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주 이야기- 진주 대동공업] 6부 김삼만과 기공일생(機工一生) ⑬ 김삼만의 유럽 견학기
1961년 4개월간 10개국 주요 기업 탐방
독일 차공장 등 첨단 기술 현장에 충격
국가적 기술인력 양성제도에 놀라기도
질서 정연 경지와 자동화된 농업 보며
소의 힘에서 벗어난 농촌 만들기 앞장

김삼만은 유럽을 견학하던 중 첨단 농기계를 이용하는 농촌의 현장을 봤다. 당시 한국의 농촌은 소와 인력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삼만은 대동공업사가 한국의 농촌 변화를 위한 농기구 전문 기계를 생산하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다./대동30년사/

김삼만은 유럽을 견학하던 중 첨단 농기계를 이용하는 농촌의 현장을 봤다. 당시 한국의 농촌은 소와 인력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삼만은 대동공업사가 한국의 농촌 변화를 위한 농기구 전문 기계를 생산하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다./대동30년사/
◇ 독일, 모든 생산공정이 자동화
독일에서 먼저 견학한 곳은 김삼만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공작기계와 농업기계 등 기계 제작에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쾰른 인근의 훔볼트 기계공장이었다. 한국에서 상상도 못한 각종 첨단기계 시설과 깨끗한 공장 환경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동차계 명문인 벤츠와 폭스바겐 자동차 공장 현장에는 자동차 부속품들이 조립 순서에 맞게 일관되게 배치돼 있었다. 1960년대 초 독일 자동차 공장의 모든 과정이 라인을 따라 자동화된 시스템을 보고 감동보다 더한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김삼만은 유럽을 견학하던 중 첨단 농기계를 이용하는 농촌의 현장을 봤다. 당시 한국의 농촌은 소와 인력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삼만은 대동공업사가 한국의 농촌 변화를 위한 농기구 전문 기계를 생산하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다./대동30년사/
◇ 독일의 마이스터 제도
김삼만은 독일 공장 방문 중 독일의 마이스터(MEISTER) 제도에도 많은 관심과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이 제도는 세계적인 기술 명장을 양성하는 것으로, 당시 독일만이 가진 기술 인력 양성 제도이다.
독일에서 마이스터라는 호칭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6년에서 12년 정도의 실습, 훈련, 현장의 경력을 쌓아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고등학교 때부터 실습 과정에 참여한다. 독일 사회는 제도적으로 이들의 능력과 지위를 보장하고 높은 보수를 주기 때문에 늘 우수한 인재들이 넘쳐 난다.
14세부터 철공소에서 일한 김삼만의 마음은 늘 기술제일주의였다. 김삼만 회장의 어록 중 하나이다. “한 가지 기술을 익히면 그것으로 사회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사회적인 신분과 생활이 보장된다.”

김삼만은 유럽을 견학하던 중 첨단 농기계를 이용하는 농촌의 현장을 봤다. 당시 한국의 농촌은 소와 인력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동30년사/
◇ 스웨덴 견학
스웨덴에서 만난 한국후원회 회장은 스웨덴 국립병원 외과과장으로 6·25전쟁 때 의료진으로 한국에 참전하신 분이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분들이 모여 한국후원회를 만들고 정기적으로 친목도모도 하면서 기금을 모아 한국 유학생을 초청하고 있었다.
김삼만은 후원회장 자택에 초청돼 갔는데 회장 집 응접실에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과 한국에서 가져온 기념품이 전시돼 있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김삼만은 유럽을 견학하던 중 첨단 농기계를 이용하는 농촌의 현장을 봤다. 당시 한국의 농촌은 소와 인력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삼만은 대동공업사가 한국의 농촌 변화를 위한 농기구 전문 기계를 생산하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다./대동30년사/
◇ 덴마크에서 5·16 소식을 듣다
덴마크는 세계적인 농업국이자 목축업으로 유명한 나라이다. 농업협동조합과 농촌의 현장을 중심으로 견학했다. 이렇게 국토 면적도 적은 덴마크에서 어떻게 세계적인 농업국으로 발전했는지에 견학 초점을 두었다.
1961년 5월 16일, 함께한 관계자로부터 대한민국에서 군사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한국의 상황이 무척 궁금했다. 1960년에 발생한 4·19 혁명으로 인한 정국의 혼란을 알고 있었기에 5·16 군사혁명이라는 표현이 왠지 불안하기도 했다.

유럽 견학 중 독일에 유학 간 장남 김상수와 함께한 김삼만./대동30년사/
◇ 유럽 견학을 마치고
약 4개월 정도의 일정으로 독일, 스웨덴, 덴마크와 시계 등 정밀제품과 가내공업이 발달한 스위스, 사육하는 소가 인구 수보다 많으며 방직공업과 목축업이 발달한 네덜란드, 선박 제조회사가 있는 프랑스 등 유럽의 선진공업과 농업, 기계공장 현장을 세밀하게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고 또 배웠다고 회고했다.
김삼만은 유럽 견학 중 특별하게 3가지 울림을 받았다고 했는데 첫째는 수준 높은 기계공업, 둘째는 질서정연하게 경지정리가 된 바둑판 모양의 농토, 셋째는 대부분의 농가에 트랙터와 콤바인 등 자동화된 농업기계의 사용이라 했다.
김삼만은 유럽 연수로 “나는 더 성숙된 기술인이 됐다. 그리고 넓은 세상을 알게 됐다. 나를 더 큰 경영인이 되게 커다란 변화를 준 동기가 됐다. 너무나 보람 있었다”고 회고했다.
◇ 유럽 견학을 통해 결심한 김삼만의 꿈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동공업사가 만드는 농업 관련 기계는 원동기, 양수기, 탈곡기, 탈맥기, 가미니짜기 등 농업기구 중 초급 단계였다.
김삼만은 지평선 너머로 해가 기울 때 꼬불꼬불한 논두렁과 밭두렁에서, 바둑판 모양으로 변화된 한국의 농촌에서 대동공업이 만든 경운기와 트랙터를 몰고 가는 농민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김삼만은 유럽 견학을 통해 한국에 돌아가면 ‘당장에 사람의 힘, 소의 힘에서 벗어나는 한국의 농촌을 만들어야겠다. 한국 농촌의 변화는 대동공업사가 앞장서야 한다’고 굳은 결심을 했다. 김삼만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대동이 앞으로 한국에 가면 무엇을 만들 것인가, 회사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등 여러 가지 메모를 정리했다.
그리고 제1호 생산 품목을 결정했다. 그것은 바로 ‘경운기’ 였다.
“상상해봐라. 드넓은 경작지를 달리고 있는 대동이 만든 농업기계들,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얼마나 사랑스럽지 아니한가.”

이래호 (국제학박사, 통역·번역가)
이래호 (국제학박사, 통역·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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