밀라노비치가 새로 그려 봤는데, 코끼리의 치켜든 코가 없어졌고 전체 분포의 최하위 쪽에서 증가율이 높아져서, 전반적으로 오른쪽으로 갈수록 내려가는 모습의 곡선이 그려졌다. 소득이 적은 쪽의 증가율이 높으니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년 동안 글로벌 소득분배는 개선된 것이다. 경제가 성장할 때 빈곤층이 더 빨리 줄어드는 현상을 경제발전론에서 ‘빈곤감소형 성장’이라고 부르는데 바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다. 또 선진국 중산층의 소득도 나쁘지 않은 증가세를 보여줬고, 최상위 5%의 증가율이 전체에서 가장 낮았다. 일단 ‘코끼리’가 그려지던 그 전 20년에 비해서는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밀라노비치는 조금 더 깊이 들어가 글로벌 저소득 계층의 구성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주목한다. 일례로 2008년에 최하위 20%에 속하던 중국의 시골에 살던 사람들이 2018년에는 그 위 단계로 많이 빠져나간 반면, 인도의 시골이나 방글라데시, 파키스탄에서는 2008년보다 2018년에 소득분위가 낮아지면서 최하위 20%로 떨어진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전 세계적인 소득분배는 최근 전반적으로 개선되는 추세이지만 국가 간, 또 국가 내부에서는 승자와 패자 간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는 얘기다. 특정 국가나 특정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지나친 소득불균형이 발생하지 않도록 좀 더 미시적인 맞춤형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정책적으로 더 많은 고민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할 정도로 경제 상황이 안 좋은데 전 세계적으로는 소득불균형이 완화되고 있다고 하면 한국의 중산층은 오히려 더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은 한국에만 존재한다.
참고문헌:
Lakner, C., & Milanovic, B. (2016). Global Income Distributiion: From the Fall of the Berlin Wall to the Great Recession. The World Bank Economic Review, 30(2), 203-232. http://www.jstor.org/stable/26365336
Milanovic, B. (2022). The Three Eras of Global Inequality, 1820-2020, with the Focus on the Past Thirty Years. Stone Center on Socio-Economic Inequality Working Paper Series 59. https://doi.org/10.31235/osf.io/yg2h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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