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선거는 짧고 사표는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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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해도 사표가 과반 넘을 듯
대립의 골이 더 깊어질지 걱정
국민적 통합 이뤄내지 못하면
국내외 쌓인 난제 해결 불가능
」

대한민국은 자유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국민은 선거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자에 자유롭게 투표할 권리를 가진다. 어떤 정당과 후보자를 지지하든 유권자의 선택이다. 다양성이 생태계의 건강을 좌우하듯, 자유롭게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하다. 투표는 그 자체로 정치적 의사 표시로서 의미가 있고, 때로는 견제구 역할을 한다. 비록 사표일지라도 말이다.
대선 직후 실시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압승했던 국민의힘은 불과 2년 뒤에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패했다. 헌정 사상 가장 강력한 야당을 만든 대참패였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대선에서 사표를 던진 유권자는 물론 지지자조차도 설득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선출직에겐 임기가 있지만, 유권자에겐 임기가 없다. 이 엄준한 사실을 무시한 윤석열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이라는 무리수를 둬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당했다. 남은 건 직선제로 변경된 제6공화국의 최단기 재임 대통령이라는 불명예와 법원 출석, 그리고 조기 대선이다.
이번 대선 분위기는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라는 말을 들었던 지난 대선과 비슷하다. 선거 운동 기간 내내 각 후보는 서로를 악마화하는 데 열을 올렸다. 후보 토론회에서도 네거티브 공방을 반복하고 정책 검증은 뒷전으로 미루는 구태가 이어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저 저쪽이 싫다는 이유로 이쪽에 투표했던 지난 대선 같은 사태가 재현될 조짐이 보인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어떤 후보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간에 열성적인 지지자뿐만 아니라 열성적인 ‘안티’도 함께 안고 가야 한다는 점이다. 전자보다 후자가 다수일 가능성이 크다. 승자독식에 따르는 책임이다.
속내는 어떨지 몰라도 선거 운동 과정에서 각 후보는 국민 통합과 화합의 메시지를 강조해야 했다. 안타깝게도 그런 아름다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한쪽에선 이번 대선의 의미를 응징이라고 규정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진 유권자가 징벌 대상이란 말인가. 한쪽에선 후보 단일화에 따른 표 계산에 바빴다. 이번 조기 대선이 왜 치러지는지 잊었다는 말인가. 가뜩이나 깊은 대립의 골이 대선 이후 얼마나 더 깊어질지 걱정이다. 새로운 대통령에게 주어질 과제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데, 과연 후보들이 그 무게를 아는지 의문이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선악의 대결이라기보다는 대체로 이익 충돌인 경우가 많다. 노사갈등을 예로 들어보겠다. 근로자 측은 근로시간을 줄이면서 사용자 측으로부터 최대한 많은 임금과 복지를 쟁취하려 투쟁한다. 반면 사용자 측은 인건비를 가능한 한 줄이면서 이윤을 늘리려고 노력한다. 이를 선악 구도로 바라보고 한쪽을 악으로 규정하는 정치는 필패다. 서로 다른 의견을 경청해 이익 충돌을 조절하고 균형을 맞추는 게 정치의 역할인데, 그 역할이 대한민국 정치에서 실종된 지 오래다.
선거에서 승리는 끝이 아니다. 새로운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사표를 던진 유권자를 설득해서 끌어안고 가지 못하면, 사표는 어김없이 다음 선거에 되살아나 사사건건 발목을 붙잡을 것이다. 지금처럼 극단적으로 갈린 국론으로는 국내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물론 불확실한 세계정세에도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새로운 정부의 중간평가가 될 지방선거가 불과 1년 뒤, 총선은 3년 뒤에 있다. 감당할 수 있겠는가. 선거는 짧고 사표는 길다.
정진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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