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안중근' 이은 독립운동가… 안공근 의문의 사망[오늘의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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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5월30일 독립운동가이자 안중근의 동생 안공근이 사망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에서 중추 역할을 맡았던 그는 중국 상하이에서 실종된 후 돌연 시신으로 발견됐다.
임시정부는 이미 상해를 떠났지만 안중근과 안공근의 가족은 아직 상하이에 머물렀다.
그러나 안공근은 형의 가족들을 상하이에 남겨두고 자기 가족들만 챙겨 임시정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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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공근은 형이 처형당한 이후 일제의 삼엄한 감시를 받았다. 한국에서 활동하기 어려워진 그는 둘째 형인 안정근과 함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을 갔다. 이후 안중근의 남은 가족을 챙기며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했다.
그는 임시정부가 출범하자 중국 상하이로 거처를 옮겼다. 6개 국어에 능통했던 그는 러시아 외교 특사 등으로 활동하며 항일 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했다. 이 과정에서 김구의 최측근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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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는 안공근을 특사로 파견해 남아있는 가족들을 데려올 것을 명했다. 그러나 안공근은 형의 가족들을 상하이에 남겨두고 자기 가족들만 챙겨 임시정부로 돌아왔다. 이에 김구는 안공근을 크게 비판했다. 백범일지에 따르면 김구는 "공근은 자기 가족만을 거느리고 왔다"며 "나는 (안공근을) 크게 꾸짖었다"라고 기록돼 있다.
이후 두 사람의 사이는 멀어졌고 각자의 길을 걸었다. 안공근의 행동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분분했다. 일부 학자들은 형이 죽은 후 실질적 가장 노릇을 했던 안공근이 살뜰히 챙기던 가족을 돌연 나몰라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이미 상하이에서 자리를 잡은 안중근의 가족이 떠나기를 거부했을 것이라고 유추하기도 했다.
홀로 독립운동을 이어온 안공근은 2년 후인 1939년 외출했다 암살당했다. 미스터리한 그의 사망을 두고 여러 설이 존재했다.
일각에서는 김구의 측근인 독립운동가가 안공근을 암살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선 김구 측 독립운동가가 안공근을 암살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실제로 한 학자는 안공근이 실종 직전 김구의 주치의였던 유진동의 집에서 머물렀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설은 국제간첩 나검북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설이다. 홍콩에서 밀정을 추적하던 안공근은 상하이에서부터 알고 지낸 항일 운동가 나검북이 밀정과 접선하는 장면을 목격했고 후에 암살당했다는 설이다.
김구와 안공근의 가족은 사건을 조사해 달라고 요구했다. 안공근의 장녀인 안정생은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에게 서한을 보내 철저한 조사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쑹메이링은 다이리 군통국장과 주쟈화 국민당 중앙조직부장 등에게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으나 끝내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최진원 기자 chjo063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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