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서울 단독 콘서트 여는 리사 오노, '상록수' 부른다

고경석 2025. 5. 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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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사노바 가수 리사 오노 내한 공연
30, 31일 서울 이어 내달 1일 대구서
아버지 한식당 운영 등 한국 인연 눈길
일본 보사노바 싱어송라이터 리사 오노. 플러스히치 제공

“한국에서 공연할 때마다 ‘아리랑’을 불렀는데 이번엔 김민기의 ‘상록수’를 노래할 겁니다. 한국어 가사로요. 정말 아름다운 곡입니다. 어렵지만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브라질 태생의 일본 보사노바 싱어송라이터 리사 오노가 13년 만에 서울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다. 2년 전 한 기업 주최 공연에 참여하고 지난해 울산에서 공연하기도 했지만 서울에서 자신만의 이름을 걸고 콘서트를 하는 건 오랜만이다. 서울(30, 31일), 대구(6월 1일) 공연을 위해 내한한 리사 오노는 28일 서울 용산구 노보텔 앰버서더에서 본보와 만나 “지난번 한국에 왔을 때 추천을 받고 ‘상록수’를 처음 들었는데 처음 듣자마자 너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그는 2010년 ‘아리랑’을 비롯해 중국, 태국, 인도, 몽골, 베트남 등 아시아 여러 나라의 음악을 보사노바로 재해석한 앨범 ‘아시아(Asia)’를 낸 적이 있다.

리사 오노는 이번 공연에 앞서 지난달 초 딸과 함께 한국 여행을 했다. “딸이 한국을 너무 좋아해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면서 “저는 냉면을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 그의 가족은 할아버지부터 한국과 깊은 인연이 있다. 할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중 뉴기니에서 부상을 입은 조선인 병사(고 최경록 전 장관)를 구해준 적이 있고, 7년간 한국 거주 경험이 있는 아버지는 1960년대 브라질 이민 당시 상파울루에서 불고기 전문 한식당을 운영했다. “가족 중에 생일이 있을 땐 늘 한국식 바비큐를 먹었어요. 매번 한식당으로 갔죠.”

리사 오노. 플러스히치 제공

상파울루에서 태어나 10세 때 일본으로 역이민한 오노는 ‘고향’을 그리며 브라질 음악에 빠져 살았다. “12세 때 가수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그는 스물일곱 살이던 1989년 정식 데뷔했고 곧바로 큰 주목을 받으며 1990년대 일본 내 보사노바 붐의 주역이 됐다. “전 태생적으로 록을 노래할 수 없어요. 제 천성이 보사노바예요. 보사노바가 1958년쯤 시작됐는데 제가 1962년생이니 누군가 제게 ‘보사노바 키드’라고도 하더군요.”

리사 오노의 음악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크게 히트했다. 포르투갈어로 주로 노래하던 그가 앨범 ‘프리티 월드(Pretty World·2000)’에서 영어로 부른 ‘아이 위시 유 러브(I Wish You Love)’와 ‘유 아 더 선샤인 오브 마이 라이프(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는 한동안 국내 CF 배경음악으로 자주 쓰였다.

리사 오노는 평생 브라질 음악을 연주하며 미국 팝 음악을 비롯해 프랑스, 하와이, 중동, 아프리카, 남미, 일본 등 세계 여러 지역의 음악을 보사노바로 재해석하는 데에도 열중했다. 브라질 음악의 전설적 스타들인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주앙 도나투 등과 작업하기도 했다. 그렇게 거의 매해 발표한 앨범이 30개가 넘는다. 2019년 일본 옛 가요를 재해석한 앨범 ‘사랑에서 사랑으로~사랑의 찬가’를 발표한 뒤 가장 긴 앨범 공백기를 보내고 있는 그는 “그 사이 음악 회사 시스템이 너무나 달라졌다”면서 “그래도 올해는 앨범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리사 오노. 플러스히치 제공

편안함과 여유, 포용성을 보사노바의 매력이라고 밝힌 리사 오노는 지난 36년간 음악을 하며 힘들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영광스럽게도 대단한 연주자들과 음악을 함께할 수 있었어요. 늘 행복했죠. 일례로 조빙의 집에서 녹음할 땐 그가 아는 지인들을 모두 불러 함께 녹음하기도 했어요. 그런 마법 같은 순간들이 있어요. 공연을 할 때도 연주자들과 관객들이 단 몇 초라도 하나가 되는 순간이 있죠. 그게 음악을 하는 아름다움입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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