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까? 인간 아닌 것에게 질문해보세요
편집자주
결혼은 안 했습니다만, 시집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시인.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 신이인이 사랑하는 시집을 소개합니다.

어릴 때 보던 TV 예능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소개팅을 하는 사람이 인이어를 통해 진행자의 지령을 받아 말하고 행동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상황실에서 지령을 내리는 쪽은 일부러 곤란한 미션을 던지곤 했다. 예를 들면 일어나서 상대의 두피 마사지를 해주겠다고 하라거나.
이는 재미를 위해 연출된 내용이지만 정말이지 사람은 중요한 순간에 꼭 실수를 한다. 마치 요정이 짓궂은 장난을 치는 것처럼. 그럴 땐 지금의 내 영혼 말고 다른 영혼이 들어오면 좋겠다고, 영혼을 갈아 끼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한다.
김복희 시인이 최근 펴낸 시집 '보조 영혼'의 표제작도 비슷한 장면을 그린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수발드는 보조 영혼이 있고, 보조 영혼들도 사람들처럼 모여 떠든다고 한다. 주인에 대한 이야기, 주인이 탐스럽게 보는 열매에 대한 이야기를. "아름다운 꿈을 이해하며 계속 상처받는다"는 문장으로 이 시는 끝이 난다.

"야생의 희망이 두렵다./ 아니야? 희망을 나더러 가지라고 한다면, 나는/ 말해야겠어./ 희망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잎사귀에 매달린 바람에 매달린 이슬에 매달린 한순간 아니야?"('속삭이기')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 사람을 살게 하고, 죽게 하고, 천국과 지옥에 보내기도 하며 거기서도 꽃을 심거나 바라보게 하는 동력을 어떻게 형상화할 수 있을까? 김복희 시인의 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명백히 인간에 깃드는 영적 존재에 주목한다. 종교적이라기보다 희망적인 것에 가까운 비인간을 말한다.
"가시 많음/ 심장 있음/ 폐호흡함/ 피부호흡 여부 확인 중// 웃는 것 같음/ 우는 것 같음"('요정의 특징')
'보조 영혼'의 영적 존재들은 단순히 선하고 전능한 모습으로만 표현되지 않는다. 희망이 반드시 미덕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겠다. 천사는 세상을 일그러뜨리고 요정은 죽은 채 사람에게 손질당하는 고기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사람과 관계하며 삶의 응당한 고통을 주고받는 '사람 아닌 모든 것'의 대명사 같다.

"모양이 다른 죽음을 이 관이 담을 수 있을까/ 낭독이 모든 시를 담았다가 조금씩 흘리는 것처럼"('가변 크기')
우리가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동행한 사람들의 과거에, 먹고 마시는 것에 얼마나 많은 죽음이 포함되어 있겠느냐고 시인은 귀띔한다. 죽음으로 풀려난 영혼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나를 이루는 일부가 되어 내게 삶의 지령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사유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가에 관해 때로는 나를 상처입히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 시집은 장난스럽고 진지하게, 천진하면서 섬뜩하게 상상하고 질문한다. 꼭 요정 같다.
"예수나 부처의 제자 중에서도/ 이름 없는 말단의 말단의 말단의 제자 된 자라도/ 붙잡고/ 이 몸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고 싶다"('사람의 딸')
신이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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