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총 대신 관세가 무기인 시대…'지경학'에서 찾은 해법
주현준 지음 / 에이콘온
324쪽│2만2000원
트럼프 정부의 통상 정책
현직 기재부 공무원이
지정학과 경제학으로 분석
딱딱한 학술 용어 피하고
일반인들 알기 쉽게 설명

물리적 전쟁의 시대는 저물었다. 이제 국가는 총 대신 ‘관세’를, 탱크 대신 ‘수출 통제’를 무기로 삼는다.
기획재정부 공무원이자 정책학 박사인 주현준 씨가 쓴 신간 <지경학의 부활>은 보이지 않는 경제안보 전장에서 미국이 설계하는 제재 정책의 구조와 이에 대한 한국의 대응 전략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여기서 지경학은 지정학(geopolitics)과 경제학(economics)을 합친 말로,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고관세 정책처럼 경제를 수단으로 삼아 국가들이 힘을 겨루는 현상을 다루는 학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기재부 부이사관으로, 25여 년간 국제 금융과 제재 정책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왔다. 2018년 기재부 외환제도과장으로 근무할 당시 이란산 석유 수입 금지 등 미국의 제재 정책에 대응해 미 정부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제재 분야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 워싱턴DC 파견 근무를 포함한 다년간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집필하게 됐다.

이 책의 차별점은 미 정부의 시각에서 제재 정책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분석했다는 데 있다. 특히 저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엘리너 오스트롬 교수의 ‘제도분석프레임워크(IAD)’를 활용해 미국 제재 정책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소를 살펴봤다. 이에 따르면 미 정부는 제재 정책을 수립할 때 크게 세 가지 목표를 추구한다. 첫째, 제재의 실효성을 확보할 것. 둘째, 자국 내 부작용을 최소화할 것. 셋째, 핵심 전략국의 협력을 얻는 것이다. 예컨대 관세 정책을 통해 미국 내 제조업을 부활시키고 인플레이션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 목표는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운 트릴레마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경제적 제재가 한국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면 단순히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이유로 선처를 구하기보다 미국이 처한 트릴레마 상황을 전략적으로 이용해 설득에 나설 수 있다. 가령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이 미국 시민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하며 제재 철회를 요구할 수 있다. 또한 제재로 인한 한국의 피해가 미국 국채 매입 축소 등 협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란 논리도 가능하다.
저자는 미국의 주요 타깃인 중국에 대한 분석도 상세히 담았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4월 관세법을 개정해 보복 관세의 법적 근거를 명문화하는 등 제재 타깃에서 제재 부과국으로 반격하는 데 나섰다. 중국의 이 같은 대미 제재는 미국의 대중 제재보다 실효성이 크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중국은 자국이 보유한 희토류 등 핵심 원자재를 무기로 미국에 단기간 안에 실질적인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이란 등 중국의 파트너 국가도 미국의 동맹국과 달리 별다른 반발 없이 대미 제재에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미국 시장은 중국 입장에서도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중국은 미국에 대한 전면적인 제재보다 상황과 대상에 따라 제재 강도와 대상을 조정하는 등 전술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방식을 채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저자는 관측한다.
책 말미에 수록된 ‘지경학 인사이트’ 코너는 미 정부의 관세 부과 등 최신 현안에 관한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트럼프 관세 조치와 보수적 대법원의 충돌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트럼프 정부가 동맹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에 추가 10% 관세를 부과한 결정을 둘러싼 적법성 논쟁을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 저자는 이런 조치가 미국 경제 전반과 기존 무역 관행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할 때, 미 법원이 이를 행정부의 월권 행위로 판단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상호관세 부과에 따른 여러 부작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행정부가 의회와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미 연방국제통상법원(CIT)은 지난 28일 트럼프 정부의 상호관세 조치가 “대통령 권한을 넘어서는 행위”라며 이를 철회할 것을 판결했다. 다만 하루 만인 29일 항소법원이 CIT 판결의 효력 정지 요청을 받아들이며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저자가 책에서 짚어낸 상호관세 정책의 불완전성은 추후 적법성 판단의 핵심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책은 당초 저자가 후배 공무원에게 전하기 위한 업무 참고서로 시작됐다. 그만큼 현장감 있는 사례와 깊이 있는 분석이 어우러져 정책 실무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하다. 딱딱한 학술 용어에 머물지 않고 일반 독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정돈된 언어로 미국 제재 정책을 생생하게 풀어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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