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배구 전성기 이끈 장윤창 교수 별세

오창원 2025. 5. 3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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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15일 오전 화성 송산중 세미나실에서 열린 '송산고 배구부 해체 철회를 위한 피켓시위'에서 장윤창 경기대교수가 '다 같이 힘을 모으자'고 말하고 있다. 사진=중부일보 DB

한국 남자배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년의 '명스파이커' 장윤창 경기대 스포츠과학부 교수가 30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5세.

장윤창 교수는 1980~1990년대 한국 남자배구 최고의 스타였다.

화성 송산중을 졸업하고 인창고에 입학한 그는 1978년 2학년 때 최연소(17세)로 국가대표에 발탁돼 그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4강 진출에 기여했다.

이어 그해 방콕 아시안게임과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사냥을 주도했고,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추가했다.

1983년 '조직력 배구'의 대명사인 고려증권의 창단 멤버로 참가해 현대자동차써비스와 쌍벽을 이루며 실업 배구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프로배구의 발판이 된 대통령배 원년 대회(1984년) 때 인기 선수상을 받은 것을 비롯, 최우수선수(MVP)에 오르기도 했다.

고려증권은 고인을 앞세워 초대 챔피언을 비롯해 최다인 6회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왼손 아포짓 스파이커였던 그는 남자배구 처음으로 '스카이 서브'(스파이크 서브)를 선보였고, 유연한 허리를 이용한 타점 높은 공격으로 '돌고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현역 은퇴 후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체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체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모교인 경기대에서 스포츠과학부 교수로 활동해왔다.

그는 또 2011년 출범한 대한민국스포츠국가대표선수회 회장도 역임했다.

고인은 술과 담배를 하지 않을 정도로 철저한 몸 관리를 했지만 작년 말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자택에서 투병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서울 강남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차려졌고, 6월 1일 오전 5시 30분 발인 예정이다.

오창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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